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법정스님

 법정 스님. 그의 '무소유'를 기억하는가. 70년대 그는 소유의 욕망에 휩싸인 모든 살아가는 것들에게 물었다. 사람들의 내면을 향해 서늘한 죽비를 내리쳤다. 시대와 온갖 삶의 풍진들에게도. 그도 이제 출가 52년. 오랜 세월 그렇게 산사의 시간을 흘려보냈던 그는 여전히 삶의 녹슬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자연과 살고 있다. "청명한 가을 날씨를 보면,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좋은 일 궂은 일도 한때일 뿐 영원한 것은 없다. 그 한 때에 갇혀서 넘어지지 않아야한다" 지난해 많이 앓았었던 그가 얼마전 서울의 길상사 가을 법회에 나타나 들려주었던 법문이다. 우리 삶의 무거움을 덜어내고, 너무나 쉽지만 행하지 못했던 '무소유'를 한번쯤 생각하게 하는 계절, 그 가을이 간다. 산중 추위가 버거워 잠시 제주의 산하에 몸을 녹이러 온 법정스님을 만났다.

# 무소유란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말란 것

   
 
 

 법정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 출생. 1956년 통영 미래서 효봉스님 제자로 출가. 1970년대 봉은사 다래헌에 거주하며 한글대장경 역경에 헌신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역경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및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70년대 후반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살았고, 2003년 12월 서울 길상사 회주 직에서 물러나 현재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무소유」 「오두막편지」 「서 있는 사람들」 「물소리 바람소리」 「홀로사는 즐거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여라」 「맑고 향기롭게」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수타니파타」 「진리의 말씀(법구경)」 「인연이야기」 등.

 
 

그는 '그 곳에서 그렇게 산다'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라는 법정스님. 그는 자신을 철저하게 비워내고 무소유로 살고자 한다. 단지 오두막의 벗들인 토끼나 고라니나 노루같은 산짐승들이, 온갖 꽃들과 자작나무, 전나무, 가문비나무들을 소유할 뿐이다. 그러나 정작 속세에서 버린다는 것, 갖지 않는다는 것, 무소유란 그리 쉽지 않은 이름이지 않은가. 그가 답한다.

"하날 가지면 되지 둘을 가지지 말란 거예요. 필요없는 것을 갖지 않을 때, 사람이 단순해지고 맑아져요. 그런데 불필요한 것을 많이 갖게 되면 그것을 치다꺼리 하느라고 우리가 얼마나 많이 신경을 써요. 인간관계도 그렇구요. 나 뿐 아니고 무소유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꼭 필요한 것만 갖지 불필요한 것을 갖지 말란 것이지요. 마하트마 간디가 그랬죠. 사람이 필요한 만큼은 지구 자원이 감당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 현대 사회에서는 온 세계가 너무 탐욕을 부리거든요. 그러니까 자연재해라든가 환경문제라든가 자원고갈이라든가 문제가 나오잖아요."

강에도 산에도 주인이 없다. 보고 느끼면서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주인이란다. 그에게 무소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는 것. 그는 침묵의 돌 한테 배워야 한다고 가리킨다.

궁극은 행복에 대한 욕망.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다. 그는 말한다. "행복과 불행은 밖에 있지 않고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있다". 남이 가진 것을 다 갖고 싶어하고, 남이 좋은 차 타면 자기도 좋은 차 타고 싶어하고, 자기 그릇이, 분수가 있는데 남과 늘 비교하고, 그래서 우울증도 오고, 열등의식도 생기고 그런다는 것. "행복해지려면 스스로 물어보면 해답이 거기에 있어요."

법정이라는 이름은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같은, 자유의 이름 그 자체였다. 이런 자유의 스님이 누리는 산중생활의 즐거움  하나는 책을 읽는 것. 그는 컴퓨터 시대에도 원고지 한칸 한칸을 메워가는 기쁨을 버리지 않는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보지 않아도 될 것은 보지 말고, 읽지 않아도 될 글은 읽지 말아야 한다. 옷이나 가구, 만나는 친구, 전화 통화 등도 또한 마찬가지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적게 보고, 적게 말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권하고 싶다. 이 폭력과 인간 부재의 시대에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불필요한 사물에 대해서 자제와 억제의 질서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다"고 만년필로 썼다.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있을 수 없다. 자명한 진리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물건이 아닌 바에야.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것을 자주 잊고 산다.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의 역사처럼 느껴진다"는 법정스님. 그도 어느날 아끼던 난초를 벗처럼 키우다 친구에게 그 유정을 떠나보내면서 홀가분함을 느꼈다했다. 이때부터 하루 한가지씩 버려야겠다고 다짐한다. 다 읽은 책들마저도 떠나보냈다.

