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30년간 정무직 빼고 요직 두루 섭렵
정상회담 준비수석 대표 이어 '대변인' 활약

   
 
  ▲양영식 전 차관  
 
양영식 전 통일부 차관(67)은 대한민국 역사와 같이 가는 사람이다. 지난 2000년6월13일부터 15일까지 분단 55년 만에 처음 이뤄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역사적인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양 전 차관은 1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준비기획단장 겸 준비접촉 수석대표를 맡아 북측과 여러차례의 예비접촉을 가지며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에 기여했다. 그리고 회담이 진행될 때는 '정부의 입'으로 전 세계 언론을 대상으로 브리핑 하며 역사적인 뉴스를 전달했다.

제주시 출생인 양 전 차관은 제주북교와 오현중·오현고(7회)를 거쳐 고려대 정외과를 1963년에 졸업한 '4.19세대'이기도 하고, 대학 졸업뒤 통역장교로 복무하며 월남전까지 참전, 월맹의 구정대공세에 맞서 싸웠던 '역전의 용사'이기도 하다.

그는 1971년 고려대 대학원 정외과에서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연구'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으며 통일부에 들어가 2001년 퇴임할 때까지 만 30년간 긴 인연을 이어왔다.

양 전 차관은 통일부에서 정무직인 장관만 빼고 다 했다. 대변인·교육홍보실장·통일정책실장·남북회담상근대표·민족통일연구원장 등에 이어 통일부 차관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이 가운데 잊지 못할 직책은 아무래도 차관이던 2000년4월 맡았던 남북정상회담준비기획단장 겸 준비접촉 수석대표다. 당시 그에겐 무겁게 느껴졌을 모든 것들이 지금은 역사로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양 전 차관은 자기계발에도 계속 노력, 1988년엔 건국대 대학원에서 '역대정부의 통일정책 변천과정 연구'를 통해 정치학 박사학위까지 받았으며 2001년엔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에서 객원연구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퇴임후 지난해까지 고려대 북한학과 객원교수로 현장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달하기도 했으며, 지금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통일선교대학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겸 기획특별위원장과 제주도의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제주국제협의회 고문도 맡고 있는 양 전차관은 '통일정책론''내사랑 돌하르방(칼럼집)' '남과 북- 하나가 되는 길(공저)''남북대화 막전 막후-협상행태 분석, 베이징 남북차관급회담''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주요 당면과제' 등의 저서와 논문을 저술했다.

남북정상회담 유공으로 황조근정훈장과 대통령/민주평화통일회의의장상 등을 수상했으며 그동안 제주국제협의회·제공회·재경제주시향우회·한라축구회 회장과 서울제주도민회 부회장 등을 맡아 고향 발전에도 기여해왔다.

 서울=김철웅 기자 cukim@jemin.com


"제1차 남북정상회담 상호 공존위한 첫 걸음"

북한의 정세가 급변하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2000년6월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은둔에서 벗어나 독재자에서 일약 '스타' 반열로 오르기도 했던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악화설과 그에 따른 국제사회의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비핵화 2단계 조치인 핵불능화작업에 대한 북측의 일방적 중단과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이후 재개된 불능화작업 등 각국의 외교전이 한반도 주변에서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러한 긴장과 대립이 고조될수록 분단 55년 사상 최초로 이뤄졌던 1차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제주도 출신으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 준비기획단장 겸 준비접촉 수석대표를 맡았던 양영식 전 통일부 차관을 만나 정상회담의 의의와 북핵 문제를 포함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등에 대한 고견을 들어봤다.

"만남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사건"

△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의 의의와 의미를 말한다면.
- 분단 55년 사상 최초의 남북 정상간 만남이어서 만남 자체만으도 역사적인 사건이고 엄청난 충격이었다. 남북간 빙벽 깨기의 첫 햇빛 쪼임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양측의 최고 지도자들이 만남으로써 상호인정, 공존으로 가는 명실상부한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순안공항에서 인민군 의장대의 사열 받았는데, 이는 남북 관계의 냉전의 벽을 깨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긍정과 부정이 다 있지만 남북왕래 15만명·남북교역 18억달러 시대·탈북 1만명 돌파 등이 정상회담의 부산물이 아닌가 한다.

△ 당시 우리 민항기를 이용한 직항 방문도 큰 화제였다.
- 대한민국 국적기가 서해를 거쳐 북한 영공에 진입, 평양으로 직접 바로 날아갔다. 정상회담 준비접촉에서 이 얘기를 꺼내자 북쪽이 깜짝 놀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래서 우리는 "나중에 2차 정상회담 하러 올 때 고려민항기로 김포비행장에 오면 될 것 아니냐"고 응수했고, 또 "아무것도 붙이지 말고 와야 한다"는 주장에는 "비행기에 그려져 있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 북측도 비행기에 인공기 붙이고 와라"고 제안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 큰' 결심으로 이어져 직항 방문이 이뤄졌다.

△ 하지만 정상회담 뒤 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시끄러웠다.
- 정상회담의 교훈이라면 정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겠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는 점이다. 북측이 현금요청을 했고 3억달러 비밀송금 사건이 나와서 특검까지 갔다. 정상회담 성립을 위해 비밀 달러 거래를 논의하고 특검에 이어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자살사건까지 나온 건 역사적으로 비판받을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DJ가 "노벨평화상을 타기 위해 정상회담을 한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했던 흔적들 때문이다.

