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연설서 시장 불안심리 해소 주력

서울=뉴시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국제금융위기와 관련, "많은 분들이 이번 위기를 10년 전 외환위기와 비교하는데 단언컨대, 지금 한국에 외환위기는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2009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통해 "구제 금융을 받아야 했던 10년 전과는 상황이 판이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현 상황과 1997년 외환위기 사태의 차이점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시장의 불안심리를 다독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 대통령은 "10년 전에는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의 금융위기였지만 지금은 미국과 유럽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파급된 결과 전 세계 주식시장이 동시에 폭락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가 더 걱정하는 것은 세계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의 침체로 파급되는 것인데, 이것이 선진국에서 촉발된 지금의 금융 위기가 더욱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해법도 10년 전과는 달라야 하는데 국제 공조에 적극 나서면서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하고 내수를 활성화해야 한다"며 "이 위기를 올바로 극복하면 한국 경제는 크게 살아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이번 위기가 끝나면 각국의 경제력 순위가 바뀔 것이고 대한민국의 위상도 높아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냉철하고 단호하게 이 상황에 대처할 것"이라며 "과연 우리가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분명히 말씀 드리겠는데,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정부는 시장이 불안에서 벗어날 때까지 선제적이고 충분하며 확실하게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며 "문제는 오히려 심리적인 것인데 실제 이상으로 상황에 과잉 반응하고 공포심에 휩싸이는 것이야말로 경계해야 할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루즈벨트 대통령은 세계 대공황 이후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말했다"며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주식이 가장 낮은 가격이었을 때 두려움 없이 산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이 엄청난 수익을 올렸던 기억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곧이어 이 대통령은 외화 보유고가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4/4분기부터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 상황이 호전되리라는 낙관론을 폈다.

이 대통령은 "외화 유동성 문제는 지금 보유한 외환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며 "금년 1월에서 9월까지 유가 폭등과 외국인의 주식 매도로 경상 수지 자본 수지가 모두 적자에 빠졌지만 외환보유고는 2600억 달러에서 2400억 달러로 8% 감소하는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4/4분기부터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면 외환 상황은 훨씬 호전될 것"이라며 "작년에 600억 달러에서 금년에 1000억 달러로 원유 수입에만 약 400억 달러가 더 쓰였는데 이것이 경상수지 적자의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다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내리고 있고, 만일 내년에 이런 수준이 유지된다면 상당한 국제수지 개선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원화 유동성도 마찬가지인데 금융통화당국이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다. 금융회사든 일반 기업이든 흑자 도산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금융위기와 관련, 여야의 초당적이면서 거국적인 협조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내수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 재정정책 기조에 따라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세출을 늘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정부의 이런 재정기능 강화에 국회가 적극 호응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예산안은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에 마련됐는데 그로 인해 작은 정부 기조에서 다소 긴축적인 방향으로 예산이 편성됐다"며 "정부는 세계적 실물경제 침체에 대비해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확대하고자 하는데, 예산 지출을 과감히 확대하고 수출 증가 둔화에 대응해 내수를 활성화하는 선제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제시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세계는 지금 '낮은 세율이 국가 경쟁력'이라는 인식으로 세율 인하 경쟁을 펼치고 있는데 올해에만 영국,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등 신흥국들도 세금을 내렸다"며 "감세에 소극적이던 일본까지 합류했는데, 감세는 경기 진작의 일환으로 필요한만큼 내년에 13조원 수준의 감세를 통해 가처분 소득을 늘리고 투자를 촉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 대통령은 "불을 끌 때도 초기에 충분한 물을 부어야 단시간에 진화가 가능하다"며 "이번에 국회에 제출한 금융기관간 외화차입금 보증 한도 1000억 달러는 사실상 다 쓰일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지만 이런 선제적 조치를 취하면 우리 은행들이 돈 구하기 쉽고 금리부담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국제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글로벌 공조 필요성도 역설했다. 이 대통령은 "안에서의 이러한 노력과 함께 우리는 바깥으로 글로벌 공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며 "기존의 금융체제로는 더 이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유사시에 대응할 능력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11월 15일 워싱턴에서 긴급히 개최될 20개국 세계금융정상회의에서도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개편을 포함해 전향적인 방향으로 국제공조가 이루어지도록 앞장 설 것"이라며 "아울러 한중일을 비롯해 동북아의 공조체제 구축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해선 안 된다는 점도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해선 결코 안 된다"며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각국이 관세장벽을 높여서 세계 경제가 더 악화되고 회복이 늦어졌던 잘못을 반복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국 방어에만 치중해 축소 균형 쪽으로 세계 경제가 옮겨가는 사태는 막아야 하는데 이에 대해 이미 많은 국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며 "온 세계가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독려했다.

국제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 저탄소 녹색성장, 지방행정체제 개편 등은 차질없이 진행시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과감한 규제개혁은 경제 난국을 극복하는 지름길이다. 규제가 줄어야 투자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생겨난다"며 "규제개혁과 저탄소 녹색성장,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공기업 선진화 등은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일각에서는 이번 국제금융위기를 맞아 금융규제를 강화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데 건전한 감독 기능의 강화를 무조건 규제강화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며 "세계표준과 동떨어진 낡은 규제와 결별해야 한다. 이른바 '국민 정서'를 빌미로 아직도 성역으로 남아 있는 '덩어리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배는 결코 출항할 수 없다"며 "몸 부풀리기에 급급한 일부 금융권의 행태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위험 회피만을 위한 전당포식 금융관행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또 "경제 규모에 비해 경쟁력이 뒤떨어진 금융산업을 방치할 순 없는데 진입 장벽을 낮추고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며 "그 대신 옥석을 제대로 가리는 신용평가기능과 자산의 건전성에 대한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위험이 두려워 규제를 풀지 말자는 것은 선수가 다칠까봐 경기에 내보내지 말자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며 "정부는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엄밀히 구분해서 경쟁을 촉진하고 민간의 창의를 북돋우는 규제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은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저력을 믿어야 한다"며 "이 저력을 믿고 고통 분담과 협력하는 자세로 침착하게 행동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희망의 출구로 나아가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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