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놀랐어요. 내가 살던 옛집을 찾았는데 그 집이 없어졌더군요. 사철 푸른 바다를 볼 수 있었던 작은 올래는 완전히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곳은 너무나 쌩쌩 달리는 차량들 때문에 걸어볼 수도 없는 도로가 돼 있었지요"

한 고향 방문객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소멸의 느낌은 이미 거스를 수 없게됐다. 그 집이 있었던 아득한 길을 걸어본다는 건 이상한 향수에 속할 뿐이다. 그렇게 우리가 잃어버린 길이 얼마나 될까.

길을 걷다가 느닷없이 달려드는 차량의 위협을 받은 적 없는 이 있겠는가. 새천년에도 공사중인 도로가 도처에 보인다. 시민들은 언제면 포장이 끝나나를 생각하게 되고 길과 길로 이어지는 지도가 다르게 그려지고 있다.

그렇게 정교하던 제주의 올래는 거의 사라져 사진이나 영상에 기록된 소중한 자료로 남아있어야 할 지경이다. 그 올래에서 천진하게 뿌렸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노인들이 편안히 앉아 담소를 나누던 한 때의 풍경 역시 많이 사라져 버렸다.

눈을 뜨면 변하는 산업혁명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차도를 피해 걸어다닐 만한 길을 찾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러나 아무리 편리하게 달라진 길의 고속화 시대라지만, 정작 길은 인간에게 소요할 수 있는 공간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즐겁게 걸을 수 있는 권리까지 버려야될까.

사람들은 아예 길의 문화를 누리는 것보다 길의 속도감에 움츠리고 조마조마하게 움직여야 한다. 아침이면 아이에게는 '차조심하고 다녀라', 노부모에게도 '조심하세요'하는 말이 인사가 됐다. 길을 조심하라는 말이 현실적이다. 우리의 보행중 사고는 얼마나 극심한가. 인구 10만명당 보행중 교통사고 사망자가 스웨덴 0.84명, 독일 1.44명, 캐나다 1.54명, 일본 2.62명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무려 10.31명이나 됐다는 조사가 있었다.

길도 하나의 문화이다. 조잡하기만한 거리의 색과 간판, 물론 거리를 밝게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아직도 공공근로의 개념으로만 인식되는 거리벽화들, 자연과 역사성과 삶이 거의 어울리지 않는 조형물.... 그땅의 거리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문화가 어디있을까. 그러한 길의 문화는 자치단체와 시민의 미적감각과 환경의식에 따라 가꿔진다.

우리에게 길은 모든 삶의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아이들은 몸을 여물게 했으며, 노인들은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무료를 달랬다. 무엇보다 인간이 중심이 된 길, 인간이 걸을 수 있는 권리가 샘 솟는 길, 또 걸어서 가다보면 삶의 무엇인가가 터득될 것만 같은 그런 길, 새천년엔 인간에게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는 권리를 찾게 됐으면 한다. 아름다운 바다와 산과 오름을 끼고 앉아 있는 제주에 사는 이들이, 그리고 제주에서 숨통을 텄다는 사람들이 정말 걷고 싶은 거리로 간다면.

전 세계가 새세기로 들어서서 21세기 도시계획에 들어갔다. 생태도시로 전화하기위한 거리 만들기에 바쁘고 있다.

그런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도시'란 구호는 참으로 추상적으로 들린다.
독일은 하노버시와 가까운 한 도시를 생태도시로 만들기위해 이미 90년대초 98%에 도달하는 도로포장률을 55%수준으로 낮추고 복개된 실개천을 휴식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자연으로 만드는 노력을 벌여 생태도시로 탈바꿈 시켜놓았다. 사람들은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 끝없이 부수고 땜질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길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질없이 도로에 덕지덕지 뿌려지는 포장비보다 아예 도심공원을 가꾸고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일에 더 신경을 쓰거나 탁아소하나 더짓고 복지문화공간 하나 더 만드는 데 투자하는, 인간의 삶의 질에 무게를 두는 쪽이 훨씬 든든한 일 아닐까.

길을 걷다보면 자신의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인간중심적인 길의 형태가 됐으면 한다. 무조건 확장보다 즐거운 길은 좁든데로 에돌아 갈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마을 길들은 잘 살려냈으면 한다. 문화가 있는 길이라면 한번쯤 한없이 걷고 싶은 길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땅에 대한 애착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거리를 만들어간다는 것 말이다. 새천년 이땅의 길은 조잡하게 덧칠되지 않은 환경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길이었으면 한다. <허영선.편집부국장대우 문화부장><<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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