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소설가>

 길은 다시 길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노란 개나리 덤불 새로 난 조그만 길이 늦가을 밤나무 길로 이어지고, 오솔길의 끝자락을 해안으로 이어지는 국도가 맺듯이 길이란 항상 어딘가로 통해 있다.

 지난 겨울끝물부터 시작된 집 앞 소방도로 공사때문에 조용한 낮을 잃어버린 지 한참이 되었다. 공사하는 6개월 동안 주택지의 담을 허물고 하수관을 교체하고 전신주를 옮기고 노후한 콘크리트 바닥을 헤집느라 굴착기가 진종일 쉴 새 없이 쪼아대고 부셔댔다.

 머리를 쥐고 흔들어대는 듯한 굉음 때문에 생기는 두통을 피해 바깥으로 나가려 해도 완전히 파헤쳐진 도로 탓에 바짓부리를 걷어 올려서 걸어야 했고, 주차도 집 앞이 아닌 두 블록 너머로 옮겨야 해서 그 일마저 녹록치 않았다.

 날아드는 흙먼지로 창문을 열 수 없음은 물론, 어쩌다 볕 좋은 때 널어놓은 이불청에 까맣게 돌가루가 앉아 빨래를 망치기 일쑤였다. 수십 년을 함께 한 이웃들이 주차와 자재 쌓아두는 문제들로 목청을 높이다 드잡이를 하기도 했다. 게다가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빗물이 고인 흙길을 오가느라 사람들의 이마엔 짜증이 절로 묻어났고,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은 공사에 투덜대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불치병처럼 올라오는 두통으로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지독한 공사장 소음에서 벗어나고, 좁은 골목길에 둘러싸인 회빛 도심에서 벗어나 맑은 하늘이 내려다뵈고 훈향 나는 나무 아래에 가면 두통이 치유되고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꼭 죄는 코르셋을 벗어 던지듯 훌훌 떠나고 나면 행복해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떠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얼마 전 아스콘 작업을 끝낸 새 도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군데군데 패여 있고 좁고 가팔랐던 도로 대신 널찍한 도로가 곧게 뻗어 올라가게 되었다. 도로폭도 많이 넓어져 차 두 대가 지나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다.

 새 도로가 완성되면서 주변 풍광에도 변화가 일었다. 새 길 위로 동네 사람들이 나와 담소를 나누고 아이들은 배드민턴을 들고 나와 하늘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드잡이를 했던 이웃이 함께 앉아 막걸리를 기울이는 모습도 보였다. 새 길로 인해 누군가의 추억이 담긴 정원수와 여름이면 노랗게 익어가던 비파열매, 매초롬한 감나무는 잃어버렸지만, 대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지나는 공간을 얻어 넉넉해 보였다.

 그런 기분탓이었을까? 어둠이 내리는 새 길 위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게 느껴졌다. 한낮 삼십 도를 훌쩍 넘는 불볕더위는 간데없고, 드러난 팔에 소름을 돋게 하는 바람을 타고 좋은 냄새가 흘러왔다. 그간 그리워했던 가을 냄새였다. 내가 불평하는 사이 가을은 이미 소리 없이 내 앞에 다가와 있었다.

 꼭 콘크리트 도심을 벗어나야만 계절을 느끼고 인생을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콘크리트 도심 위에도 하늘은 빛나고, 도로변에 서 있는 나무 위에도 바지런한 새들은 열심히 집을 짓고 있다. 마음의 콘크리트를 부순다면 어디서든 새로운 길을 만날 수 있는 것을 내가 잊어버리고 있었다. <양혜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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