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 <전 제민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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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쟁점들은 그 자체만을 가지고는 주민들의 관심을 끌지 못합니다. 그것을 공론의 장(場)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쟁점의 시비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가치를 제시하고 설명하는 언론의 본래적 역할입니다.
지난 17일자 '제민포커스/한라산 케이블카 40년 논쟁 종지부를 찍자'도 저는 그런 관점으로 읽습니다. 동기사는 1면과 3면을 동원하여 '케이블카 문제'를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 논의의 과정뿐만 아니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의 의견을 나란히 실어 기사의 밀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면적 나열에 그치고만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의제의 범위는 둘째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리 기사의 초점이 '가부간 논쟁의 종지부'에 맞춰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다르지 않습니다. 논리는 일단 '선택'이 이뤄지고 난 다음의 문제입니다.
어쩌면 제시된 의제에 대한 '옳고 그름의 판단'은 기사를 읽는 독자의 몫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 기사는 그만큼 무의미합니다. "아무런 편견없이 기사를 쓰기 위해 관점을 버렸다"는 주장은 '책임있는 언론'인 한, 용납되지 않습니다.
케이블카를 찬성하는 사람들이나 반대하는 사람들 모두가 '한라산 보호'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한라산을 보호한다'는 것은 그 '경제적 가치'와는 다른 가치를 우선순위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라산이 거기에 있다'는, 더더욱 영겁의 세월을 관통하고 있는 그 현존적 가치를 어찌 경제적 논리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더욱 아쉽습니다. '한라산의 보호'와 그 '개발과 이용'을 동일선상에 놓고 해석하고만 것이….
18일자 사설 '케이블카 논쟁 이제 종식시키자'도 같은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논설자 역시 "어정쩡한 결론을 내리지 말고 가부간 확고한 결정을 내릴 것"을 이른바 한라산 케이블카 T/F팀에 요구합니다.
물론 논설자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의제결정과 기사작성 등 동료기자들의 노력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신문의 대표적 '의견기사'인 한, 정확한 방향제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도 없이, 그저 기사에서 주장한 내용을 되풀이 하는 건 '재강조의 의미'에도 불구하고, 썩 좋지 않습니다. '사회쟁점을 구조화'하는 '책임있는 언론'이라면, 이 정도의 문제만큼은 '자기의견'을 내야지 않겠습니까. 하물며 40년이나 된 문제인데….
무조건 반대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과거 제민일보가 그것을 반대했다고 하여 지금도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고집스런 과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는 애매함의 극단적 형태입니다. 가장 건조할 수밖에 없는 글에서 풍미를 찾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인지 모르지만, 정말이지 '사설의 풍미'는 민감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고뇌어린 결단'을 내리는데 깃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