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 전 제민일보 편집국장

   
 
   
 
지역사회발전은 '자기선택'의 역동적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건 직선적으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비약의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간혹 변증법적 형태를 띠기도 합니다.

지역사회발전이 바로 지역주민들의 '자기선택'의 역동적 과정이라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오늘의 지역문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주민소환'을 '자기선택'의 의미로 읽는 것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자기선택'이라는 의미만을 놓고 볼 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아직도 '주민이하'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사고와 감정, 윤리적 판단 그리고 합리적 제도에 관한 잠재적 능력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달성하고자 하는 것을 거의 성취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민소환'이 끝났다고 하여 모든 것이 마무리된 것은 아닙니다. 의도적인 훼손으로 '주민소환제의 의미'가 그 형체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질됐다고 하지만, 그것이 남긴 교훈은 적지 않습니다. '5만 명이 넘는 서명, 그리고 11%의 투표율'…. 저는 거기서 사고와 감정 그리고 합리적 제도에 관한 주민들의 잠재적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 시점에서 언론도 반성해야 합니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는 견해가 있음직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견해에 얼른 동의하지 못합니다. '공평보도'를 이유로 극도로 말을 아끼고, '객관적 보도'임을 들어 단순보도에 그침으로써 언론에서부터 그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은 괜한 트집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 '주민소환'의 변질을 탓하는 소리(제민일보 8월27일자)마저도 공허하게만 들립니다.

그러나 저는 차라리 그 일련의 과정에서 '자기선택'의 비약적 발전을 믿고자 합니다. '주민소환'은 우리가 추구하는 '참여자치'의 한 과정일 뿐, 목적이 아닙니다. 사회전체의 운영방식을 마땅히 '민의'에 둬야 합니다. 그게 바로 우리가 변함없이 추구해야할 목적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주민소환제의 의미'를 변질시킨 그 과정상의 책임을 그대로 덮자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미래는 그냥 막연히 다가올 시간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를 근거로 하여 창조적으로 규정될 시간입니다. '주민소환의 의미'는 미래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래는 분명 우리가 쟁취해야 할 '참여자치'의 실현의 장(場)입니다. '자기선택'의 변증법적 발전은 필연입니다.

저는 그 실마리를 한 시민의 말에서 찾습니다. 그는 이야기합니다. "이번 주민소환을 지켜보면서 민주주의 근본인 자유·비밀투표가 훼손된 느낌을 받았다"고. (같은 날짜 4면 각계반응에서) 그러면서 "투표동참 자체가 찬성으로 비춰질 수 있어 주민소환제를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말은 어김없이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김 지사는…지역주민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소박합니다. 그러나 그 소박함 속에 바로 오늘의 문제와 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갈등'으로만 조명하여 서둘러 봉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책임논쟁보다 도민 통합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만(같은 날짜 1면), 그것에 대한 맹목적 집착은 자칫 '허구적 안정'을 부를 수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안정은 필요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지역주민의 '자기선택'의 역동성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주민이하'를 넘어서기 위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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