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전 제민일보 편집국장>

'보도의 공정성'은 기자의 직업적 형식입니다. 이른바 '기자의 권위적 지위'도 편향에 빠지지 않는 능력에 의존합니다. 보도가 공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사내용이 균형적이어야 합니다. 또한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일수록 더욱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나 '균형보도'란 모든 당사자들의 입장에 대한 단순한 보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보도의 균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사의 양과 질이 공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기계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단편적인 부분들의 양화된 내용보다는, 구조화된 메시지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보도의 객관성 문제도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연구들은 완전한 객관적 보도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비단 그런 연구결과가 아니더라도, 특정한 사안을 기사거리로 선택하는 그 결정 자체에 이미 주관성이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객관성은 중립이나 가치배제와는 구별돼야 합니다.

기사는 우연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미디어 조직 관행의 산물입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기사를 만드는 기자' 역시 특정한 뉴스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객관성은 구조적으로 주어지는 제 요인들에 기자들이 적응하는 전략으로서 나타난 하나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주장은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사실상 객관적 인식에 대한 증거를 제시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오히려 그건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객관성의 의미'마저 포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변함없이 '사실적 적합성'은 현실을 표현하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균형보도'를 위해 '객관성'을 운위하는 것은 위선일 수 있습니다. 모든 당사자들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보도한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끌어모아 보도하는 것은 일견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그건 '산술적 균형'일 뿐입니다. 그것은 너무 소극적입니다. 더러는 '몸을 사리는 비겁함'으로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관점'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비록 객관성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더라도 반드시 중립적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저는 쉽게 동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회쟁점을 구조화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라면, 제민일보가 지향하는 '가치'만큼은 분명해야 합니다.

'객관성'과 '언론의 자기 목소리'는 양립이 가능합니다. 언론은 가능한 한 '자기 목소리'를 내야합니다. 물론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언론사의 또 다른 의견'으로 풀어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많은 위험부담이 있습니다. 자칫 '작심한 사람들의 발길'에 채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곳이 언론이 설 자리입니다. 신문이 언론인 것은 바로 그런 용기 때문입니다.

'관광객 카지노' '투자개방형 병원' '한라산 케이블카' 등 굵직한 지역현안이 언론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김태환지사가 이미 도민과의 대화에서 그것의 추진을 재강조한 이상(제민일보 6월13일자 보도) 망설일 필요가 없습니다. 최소한 제민일보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제대로 정리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쟁점을 구조화해야 합니다.

'뜨거운 계단위에 앉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는 것' 그때 증명되는 것은 비겁함입니다. 화려한 구호에 마비되어 자유롭지 못한 허위위식을 보려고 하지 않는 것, 그건 책임회피입니다. 그러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말이 가당치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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