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 다리 되어 연재 통해 본 2008년

‘있어서’가 아니라 ‘할 수 있어’가 전제…필요하다는 존재감이 큰 힘

아직은 살만한 세상 만나고 관심 필요한 복지 사각지대 발굴에 보람

지난 29일 제주특별자치도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 참 반가운 전화가 왔다.

친 혈육은 아니지만 증손자뻘 피붙이를 8년여동안 보듬고 있는 김승순 할머니(74)와 뇌종양으로 투병하면서도 할머니를 먼저 걱정할 정도로 의젓한 수동이(12)의 사연(제민일보 12월 27일자 1면)을 본 한 익명의 독지가가 치료비 지원을 약속했다는 내용이다.

1년 동안 40차례 넘게 나눔을 실천하고 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은 것은 ‘아직 이 세상은 살만하다’는 정직한 진리다.

△‘나눔’의 용기

뭔가를 나누거나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은 생각만큼 어렵지 않다. ‘험한 세상 다리 되어’를 통해 만난 나눔 실천자 중에 ‘특별한’사람은 없었다. 스스로도 특별하기보다는 평범
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올해 71살, 은발의 정태민씨는 도내 최연장 자원봉사자라는 말에 오히려 미안해했다. ‘큰 일’이 아니라는 게 이유였다.

자신이 직접 텃밭을 가꿔 거둔 수확물을 직접 손질해 푸드뱅크까지 가져다주는 50대 여성 기탁자는 끝내 이름을 밝히는 것을 거절했다.

110가구에 자비까지 들여 밑반찬을 제공하는 온누리봉사회나 매달 첫 금요일 무료급식을 만들고 배식하는 한라대 호텔조리과 야간 03학번 조리사랑 나눔회, 장애우들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장애인종합복지관 팡돌회 ‘징검다리 공부방’, 지역 위기아동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꾸리고 있는 애월읍 꿈&지키미 센터, 농아인들의 낮은 목소리 역할을 하는 손소리 봉사회, 도청소년상담지원센터 청소년동반자 등 모두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진정한 나눔을 보여줬다.

결혼이주여성피해쉼터의 안행자 어머니(65)는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했지만 자식같은 이주여성들을 위해 자신을 내놨다.

고민좌 제주청소년쉼터 원장이나 제주여성인권연대 현장상담센터 ‘해냄’의 양갑비 상근활동가, ㈔제주도지체장애인협회 부설 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홍부경 상담실장, ㈔한국장애인부모회 제주도회 문순애 사무국장, 임정민 국제가정문화원 원장, 양창근 가정위탁지원센터 업무지원팀장 등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란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밖에도 가족을 내어준다(청소년가족봉사단 ‘풀피리가족’)거나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꾸리는 지역아동센터 관계자들과의 만남은 소중함과 함께 사회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는데서 의미가 있었다.

△아픔은 나누면 반이 되고

‘험한 세상 다리 되어’를 연재하며 어려웠던 부분은 정말 도움이 필요하지만 방법을 찾지 못할 때였다.

가해자인 남편의 위협과 협박 등으로 얼굴을 내밀지 못했던 가정폭력피해여성쉼터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모임’은 빠듯한 운영비를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 전통차를 만들었지만 성격상 홍보가 어려웠다.

얼굴색이나 말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받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제주이주민센터 상담팀을 통해 스리랑카 출신 리산씨의 사연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뇌성마비 아들을 위해 양계장 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끝내 강제출국 당했던 리산씨는 코리안드림의 슬픈 단면을 보여줬다.

‘조손 가정’은 지역 사회가 안고 가야할 큰 숙제라는 것도 확인했다. 부모 세대의 단절로 인한 소통 부재는 조손 가정의 큰 문제였다. 고령의 조부모는 아직 어린 손자·녀를 다 이해하기 어려운데다 경제적 지원도 약속하기 어려웠고 부모와 이별한 어린 아이들에게 조부모를 잃는 이중의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멀리 중국에서 전화를 걸어와 “가정폭력 피해여성을 보듬어 줄 수 있다”던 한 목사의 제의는 너무도 고마웠다.

“‘이만큼’ 했으니 ‘더’도 꿈꾼다”는 제주이어도지역자활센터 자활공동체 ‘제주다(茶)드림’ 이나 도움을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다던 농아복지관 시니어스리빙스쿨 수료생들의 적지만 뜻깊은 성금은 기준 좋은 ‘나눔 바이러스’를 확인하기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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