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홍 <전 제민일보 편집국장>

   
 
   
 

기사는 때를 놓치고 나면 색이 바래집니다. 그건 이미 기사가 아닙니다. 보도의 시의성은 기사의 상대적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신문은 지역의 '새로운 소식'을 '제때'에 전해야 합니다.

우선 기사는 정확해야 합니다. 사실적 적합성은 현실을 표현하는 방식 그 자체입니다. 사실의 정확한 기술(記述)과 함께, 자료제시가 충분해야 합니다. 합리적 판단임을 들어 기자 자신의 의지 등을 막무가내 식으로 사실의 인식에 투사할 경우, 자칫 사실을 왜곡할 우려가 있습니다.

더불어 공정해야 합니다. 보도의 양과 질에 있어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공정보도란 모든 당사자들의 입장에 대한 단순한 보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건 결코 산술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단편적인 부분들의 양화(量化)된 내용보다는, 전체로서의 메시지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이상은 이미 본란에서 논의를 마친 내용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확하고 균형있게 다뤄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때에 맞지 않으면 '중요한 기사'가 될 수 없습니다. 신문이 사회적 공기(公器)인 것은 지역적 문제를 제때에 해석하여 그 내용을 독자에게 알리고, 경우에 따라 그 시대를 뛰어넘는 해석으로 여론을 선도하기 때문입니다.

보도의 시의성에 대해서는 보통 두 갈래로 나눠 논의됩니다. 그 하나는 '최근성'이며, 다른 하나는 '적시성'입니다. 그러나 둘로 나누는 실익이 과연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선 저는 차라리 회의적입니다. 구태여 나눠 따진다면 '기자의 말'이 필요하다고 싶을 때 주저없이 이야기하는, 그 적시성에 논의의 무게를 싣습니다. 

그러나 이론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건 결코 선언적 수사(修辭)가 아닙니다. 추상적 이야기는 문제의 본질을 헷갈리게 할 뿐입니다. 두 말할 필요없이, 언론의 내부에서조차 그것의 실천성에 관해 숙고하지 못한 타성부터 반성해야 합니다.

따지고 보면 '보도의 시의성'은 '기자의 책무'를 다하려는 '책임의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책임의 감정은 단순히 충동으로만 존재하기를 거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기자의 개별적 행위의 의지 속에 포함돼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문제가 있을 때마다 "언론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하는 질문이 끊임없이 제기돼온 이유도 바로 '자유언론'의 주장만큼 '책임언론'이 도덕적 의사형성의 감정적 요소로서 등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건 괜한 트집이 아닙니다. 최근 이른바 '해군기지' 논의 과정을 지켜보는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과거의 문제에 대해 가정법(假定法)은 그만큼 무의미 하지만, 만일 지역의 사회단체와 도의회가 진작 이랬다면, 언론이 좀더 치열했다면, 이제 와서 '절차상의 문제'를 따지는 일(제민일보 10월13일자 1면)은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아쉽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일은 과거의 일일 뿐입니다.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많은 지역현안이 '기자의 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끊임없이 현장에 시선을 집중하는 것, 현장에 있는 것 하나 버리지 않고 바라보려는 '강렬한 의지', 그리하여 이면(裏面)의 허위의식을 읽어내는 것, 그게 바로 '기자정신'입니다. 이미 신화가 돼버렸지만, '특종'이라는 것도 '보도시기'의 문제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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