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청소년상담지원센터 부설 해밀학교
| 학교가 몸에 맞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과거에는 경제적 빈곤을 이유로 학교를 떠났다면 최근에는 학교에 대한 불만으로 학교를 떠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다. ‘학업중도 포기’나 ‘학교 부적응’이란 말은 이들 청소년을 설명하기에 많이 부족하다. 많은 수의 청소년들이 ‘학교’가 맞지 않아 떠났을 뿐 ‘학생’이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
광주에는 교육청 관할이 아닌 학교가 하나 더 있다. 사고를 치고 수강명령을 통해 나잘난학교에 등교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학교라는 틀을 견디지 못한 청소년들이 세상을 향한 출구를 찾아가는 해밀학교가 있다.
# ‘학교’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었을 뿐
광주청소년상담지원센터 부설 해밀학교에는 대체적으로 자발적 학교밖 청소년들이 모인다.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있는 학령기 청소년들이 매년 늘어나면서 정부는 지난 2003년 부터 지역별로 해밀센터를 확대 설치했다. 아니 했었다.
해밀센터는 네덜란드에서 오래전부터 운영하고 있는 ‘인스텝 프로젝트(Instep Project)’를 모델로 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인스텝 프로젝트는 문제 해결까지의 전 과정에는 청소년복지기관과 사회사업기관·경찰·법조계·교육당국·의료기관 등의 전문가로 구성된 하나의 팀이 체계적으로 개입한다.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학업중단 청소년이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광주는 당시 경기도·제주도와 함께 시범 설치 지역으로 선정, 비교적 일찍 사업이 시작됐다. 인력 부족과 체계적 지원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아 대부분 지역에서 ‘무늬만’남은 것과 달리 광주청소년상담지원센터는 ‘학교’란 명칭과 함께 전국에서는 유일하게 프로그램을 정착시켰다.
박병훈 광주청소년상담지원센터 소장은 “학교밖 청소년들의 요구를 미리 파악하고, 적용한 것이 맞아 떨어졌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센터를 찾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욕구조사에서 “학업을 계속 하고 싶다”는 의견이 경제적 지원보다 많았다.
박 소장은 “학교라는 틀이 불편했던 것이지 사회에 나와 제일 처음 맞닥뜨리는 현실적 문제가 ‘학력’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더 잘 안다”며 “대학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했을 때 탈비행률이 낮아진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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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꿈꾸는 ‘학교’를 위해
해밀학교의 수업시간은 오후 1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다. 월~목요일은 검정고시를 위한 수업이 이뤄지고 금요일은 특별수업으로 진행된다. 주말은 아이들의 기를 살려줄 다양한 체험 활동으로 꾸려진다.
단지 학교가 싫었을 뿐 ‘학교’라는 단어가 주는 소속감에는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해밀센터에서 해밀학교로 이름을 바꾼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소속이 없는’ 상황에 ‘나도 갈 데가 있다’는 방향이 정해지면서 참여도도 높아졌다.
이 중에는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있다. 자신이 소속됐던 학교가 아닌 평소 입고 싶었던 다른 학교의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수업에 임하는 자세는 진지하기만 하다. 박 소장을 교장선생님으로, 분기별 캠프를 수학여행이라 부른다.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다. ‘해밀학교’라는 이름의 연극팀이 1년에 2번 정기공연을 펼친다. 직접 대본을 짜고 연습을 한 뒤 무대 위에서 검증받는 과정 속에서 자신감을 배운다.
‘원하는 도움’이 이뤄지다보니 비슷한 처지의 친구를 데리고 등교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중학교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나온 뒤 “돈 많은 여자를 만나는 것이 평생 꿈”이라던 현식이는 이곳에서 중장비와 컴퓨터 자격증을 따고 대학에도 수시 합격했다. 이후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는 질문과 함께 해밀학교 캠프지도자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사회복지사’로 꿈을 바꿨다.
검정고시 준비는 명예퇴직 교사 등으로 구성된 자원봉사 강사가, 경제·정서적 지원은 자체 조직된 청솔후원회와 청소년상담전문직자원봉사단 등이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전국 8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지원사업인 위기 스크린 사업은 경제적 어려움을 동반하는 경우에 빛을 발하고 있다. 긴급 위기 지원과 비슷한 형태로 가정해체 등으로 긴급한 도움이 필요하지만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청소년을 발굴하고 검정고시 학원비 등 정말 필요한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 역시 파급효과보다는 사업비 나눠주기 형식으로 변모하면서 아쉬움이 큰 상황이다.
한해 30명 안팎의 학교밖 청소년들이 해밀학교를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난다. 보듬는 청소년의 수를 늘리고 싶지만 현재 여건으로는 어려움이 많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만 광주청소년상담지원센터에서 해밀학교를 담당하는 직원은 1명뿐이다. 자체 예산을 편성하고 각종 사업 신청을 통해 사업비를 받고는 있지만 사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학교와의 정보 공유가 원활하지 못해 더 많은 수의 학교밖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주지 못하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박 소장은 “학교를 나가는 순간 아이들에 대한 정보 역시 사라진다”며 “학교밖 청소년일수록 초기 개입 때 사회적 방어 비용 절감 등에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