세상엔 읽어야할 책도 많고, 읽히기를 기다리는 책도 별처럼 많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그렇지, 언어가 통하는 사람에게 그 책은 또 얼마나 무수하랴. 세계의 아무리 빼어난 작가들도 그 작가와 소통시켜줄 끈이 없으면 그 곳에 건너가지 못한다. 번역의 통로가 없다면. 그는 그 고마운 일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번역작품의 역자를 보라. 거의 그다. 웬만한 책꽂이에 한 권쯤 꽂혀있는 책. 괜히 책읽는 사람처럼 보이게하는 책. 「로마인 이야기」하면 '아! 그 사람'한다. 번역가 김석희. 벌써 20년. 사람들은 그를 '번역의 달인'이라고 부른다. 얼마전 그는 역자후기만을 모은 특이한 책 「번역가의 서재」를 내 또 한번 주목을 끌고 있다. 그를 만났다. 그는 고향바다에 앉아 귀향연습을 하고 있었다.

# 번역은 조강지처, 20년 번역에 200권 출간

   
 
 

 김석희는

 1952년 제주출생. 제일고, 서울대 불문학과 졸업. 동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프랑스어·일본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문학·역사·인문 등 전방위적인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존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김석범의 「화산도」, 홋타 요시에의 「고야」, 「몽테뉴」, 앤드루 그레이엄 딕슨의 「르네상스 미술 기행」, 이나미 리츠코의 「중국의 은자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신비의 섬」, 존 러스킨의 「나중에 온 이사람에게도」, 힐러리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 등 200권을 번역했으며, 역자후기 모음집 「북마니아를 위한 에필로그 60」 「번역가의 서재」 소설집 「이상의 날개」 등을 펴냈다.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소설과 번역의 길을 동시에 걷는 것으로 글쓰기를 시작했다. '잃어버린 10년' 끝에 획득한 신춘문예를 통해서였다. 그의 표현처럼 한쪽엔 소설이란 애인, 한쪽엔 번역이란 조강지처를 거느렸다. 양다리 걸친 10년의 삶, 긴장감은 있으나 밀도는 떨어졌다. 결국 조강지처의 품으로 돌아갔다.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완결한 「로마인이야기」를 번역하면서였다.

"핑계지만, 좋은 책을 만나면 대리만족처럼 채워준 점도 있고. 조강지처 데리고 살아보니까 아무리 낑낑거려봐야 저만큼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절망감같은 것도 있었지요." 번역과 살아온지 20년. 그동안 번역한 책이 150종 200권이 넘는다. 한달에 한 권 꼴. 그만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번역을 한 셈 아닐까.

그가 이번에 낸 책 「번역가의 서재」는 그러한 그의 궤적이 녹아있다. 일종의 서지(書誌)랄까. 역자후기만을 모은 책이라니! 그의 역서 중 99편을 추린 이 책은 세계에도 유례없는 책이다. 그는 누구보다 번역 끝에 쓰는 역자 후기에 공을 들이는 작가로 이름나 있다. 저자와 원서에 대한 예의라는 것. 책 속에 번역자의 흔적을 남길 수있는 내밀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그래, 글쓰기를 일단 작파하자는 그에게 용기와 명분을 준 것은 「로마인이야기」와 김석범의 「화산도」. "좋은 책 번역해서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도 뜻있는 작업이면서 후대에 남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았죠. 또 밥벌이도 되구요. 말로 옮기는게 통역이고, 글로 옮기는게 번역이니까. 글쓰는 문학도로서의 소양과 외국어로서의 소양이 내게 와서 적절하게 맞물린 셈이죠. 그런 점에서 선택을 참 잘한 편이죠. 스트레스 받는 직업도 아니고 아등바등 안하면서 이 일을 즐겁게 해온 편이니까 말이죠."

# 김석범의 「화산도」는 제주도의 빚

누구나 수긍하는 이 번역의 도사에게도 못다한 숙제가 있다. 「화산도」, 김석범 선생의 필생의 작업이었던 이 대하 4·3소설 제2부의 번역을 하지 못한 것. 더구나 번역의 숙명같은 걸 느끼게 해준 책 아니던가.

김석범의 「까마귀의 죽음」에 이은 제1부 「화산도」 전5권을 번역한지 올해 꼭 20년, 이 작업은 같은 제주출신으로서의 애정과 부채의식 때문에 시도됐다. 선생의 일본어를 신열앓듯 한칸 한칸 모국어로 옮겼다. 당시는 불확실한 시대였다. 엄청난 작업을 했는데 잘못해서 불려갈 상황이 벌어질수도 있었다. 긴장하면서 번역했다. 또다른 하중은 역사적 중압감까지 눌렀던 것. "일본어를 그렇게 편하게 할 때가 아니었고, 문체가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 이중언어자가 일본말로 쓴 소설이기 때문에 매끄럽지 않았고,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매끄럽게 해야하는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에 어려웠죠."

그리고 세월이 자꾸 흘렀다. 언젠가 1부는 재번역하고 2부에 손대고 싶다. 그런 기회가 닿는다면. 2부만 해도 김석희 자신이 온전히 여기에만 매달린다해도 한 2년 걸린단다. "일본에서는 이미 20년 전에 나온 화산도 2부를 번역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민망하고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르겠어요. 1만5000매. 열권분량이어서 꽤 많은 제작비가 드는 거여서 그렇지만 이것만은 꼭 해내야한다는 거지요." 이것의 번역은 한자락 4·3에서 살아있는 자들과 제주도가 가진 빚이 아닐까.

