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딛는 잠녀의 삶-서귀포시 강정어촌계

상시 작업 잠녀 136명, 60대 이상이 절반 훨씬 넘어…가꾸는 풍족한 바다 ‘자부심’
바닷바람보다 먼저 와 닿는 ‘노란 깃발’…바다 기대왔던 사람들 삶과 희망 여전

물 위 세상에선 사람들이 오랜 시간 평행선을 그리고 있건 말건 바다는 말이 없다. 어쩌면 상처받고 속이 상할 것은 바다인데 누구하나 바다에게 묻지 않는다.

깊이 바라보는 것은 우리에게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고통의 원인과 직접 부딪혀 해답의 소리에 깊이 귀 기울여 많은 깨달음을 얻는다고 했다.

오랜 고민 끝에 닿은 그 곳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바다에 기대왔던 사람들의 삶과 희망은 다른 어느 곳에 비길 수 없다.


△강정, 바다에 대한 강한 자부심

다른 바다가 소금기 섞인 알싸한 냄새로 다가왔다면 강정 바다는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노란 깃발’이 사람들을 맞는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취재가 끝났어야 할 곳이지만 강정 바다와의 만남은 오랜 망설임 끝에 이뤄졌다.

다른 지역에 비해 넓고 큰 바다 어장을 가지고 있는 이곳 사람들은 바다와 바다에서 나는 물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해산물 앞에 ‘강정’이름을 붙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곳 바다 속 면면을 지키고 있던 잠녀들 역시 세월을 빗기지 못했다.

상시로 작업하는 잠녀는 모두 136명으로 이중 40대가 9명, 50대가 23명이다. 하지만 2명 중 1명은 60대(60명)라고 해도 무방하고 70대가 37명, 80대 이상이 7명이나 된다.

물질작업은 한달 6일이다. 보편적으로 ‘조금’에서 ‘서물’까지 나흘간 작업을 한다.

‘기적의 바다’로 불리는 강정마을 앞 무인도 ‘서건도’ 작업은 법환리 잠녀와 함께 한다. 한 물찌(‘아끈조금’ ‘너물’)에 2번씩, 한달이면 4차례 작업이 이뤄진다.

해초가 가득한 섬 둘레가 까맣게 보여 썩은섬으로 불리는 서건도는 썰물 때 시커먼 돌밭을 걸어 닿을 수 있다. 섬 주변으로 해산물이 많아 물질하는 잠녀도 힘이 나는 곳이다.

△풍족한 바다 위한 쉼없는 노력

강정바다는 비교적 ‘좋은’편이다. 공동작업장이 있기는 하지만 바다를 나눠 한군데씩 작업을 하고 다른 바다에 드는 방식으로 관리하고 있다.

대포와의 경계인 ‘기정’에서부터 법환과의 경계인 ‘서건도’ 동쪽 300m 지점까지, 소라와 전복, 오분작 같은 ‘물건’ 외에도 갈래곰보나 천초같은 해초류, 성게·문어 등이 망사리를 차곡차곡 채운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연간 12만~15만㎏이나 생산됐던 소라로 자식들 공부도 시키고, 밭이며 집을 마련하는데 도움을 줬다. 지금도 연간 소라 TAC물량이 8만㎏나 되지만 예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과거만 바라보기엔 턱없어 보이지만 공동 작업장을 해경하고 며칠간 대상군 잠녀는 하루 150㎏이 넘는 소라를 잡을 정도로 풍족하다. 1500㎏정도 작업하는 천초를 올해는 가격도 좋지 않아 아예 소라 먹이 삼아 작업하지 않았다.

풍족한 바다는 거저 오지 않는다. 공동양식장으로 사용하는 ‘세벨’과 ‘앞바당’, ‘돈지’에 10년 전부터 전복과 오분자기, 홍삼 종패를 뿌렸다. 양식장은 일년에 두 차례 6월과 12월 3일 정도 연다. 전복종패도 수심이 얕은 곳에 뿌려서 다른 곳보다 성공률이 높은 편이다.

상군들은 뱃물질을 한다. 15년 전만해도 잠수기선이 있었지만 폐선 후 곳물질만 했었다. 하지만 올해 ‘강정호’를 진수하면서 먼 곳에 나가 작업하는 잠녀들이 하루 7000원을 내고 이용하고 있다.

△말없는 바다, 상처투성이 현실

어촌계 사업은 크게 ‘해녀의 집’과 직판장, 어촌체험어장이 있다.

해녀의 집은 70세 이하 어촌계원 중 희망자를 중심으로 꾸리고 있다. 지난 7월 문을 연 식당은 수익사업 명목으로 2년간 임대료 없이 운영하도록 하는 등 조건은 나쁘지 않지만 평생 바다를 업으로 해온 잠녀들에겐 모든 게 생소하고 서툴다고 했다.

어촌체험어장은 ‘원담 체험’이 중심이다. 세벨원은 이름 그대로 지금도 멸치가 많이 잡혀 멸치철만 되면 체험어장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율관리 사업으로 277.68㎡ 규모의 수산물 직판장을 개설, 이중 244.62㎡는 공동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다만 놓고 봐서는 ‘해군기지’라는 어울리지 않은 단어로 오랜 시간 마을 사람들끼리 싸우는 현실을 짐작하기 어렵다.

바다에 기대 살아온 사람들에게 바다를 앗아가는 데 따른 충격은 실제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적정한 수준’보상이나 무한대의 바다의 가능성을 따져 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터.

바다는 말이 없는데 사람들은 아직도 다툼 중이다. 그런 모습들에 바다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발로 딛는 잠녀들의 삶’ 다음 이야기는 제주시 외·내도동 어촌계이며, 관련 내용은 해녀박물관 홈페이지(www.haenyeo.go.kr)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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