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 <전 제민일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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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자가 세계를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듯이, 동일사안에 대한 해석도 각각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기자의 취재 그 자체가 동일한 사안에서 다양한 이미지층을 발견하는 작업인지도 모릅니다. 해석이 다양하면 할수록 그 사안에 대한 개념이나 객관성은 더욱더 완벽해지기 때문입니다.
해석이 이중적이라고 하여 그것을 지나치게 원론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책임있는 언론'인 한, 더욱 그렇습니다. 복잡한 문제를 풀어 단순화하며, 경우에 따라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언론에 있어 '해석의 복수(複數)'는 그만큼 독자를 헷갈리게 합니다.
저는 그것을 '제주세계델픽대회' 폐막기사에서 확인합니다. 제민일보 9월15일자 사설은 '제주세계델픽대회 잘 치렀다'는 제목으로 동 대회를 '성공적'으로 평가합니다. '비교적'이라는 수사(修辭)가 붙긴 했지만, 사설로는 극히 이례적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불안한 출발과 신종플루 악재에도 불구하고…다양한 장르에 걸쳐 수준 높은 예술을 선보였고…" "…대회가 무난히 치러진 것은 조직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인과 도민들의 자율적 참여…중앙·지방정부의 역량이 모아진 결과물"이라며 침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제주의 높은 문화역량을 대내외에 과시한…관계자 모두에게 수고했다"는 격려의 인사말도 잊지 않습니다. 짧은 글에 그것도 두 번이나….
그건 나쁘지 않습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른 해석'입니다. 그러나 같은 날짜 8면의 '제주세계델픽대회 총평'을 읽어보면, 생각은 달라집니다. 취재기자는 동 대회를 '소리소문없이 끝난 문화올림픽'이라고 평가합니다. '대회의 기틀을 다지는 주춧돌'이라는 수사(修辭)가 붙긴 했지만, "부족한 예산과 도민공감대 형성부족, 지역 문화예술과 연계 부족 등…<지구촌 문화올림픽>이 수식어에 그쳤다"고 혹평(?)합니다. 기사의 어조는 차라리 신랄합니다. "…다른 지역에 대한 홍보는 <먹통수준>이고…도민 간 소통의 부재를 낳았고…탐라문화제 위축은 현실로 나타나…<두 마리 토끼>를 놓친 형국이 됐다"고 지적합니다.
여기서 독자는 헷갈립니다. 사설의 '비교적'이라는 수사에서 '긍정 속의 부정'을, 총평의 '…주춧돌'이라는 수사에서 '부정 속의 긍정'을 읽어낸다면, 두 기사에 접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독자는 그렇게 분석적이지 않습니다. 헷갈리면 양자 모두를 불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난감한 독자는 결국 두 기사 모두를 불신하고 맙니다. 두 기사 모두 '하나의 해석'임을 인정하면서도, 결코 '바른 해석'일 수 없다고 토를 다는 것도 바로 그 '불신의 위험성' 때문입니다.
기사의 불신은 자칫 신문 전체의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해석의 복수'에 잘못이 없다고 하더라도, 언론은 가능한 한 해석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제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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