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日야쿠섬 환경운동가 효도 마사히루
그 섬엔 7200살 먹은 '성스러운 노인'이 산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원령공주'의 배경이 된 섬. 제주도의 5분의 1밖에 안된 일본열도의 남쪽 외딴섬, 야쿠시마. 산과 강, 바다가 조화로운 이 섬은 1993년 세계 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유명해졌다. 얼마전 그 섬에서 한 원로 환경운동가가 한라산생태연구소의 세미나차 제주섬을 찾았다. 효도 마사히루. "원시림을 자손에게 물려줘라"며 고향의 산을 지킨 사람이다. 그 '성스러운 노인'은 바로 야쿠섬의 유명한 조몬 삼나무다. 효도의 친구이며, 그 섬에서 살다 간 추앙받는 시인이자 농부였던 야마오 산세이가 그렇게 표현했다. '누구씨'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효도 마사히루. 그와 야쿠섬으로 들어간다. "야쿠시마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곳이다. 야쿠시마에 오신 분들은 시계를 다 풀어버렸으면 한다."
# 야쿠시마, 생명력 넘치는 지구 축소판같은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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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도 마사히루씨는 1941년 야쿠시마 출생. 환경운동가. 가고시마현 환경보전협회 이사. 야쿠시마 도민회의 21대표. 산학교 21대표. 야쿠시마에서 고교 졸업후 1966년 도쿄의 입정대학 경제학부 졸업. 1960년부터 10년간 기상청 도쿄 항공지방기상대 근무. 1971년 귀향 후 가업인 목재업을 계승하고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1962년 도쿄에서 '야쿠의 아들 모임' 결성. 1972년 '야쿠시마를 지키는 시민의 모임' 결성. 그를 중심으로 이 단체는 각종 개발 계획에 이의를 제기. 특히 원시 조엽수림대 800㏊의 나무를 벨 계획이라는 산림청의 방침에 국유림 즉각 전면 벌채금지 운동을 전개, 10년 동안의 실시계획은 백지화, 국립공원 보호구로 지정됐다. 1978년부터 8년동안 야쿠쵸 의회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 ||
제주도와 같은 섬이지만 야쿠시마만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야쿠시마에만 있는 것은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야쿠시마에 없는 것도 없습니다. 도처에 넘쳐나고 있어서 고유한 게 없어요. 그런데 야쿠시마엔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산도 있고, 산의 가운데로 강도 흐르고, 바다도 있는데 아주 작지만 조화롭습니다. 예를 들면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철도가 없잖냐하면 산 정상까지 기차는 아니지만 운반할 수 있는 레일이 있습니다." 야쿠시마보다 더 괜찮은 자연이 야쿠시마를 떠나면 얼마든지 있지만 이 산, 강, 바다가 잘 조화를 이룬 곳은 야쿠시마밖에 없다는 말씀. 낮지만 확신에 찬 어조다.
조용하던 섬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분명 달라진 점이 있을게다. "예전에는 야쿠시마가 어디에 있는 섬이냐 하면 포루투갈 난파선이 들어오면서 처음 일본에 총이 전래된 타네가섬 옆에 있는 섬이다 하면 사람들이 알았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타네가섬 사람들이 밖에 나가면 야쿠시마 옆에 있는 섬이라고 해야 될 정도로 야쿠시마가 알려졌습니다."
1960년대만해도 시골사람들은 도회지로 나가고 싶어했다. 지금은 고교를 졸업하면 절반이상이 섬에 남는다. 그러나 60대 이상 고령이 40%. 예술가, 문학, 재즈연주자, 일본의 유명한 예술인들이 야쿠섬을 찾거나 거기서 산다.
# "원시림을 후손에게 물려줘라" 운동
어려서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야쿠시마에서 고교를 졸업, 동경 유학을 떠난다. 경제학부 학생이던 젊은 그를 어느날 야쿠시마가 불러낸 것은 어느 대학축제장이었다. 고향 야쿠시마의 사진이 전시되고 있었고 그는 감동했다. 허나 섬의 사진과 조사 보고의 끝에 실린 학생들의 의견은 그를 철렁거리게 했다. "야쿠시마의 자연은 매우 훌륭하고 이를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가능한 인간과의 관계를 단절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섬 밖으로 이주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감동은 순식간에 분노로 바뀌고, 그는 귀향 결심을 한다. "환경운동? 굉장히 절박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습니다. 절박감을 느껴야합니다."
1950년대 고향은 종이 원료인 펄프를 공급하기 위해 자꾸 민둥산이 되어가고 있었다. "섬의 가치를 왜 섬 밖에서만 얘기하는가. 섬 사람들이 생각하고 발언해야 한다." 1972년 10년의 직장을 접었다. 고향출신 아내와 귀향. 1978년 마을의회 의원으로 입후보, 당선. 8년동안 '튀는 의원'으로 활동한 것도 순전히 섬을 지키기위한 맥락에서다.
