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자 <제주도여성특위 여성사정립분과위원장>

 내가 원해서 한 일이지만 글쟁이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오래전, 결혼한 여자가 감당해야할 강압적 일상에 파묻혀 자아를 찾겠다며 몸부림쳤던 유일한 돌파구 글쓰기.

 오랜 시간을 고민하고 정진하여 마흔이 넘어서야 문단 말석에 이름을 내걸었지만, 변변치 못한 문인일지언정 동네에서 글쟁이 행세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나는 새삼 느끼고 또 깨닫는다. 그것도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을 거짓 없는 진실의 순도로 풀어내야하는 수필가이기에 더욱 더 심한 갈등을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등단을 하면서 당돌하게도 전대미문의 명문을 쓰겠다는 포부를 가졌었다. 톡 쏘는 풋고추의 매콤함에 코끝이 울리고 곡주의 텁텁함에 마음이 편한 글을 쓰겠다며 야심찬 각오를 다졌었다. 쇄도하는 원고청탁과 연이은 문학 강의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꿈같은 자화상도 그렸었다. 그러나 타고난 문재(文材)가 아닌 탓인지 포부는 포부일 뿐이었고 현실은 지극히 현실일 뿐이었었다.

 하지만 등단을 한 후 한동안은 행복했었다. 두둑하게 인세는 받지 못했지만 내 이름 석 자로 이야기책을 엮어 세상 사람들에게 선보였었다. 보잘것없는 글 솜씨지만 여기저기서 이웃들이 불러준 덕에 뒤늦게 강의란 것도 수차례 해보았다. 게다가 학창시절 그토록 흠모하였던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슴에 안은 후 하얀 파도처럼 밀려들었던 청결한 자족감이라니.

 나는 허술하기 그지없던 불혹의 틈새를 미진하지만 글쓰기로 메워나갔고, 중년을 알리는 가슴앓이 열병마저도 글을 씀으로 인해 종지부를 찍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나는 그런 글쓰기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 다름 아닌 작가적 자질에 관하여 개념적 혼란으로 빚어진 스스로의 갈등이다. 내가 고민하는 작가적 자질이란 조화로운 언어의 선택이나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으로 독자에게 미적 쾌락을 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하는 일반적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사회적 정의로움에 대한 작가의 역할에 관련된 것이다. 나의 삶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의 옳고 그름에 대하여 어떻게 수용하고 반응해야 진정한 것인가에 관한 글을 쓰는 이의 번뇌인 것이다.

 '그냥 좋게 넘어갈까'   '나름의 주장을 세워야 할까'  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 않은 제주상황에 대하여 나는 아직도 나서지를 못하고 갈등하고 있다. 빈약한 양심에 작가라는 게 부끄러울 뿐이다. 허경자 <제주도여성특위 여성사정립분과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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