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딛고 주변 돌보는 김문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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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택씨는 후천 장애를 얻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며 삶의 힘을 얻는다. | ||
본지 사연 소개 수연이의 '키다리아저씨'자청…정부 관심 끝난 이후 '독립' 도울 계획
수연이(가명·5·제주시) 얘기에 목소리가 울컥해진다. 김문택씨(58·제주시 노형동)는 고기가 먹고싶다던 수연이를 데리고 식당에 갔던 일을 꺼내며 이내 눈가가 붉어졌다.
"처음 신문(제민일보 2009년 4월 23일자 4면)에서 사연을 보고 그냥 가슴이 찡해져서는 그대로 시외버스를 탔다"는 김씨는 "어린 게 먹고싶다던 고기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정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런 수연이의 '키다리 아저씨'를 자청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김씨는 뇌병변 2급 장애인이다. 지난 1990년 한국통신에서 근무하던 중 쓰러져 후천 장애인이 됐다. '호사다마'라는 말을 확인이라도 하듯 사고 후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게 됐던 그는 교통사고로 아들을 앞세우는 등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었다.
그랬다고 좌절했다면 지금의 그는 있을 수 없었다.
사찰에 땔감을 모아주고, 정미소 구석방에서 주인집 아이들을 가르치며 간신히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던 어려운 시절을 되새기며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손수레를 끌며 재활용품을 수집해 모은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도운 지 벌써 16년째다.
그렇게 '가족'이 된 소년소녀가정 남매는 이제 4살 짜리 아이를 둔 엄마와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 혼자 외로운 노년을 보내던 무의탁 할머니는 지난 2003년 1월 양지공원에 모셨다. 서로를 의지하며 8년 넘게 인연을 맺었던 중증장애인 중 한 명의 마지막도 지켜봤다.
김씨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10년 가까이 새벽 수레를 끌다 보니 휠체어가 목발로, 이제는 보조기기 없이 혼자 보행이 가능할 정도가 됐다. 지난 2001년 제주작가 신인상을 받는 등 시인으로도 자리를 잡았다. 지난 2007년에는 장애극복상을 받기도 했다.
재활용품 수집하는 일이 녹록치는 않다. "재활용품 수집처럼 경기를 타는 일이 없다"는 김씨는 "지금은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오는 할머니·할아버지까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부지런히 1주일동안 빈병과 폐지를 모으면 3만~4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달을 매달려도 그만큼 벌기 어렵다.
그런데도 수연이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고 싶어한 이유가 궁금하다. 김씨는 "내가 도운 것이 아니라 도움을 받은 것"이고 했다. "장애가 생기고 나니 힘든 이웃이 오히려 살아가는 의지가 되고 쉼터가 됐다"며 "나눔은 그런 나에게 유일하게 '힘이 되는 일'"이라는 말이다.
김씨는 "착실히 직장생활을 한 탓에 몇 년 있으면 국민연금도 받게 되고 당장도 굶지 않을 만큼 살고 있다"며 "정부 등에서 수연이에 대한 관심이 다한 이후 도움이 될 수 있게 돕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소년소녀가정을 보듬다보니 막상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혼자 설 때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체득한 탓이다. 김씨는 "수연이와 내가 아니면 손댈 수 없는 통장을 만들어 조금씩 돈을 모을 계획"이라며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수연이가 크고 나면 엄마·아빠를 대신해 자신을 지켜봐 준 모두를 알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김씨는 12일 제주탐라장애인 종합복지관에서 열린 두 번째 시집 출판 기념회를 통해 수연이과 백혈병으로 투병중인 지적장애인 김정훈 학생(사대부중 1) 후원을 공식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