# 미래세대 위한 산학교…아이들 원시 체험
"앞으로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 섬으로부터 지킴을 받는 모임, 요컨대 섬이 우리를 지켜준다는 방향에서 살아가는 길 밖에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슴과 원숭이가 뛰어노는 원시림의 야쿠섬, 그는 원시의 시간을 불러내고 있다. 그는 '산학교 21' 교장이다. '산학교'라니! "옛날에는 학교 가기 싫으면 산에 놀러갔죠. 철처하게 놀게해보자. 아이들이 밖에 나가지 않는데 가능하면 애들을 밖으로 내보내야합니다. 불 때는 것도 모르고, 물고기 잡을 줄도 모릅니다." 왜 그런게 이 시대에 필요한가? "지금 아이들이 미래를 짊어져야하니까요. 결국은 애들한테 우리를 맡겨야하니까요." 야쿠시마가 살기 위해서는 그런 것을 알아야한다는 것. 칼로 나무 깎는 것도 전혀 할 줄 모르는 요즘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하루 20명 정도 1박. 매트 한 장만 주고 따로따로 빛이 안들어오는 곳에서 생활하게 한다. 산에서 열매를 따건 어떻게하건. 바다에 가서 소금만드는 것도 말로만 가르쳐주고 나머진 자신이 알아서 궁리해야 한다. 자원봉사 지도자는 1대1이다.
# 관광객 입도객 수보다 질 추구 삶 전환해야
텔레비전의 관광객수 표시를 보면 마치 주식의 주가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는 것 같다는 이 야쿠섬의 원로 환경운동가는 이제 관광의 패턴이 바뀌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관광객의 비위를 맞추려고 한다면 관광객이 좋아할까? 반문한다. "무엇을 위해서 이것을 만드는지 최종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하고 직접적인 관계가 무엇인가. 우리의 삶과. 무엇을 위해 이것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양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소박하지만 질을 추구하는 삶으로 빨리 전환해야 합니다. 관광객 입도객수만 말하는데, 섬의 입장에서 보면 야쿠시마 같은 곳은 1년에 40만명이 찾아요. 들어오는 사람은 그렇지만 거기서 체재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게 80만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적정인원이 섬에 머물고 있는지 그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봐야합니다." 제주도가 귀기울여할 대목이 아닐까. 많이 오는 게 좋은 게 아니란 것. 그는 1만4000명이 사는 야쿠시마가 하루 소화할 수 있는 적정 인원은 최대 2000명이라고 생각한다.
# "제주는 제주답고 야쿠섬은 야쿠섬다워야"
야쿠섬은 많이 변했다. 섬에서 산악회 회의가 열렸던 2년전. 지방 현 공무원들이 많이 참석했다. 그가 제일 꼴찌에 앉았다. "다들 훌륭한 야쿠시마 자연을 잘 지켜야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내 차례가 되니까 저는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선생님들이 환경운동할 때 저와 싸웠던 사람들인데 다 같은 생각이니까 이젠 할 말이 없습니다했죠." 다들 웃었다. 당연히 관광산업도 자연이 있어야 관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보존이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전제로 한 관광산업이기 때문에 이젠 그런 논쟁이 없어졌다.
"야쿠시마는 관광지로 보면 후진국이다. 선진국을 따라가려고 한다. 잘하는 곳을 벤치마킹 하는데 그렇게 했을 때 과연 그런 모방이 야쿠시마에 도움이 되겠는가. 야쿠시마에만 있는 것을 해야한다"는 효도 마사히루. 그가 확신한다. "제주도는 제주도 다운 것, 야쿠시마는 야쿠시마 다운 것, 그것이 생명이죠."
자연의 혜택을 입은 삶에는 절도와 겸허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그에게 세계자연유산의 섬 , 제주도에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으리. 돌아온 즉답. "방심하지 마세요. 방심하면 엄청난 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인터넷시대이고 순식간에 확 퍼지는 시대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경제냐 가치냐, 지금이 긴장해야 될 때란 것. 한 예. 지난 8월, 개기일식을 잘 보려고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관광객들이 야쿠시마에 밀려 왔다. 덜컥 겁이 났다. "우리는 야쿠시마에 가서 본다한 거죠. 허나 다행히 비가 와서 우려했던 일이 없었는데, 큰 일이 날 뻔했습니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이름값을 했기 때문이다.
# 4·3은 충격…제주의 식생이 너무 닮아
그에게 제주도는 일기예보에서만 매일 듣던 섬. 실제 한바퀴 돌아보니 너무 큰 섬이었다. 제주돌문화공원의 검은돌. 돌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허나 4·3에 대해서는 조금 알았던 그에게 4·3평화공원은 '쇼크'였다. "4·3의 배경을 생각하면 반드시 일본의 잘못이 있었을 것입니다. 배경에는 식민지 시대 일본이 있었으니까요.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섬의 개방성도 비슷했다. 제주사람들의 말씨에서 뜻은 모르나 어떤 친밀감이 느껴진다는 효도 마사히루씨. "바다가 깨끗한 것도 똑같고,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제주는 화산섬이어서 검은 돌인데 야쿠섬은 화강암이라는 점이 다르지요."
무엇보다 어릴적 간식거리였던 구실잣밤나무나 녹나무 같은 제주의 식물, 잡초, 일출봉의 꽃, 식생은 너무 똑같다. 일본에서는 왕벚나무가 수령이 길지 않는데 한라산이 자생지라는 것도 알았다. 그의 딸의 표현대로 그는 낮에 늘 꿈을 꾸기 때문에 밤에 꿈을 꾸지 않는단다. 아이들 같은 마음으로 산다. 그 꿈 하나는 야쿠섬 많은 녹나무에서 추출한 천연재료를 이용해 살충제를 만드는 것. 한라산이든 야쿠시마든 약용식물에 관한 연구가 앞으로 인류를 구하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바쁠 때가 오히려 일이 잘 된다"는 효도 마사히루. 야쿠섬에선 늙은 삼나무처럼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른다. 연중 1만㎜이상 비가 오는 야쿠섬, 언제가 좋은가? "5월!, 신록이 우거지니까." 아, 나도 그 7200살 먹은 '성스러운 노인' 조몬 삼나무를 뵈러 가고 싶다.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