# 80년대초, 한라산 고무신 신고 올라

그가 처음 제주도 한라산을 밟은 때는 80년대초. 고무신 신고 왔다. 도반들과 함께 목포에서 밤배를 타고 왔다. "소관스님들이랑 10월9일날 한라산 등반했어요. 그때는 아주 원시적인 길이었어요. 육지에서는 볼 수 없는 빨간 꽃이 핀 유도화를 가을에 보니까 아주 신기하더라구요." 그렇게 닿았던 제주도. 한라산도 매혹적이었지만 제주도는 색다른 남국이었다. 제주도만의 특별한 색감이 있었다. 초록에 붉은 꽃, 늘 보던 사람들이야 감흥이 안그러겠지만 뭍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특이했다.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어떤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지요. 잘 가꿔진 가로수는 도시미관이라든가 제주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는 한동안 제주땅을 자주 밟았다. 1994년 스님 발의로 시작된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의 제주모임 결성 때에도 왔다. 이 모임은 우리들의 마음, 세상,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가꾸며 살자는,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의 모임. 제주를 포함해 전국적으로 결성돼 있다.

"제주도는 따뜻해서 좋아요. 따뜻한 남쪽 나라가 그리워서 자주 찾아 왔어요. 제주는 겨울에 와도 춥지 않잖아요". 지난해 앓았던 몸이 많이 추스러졌다는 그는 그냥 노쇠현상이라고 말한다. 이번에는 3~4년만에 찾은 셈. 제주에 대한 애정만큼 제주도를 바라보는 눈도 많이 깊어졌고, 우려도 깊어졌다.

# 자연만이 문명 오염 유일하게 정화하는 역할

"어디건 자연이 훼손되고 있어요. 여기도 그렇죠. 그런 말이 있습니다. 이 땅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아니란 거예요. 우리의 후손들 것을 우리가 잠시 빌리고 있는 건데 후손들 한테 우리가 빚을 넘겨주지 않아야 된단 말예요".

우리는 정말 당대에 전부 살아야 하는 양 자연에 손을 댄다. 당대에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처럼. 우리 앞에 놓인 길은 늘 '공사중'. 어느 한시도 길은 쉬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숨을 쉬되, 힘겹다. 그의 자연관은 그렇다. 

불교적인 표현을 하자면 우리 대에 이은 다음 세대라는 것이 바로 우리의 내생아니냐고. 그러면 그때가서 받아써야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후손이란 우리의 내생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 빚은 우리 자신한테 해당된다는 것이란 말씀이다.

"우리만 당대에 살고 마는게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인류가 농경을 통해서 살 때는 겸허했다구요. 수천만년 지구라든가 자연을 보존해온다는 것이 우리가 자연과 일체감을 이루며 살면서 상당히 겸허했어요. 산업화되고 정보화 사회에 살다보니 대지의 은혜를 망각하고 그냥 많은 물건을 소비하고 생산하고 있지요. 이것만을 능사로 살다보니 자연이 많이 훼손됐어요. 문명에 오염된 세계를 유일하게 정화하는 역할을 하는게 자연이잖아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구요".

그는 무엇보다 자연이 상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다. 특히 도시는 숨을 쉴 수 없을만큼 공기가 오염됐다. 그래도 제주도에 오면 초록이 있고 자연이 살아있다는 것이 다행스럽다는 법정스님. 또한 시간의 힘으로 가치를 얻는 것도 있단다.

가령 화산도의 원형질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제주돌문화공원은 시간이 흐르면 더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매운탕집 같은 장삿집이 아니잖아요. 제주가 아니면 할 수 없는 문화유산이고, 땅속에 잠든 것 묻힌 것 살려내서 온 세계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한 것이니까요".

# 제주의 길 도시인들 질주하고 싶은 마음 일으켜

길을 많이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망한다는 법정스님. 자연재앙도 길이 상하로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더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제주도 자연은 도민들 스스로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돼요. 물론 관에서도 개발한다해도 최소한도로 해야 하지요. 편리한 시설 같은 것은 앞으로 대단치 않게 여기게 돼요. 편리함을 보고 가지 않잖아요. 자연 자체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관광자원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한 것이지요. 제주에 길을 너무 많이 뽑아놓으니까 도시에 갇혀있던 사람들이 막 질주하고 싶겠더라구요". 그럴수록 교통사고율도 많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그는 오래전부터 이 산하, 대지는 자동차의 타이어를 위해서 보다는 우리 두 발을 위해서 예부터 있어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자연 속에는 미묘한 자력이 있어 우리가 무심히 거기에 몸을 맡기면 그 자력이 올바른 길을 인도해준다고 옛 수행자들은 믿었다. 자동차에 의존하지 않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사람만이 그 오묘한 자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고.

자연보호란 말들을 많이 하는데 자연은 보존하는 것이지, 보호하는 것이란 아니라고 잘라말하는 법정스님. "사람이 어떻게 자연을 보호해요?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것이 보존이죠. 안그래요?" 제주도가 살 길은 천혜의 자연을 보존하는 것. 무엇보다 행정관료들이 그런 인식을 우선하지 않으면 보존이 안되고 항상 깨지기 마련이란다.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는 법정. 이 시대, 많은 이들이 그의 글을 도반으로 삼는다. 그의 글에서 위안과 평정을 삼는다. 그러한 마음의 위안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아파봐야 건강이 얼마나 고맙다는 것, 소중한 지 알 수 있어요. 몸이 아픈 것,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예요. 마음의 상처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해요. 그것은 스스로 물으면 해답이 나와요. 외부에서, 남한테 해답을 구하면 안되지요. 해답은 자기자신한테 있어요".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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