"협상은 과학 아니…무게 같을 순 없어"

△ 북측과 많은 경험을 통한 협상의 원칙이 있다면.
- 협상은 원칙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돼야한다. 하지만 협상은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꼭 무게가 같을 순 없다. 그래서 우리가 장형의 입장에서 융통성 있게 한 주먹 더 주는 자세를 가져야 남북관계를 리드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정상회담도 그렇지만 협상을 하면서 느낀 것은 역지사지의 철학이 제일 중요하다는 점이다. 북쪽의 의도를 잘 알려면 북쪽의 입장에 서면 대게 보이는 게 있다. 체면을 먹고사는 집단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체면을 건드리기 말아야 한다.

△ 1차와 노무현 대통령의 2차 정상회담의 차이라면.
- 2차 정상회담은 정권 말기에 했다. 그래서 조급했다. 그러기 때문에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장관급 회담에서 얘기할게 다 들어갔다. 백화점식으로 나열됐다. 국민들이나 전문가가 보면 이게 어떻게 정상회담 합의문이냐는 소리가 나온다. 정상회담에선 큰 기둥을 박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장관급 회담 등 실무접촉에서 뭘 해야 하는데, 많은 것을 담는 데만 급급했다.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어떻게 보나
- 아직도 북측에 마음을 덜 연 것 같다. '10·4' '6·15' 정신을 존중한다면서 옛날 것까지 한꺼번에 이행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실도 매듭을 풀려면 어느 한 고리가 있어야 한다. 대통령을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나 제3국인 중국이나 미국을 통해서 북측이 진솔하게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하는 장을, 멍석을 깔아주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말쟁이 통일은 진전이 없다. 정부가 액션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실도 매듭 풀려면 고리가 있어야"

△ 최근 인도주의적 대북지원 방침 등 정책 변화가 느껴지는데.
- 인도적인 지원에는 조건이 있으면 안된다. 대표적인 게 식량이다. 미국은 50만t을 아무 조건 없이 준다고 했다. 이미 배가 몇 차례 들어갔다. 우리는 5만t의 옥수수, 그것도 노무현 대통령이 합의한 것인데 미적거리고 있다. '남조선'이 주기 싫으면 세계식량계획 등 국제기구에 주면 된다. 적십자를 통해도 된다. 꼭 정부가 전달할 필요가 없다. 빵 하나 주면서 무릎을 꿇으라는 것처럼 북측에 "너희들이 달라고 그래"라는 식은 안된다.

△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악화설이 계속되고 있다.
-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악화설이 터지자 국내 일부 신문이나 전문가들이 "급변사태가 온다. 빨리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선 안된다. 공론화는 북쪽을 약 올리는 것이고 중국을 자극하는 것이다. 북에 급변사태 발생시 가장 우려되는 게 중국의 개입이다. 조용하게 국제 공조를 통해 중국이 절대 월경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은 뭔지를 찾아야지 '통일의 기회가 왔다'고 마치 접수하는 식으로 하면 위험하다. 말없이 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게 아직 MB정부에선 모자란 것 같다.

△ 북핵 문제에 대한 효율적인 대처방안은.
- 많은 산을 넘어야 하고 많은 산을 넘었다. 다행인 것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자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재개를 약속했다. 양측이 한발씩 물러선 것이다. 3단계 '핵폐기'라는 큰 산이 남아 있다. 그런데 현재 핵 주도권은 미국과 북한에 넘어가 있고 중국이 조연이다. 그래선 안된다. 우리 정부는 협상의 전략적인 아이디어를 개발, 미국과 중국 등 국제적인 공조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북핵 일괄타결을 위한 북미 수교와 함께 남북 관계의 획기적 개선 방안 등을 제시할 수 있다.

"관광문화 승화 차원 구체적 방안 절실"

△ 제주도 '촌놈'으로 차관까지 오르기 쉽지 않았을 텐데. 과정과 노력 등 소개
- 제주출신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 같은데 우리는 대한민국의 1%다. 하지만 실력은 10%이상임을 다 인정한다. 그래서 제주출신이 중앙무대, 국제무대에 가서까지 인정받기 위해선 역시 실력과 작은 일부터 충성, 말보다는 성실하게 충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실력을 기르면서 작은 일에 충성하되 신뢰를 줘야한다. 어려울 때 일수록 원칙에 서라는 말도 해주고 싶다.

△ 제주도의 생존 전략을 말한다면.
- 국제화시대 평화의 섬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너무 자꾸 스스로를 좁히려고 경향이 있다. 이 촌티를 벗어내야 한다. 중앙하고 접촉을 자주해야 한다. 우선 제주도 출신들의 엘리트 그룹들이 많다. 사회각층에 지도층 인사들이 많고, 제주출신 중앙 공무원들의 모임인 제공회도 있다. 다른 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제주도 선배들을 나서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주도의 수장인 도지사를 중심으로 제주사회의 뭉치는 힘, '모듬치기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옛날 지사 등을 고문관 고문이 아니라 진짜 선배 고문으로 모실 필요가 있다.

△ 개방화시대를 맞은 제주도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 미소가 필요하다. 관광객들로부터 "제주도 가니까 만난 사람마다 돌하르방 미소가 있더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해야 한다. 또 자연풍광만으로 관광을 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문화관광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 구체화 돼야 한다. 화해와 상생의 4·3이나 만덕할머니 같은 제주적인 것을 녹인 공연이 절실하다. 세계 섬들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던 제주섬문화 축제의 아이디어가 참 좋았다. 운영의 실패이지 발상의 오류는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김철웅 기자 cukim@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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