모국을 떠나 활동하는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었을 때 모국에서는 어떤 반응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포에 대한 애정이라는게 너무 없어요. 작가에 대한 이질감이 있어요. 나오는 족족 성공하지 못해요. 동포작가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사람은 이양지밖에 없어요. 여자로서 한국에 있었잖아요. 아무리 일본에서 큰 상을 받은 어떤 작가도.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더 안돼요. 펜 포크너상 받은 이창래도 그렇고. 고국에서 키워줘야하는데 절대 안그래요."

# 좋은 출판사와 저자, 독자와의 만남

책속에 파묻히는 것을 좋아하던 소년이었다. 언어능력도 타고나는 걸까. 특히 영어는 중학교 때부터 자유로웠다. 걷는 길은 이미 그렇게 나 있었던 것 아닐까.

김석희. 스스로 번역가로서 행운아란다. 좋은 저자, 출판사, 독자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가 알아서 책을 갖고 와요. 하고 싶지 않은 책? 거의 그런 경우는 없지요. 한국 유수의 출판사와 처음부터 맺은 인연이 그랬지요. 좋은 책 좋은 작가의 책을 번역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것 같아요." 아직도 처음처럼 번역물을 대하면 막막한 기분이고, 긴장하고 설레기도 한다는 이 번역 달인은 언젠가 번역을 '장미밭에서 춤추기'에 비유했었다. 그는 이 즐거운 고통을 앞으로 10년만 더 누리고, 다시 후기모음집을 내고 은퇴하고 싶단다. 은퇴라니! 번역의 길에 정년이 있던가.

자신이 번역한 책들은 크게 팔리지 않아도 될 책들이라는 김석희. 김석희식 문학적 문체가 살아있는 그의 번역물은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에겐 히트작들이 꽤 있다. 가장 큰 히트작은 「로마인이야기」. 30만부 이상 팔렸다. 인세 효자노릇을 해준 상품은 힐러리 로댐 클린턴의 「살아있는 역사」였다.

# 번역은 글쓰기, 외국어만큼 글쓰기 공부해야

그는 행복한 번역가이다. 베스트셀러를 좇아다니는 번역가는 아니지만 그의 번역물들 대부분 죽은 것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책이 움직인다. 그만큼 좋은 책이 그에게 다가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도 가장 자신에게 남는 책을 꼽으라면? 「화산도」다. 또한 1982년에 번역한 존 파울즈의 「프랑스중위의 여자」를 권한다.

번역풍토가 험했던 시절이 흘렀다. 지금은 대학에서도 관련학과들, 강의가 늘어날 만큼 변했다. '스타 번역가'이자 이미 원로급이 된 그는 그 곳에 가끔 불려나간다. 그때 하는 말. "번역은 글쓰기다. 외국어 공부만큼 글쓰기 공부를 해라. 번역자는 엄격히 말하면 제일 처음의 독자아닌가. 팩트에 너무 갇히지 마라, 사전에 너무 갇히지 마라."

이젠 교과서·참고서 빼고 40% 이상이 번역물. 허나 우리나라처럼 저자가 없고 저자를 안키워주는 나라가 없단다. 출판사는 많지만 번역가는 제한됐다. "소설은 젊은 시절에 상상력이나 감수성을 갖고도 되는데 번역은 안그래요." 번역의 특징 두가지. 하나는 엉덩이 무겁게 집에서 하루종일 있으면 많이 나온다는 것. 시간과 비례하니까. 또한 오래할수록 실력이 는다는 것. "10년쯤되면 밥벌이로 힘드니까 다른 일을 찾는 거죠. 이때부터가 제대로 나오는데 말이죠. 지금 한국에서 부지런히 이 길을 가는 사람이 열 명 정돈데 번역해야할 양에 비하면 10%도 안되지요. 믿을만한 번역가도 흔치 않구요. 번역을 기다리는 책들? 정말 많지요."

재택근무를 하는 그의 집은 2인 작업장. 그의 진짜 조강지처 아내도 서울대 언어학과 출신으로 동업자이다. 각기 안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가면 출근이다. 격렬한 논쟁을 벌이던 초기를 지나 이젠 호흡같은 동지가 됐다. 집중력이 적합한 밤에 일하는 그와 달리 아내의 작업시간은 낮이다.

재택근무자들은 자기관리에 엄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김석희. 그만의 8·8·8규칙을 눈여겨 볼 일이다. "8시간 자고, 8시간 일하고, 8시간 휴식하는 걸로 규칙을 정하지 않으면 안되요. 제대로 안배하지 못하면 금방 무너져요."

# '귀향일기' 쓰고 싶다

"지나고 보니까 자기가 가는 길이 있는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왔네요."
그는 이제 귀향준비 중이다. 고향 바다 앞에 그는 풍경으로 앉아 있다. 젊은날의 초상처럼. 내년이면 거소를 고향땅으로 옮긴다. 현무암에 부딪혀 부서지는 바닷물결, 한라가 품안에 들어오는 고향은 오래도록 그를 기다려주었다. 실로 37년만의 귀향이다. 그는  이 설레는 마음을 '귀향일기'에 담아 고향에 답례 하고 싶어한다. 누구와 약속한 바도 없지만. 이 또한 독특한 귀향의미가 되겠지한다.

오십 넘어 한계령 미시령 우리강산 밟으며 눈물어린 애정을 더듬고 있다는 우리시대의 번역가 김석희. 그렇게 아껴두었던 제주 땅의 흙 한줌도 그렇게 꾹꾹 발로 찍고싶다. 이 새로운 처소에서 할 작업량만해도 벌써 2년정도는 이미 예약이 돼 있다. 그는 아마 창작의 공간에서 아마 그리운 애인이었던 소설을 불러낼 지도 모를 일이고, 또다른 즐거움과 보람을 주는 조강지처와 알콩달콩 늦둥이들을 쏙쏙 뽑아낼 지 모를 일이다. 우리앞에 선사할 그 낯선 얼굴들이 기다려진다.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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