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 나비연구가 김용식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의 수용소에는 수백마리의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이 그 벽에 수백마리의 나비를 새겨놓았다. 다가오는 죽음의 시간 앞에서 나비처럼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간절함이었다. "어릴 때 아름다운 나비를 보면 숨이 멈추는 듯한 그 어떤 황홀감이 몸 속에서 전율하는 것을 느끼곤 했다"고 한 이는 헤르만 헤세. 평생 나비길을 따라 다닌 나비인생, 김용식도 그랬다. 팔랑대는 청띠신선나비 한마리에 혹해 지독한 나비사랑에 빠졌던 인생. 나비! 그렇게 한평생 찾아 헤맨 나비, 지금와서 무엇인가. '무상!' '덧없음' 이라 했다. 헤세의 말처럼. 허나 솔직해지자. "평생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았는데 어찌 행복하다 하지 않겠는가" 나비 연구가 김용식. 40년 포충망 들고도 부족한가. 그의 나비 탐구는 아직도 제주도에서 진행중이다.

   
 
 

 나비연구가 김용식은

 1944년 충청남도 서천 출생. 성균관대 생물학과 졸업. 서울 남강고 생물 교사 지냄. 한국나비학회 회장 역임. 현재 제주 나비박물관 프시케월드 박물관장. 한국나비학회 고문, 파주나비나라 학술고문. 나비표본 전국순회전시회도 갖는 등 나비 관련 활동. 2002년 국내에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 268종의 나비 생태와 각종 변이, 원색 사진 등을 기술한  「원색한국나비도감」(교학사, 문화부 우수학술도서) 펴냄. 같은 종의 나비가 지역에 따라 어떤 변이를 보이는지를 밝힌 국내 최초의 도감임. 나비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기 위한 방편으로 어린이들에게 나비의 생태와 종류 등을 쉽게 설명한 「나비야 친구하자」(광문각, 2008), 나비인생을 풀어헤친 에세이 「나비 찾아 떠난 여행」(현암사, 2009)을 펴냈다.

 
 
# 나비의 변이 밝혀낸 「원색 한국나비도감」

 "나비는 우리를 기쁘게 해 주고.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주죠. 나비가 있으면 자연이 살아있구나해요. 문학, 미술, 음악, 민화는 물론 유럽에선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이 선호했죠. 나비를 우리 삶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한차원 더 높은 삶을 살게하는 것이란 말도 있습니다"

 나비! 이름만 들어도 가슴 뛰는 사람. 한국 나비사의 커다란 업적이 된, 우리나라 나비 전종의 분포, 생태, 변이를 전부 밝혀낸 「원색 한국나비도감」의 저자 김용식. 그는 요즘 행복하다. 교직 은퇴후 제주나비박물관 프시케월드 관장 자리에 앉아 다시 나비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제주여서 더 그렇다.

 "그토록 갖고 싶어 죽을만큼 헤매었고 때로는 부끄럽게 매달리며 한 마리 달라고 매달렸고, 남의 고기 한 점 얻으려고 내 큰 것을 다 내주면서 얻기도 했다. 귀한 것은 흔해지고 빛나던 것은 그 빛을 잃고 형상이 있는 것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와서 나비는 당신에게 무엇인가로 직접적으로 묻자 돌아온 답. 그가 저서 「나비 찾아 떠난 여행」의 서문에서 한 말과 같다.

 "휴일에 집에 있는 시간은 없었어요. 그래도 나를 채워주었기 때문이죠. 뛰는 사람이 나는 사람 못 쫓아가고 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 못따라간다는 말이 있잖아요" 40년 동안 어떤 것은 두 마리밖에 채집 못하고, 어떤 것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채집한 것도 있다. 그는 요즘 이들을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얼마전엔 국립과천과학관과 파주나비나라 표본실에 120여종의 표본을 기증했다.

 삶도 그러할진대, 이리저리 꽃따라 나풀대는 나비야 말해 무엇하리. 나비 또한 팔랑팔랑 현혹하던 생명. 지나고 나면 파르르 지는 서른날 목숨의 나비도 인생길 같다. "다 털어내버리자. 내가 나비를 너무 찾은 나머지 내 영혼이 고갈된 것은 아닐까. 형체가 있는 것도 쇠락해지고 마음만 남는 것인데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무한한 것은 없다. 다른 이들이 보고 학술적으로 참고하는 게 좋은 것이다는 생각이 든거죠"

 # 제주도는 나비연구가들이 설레는 곳

 "제주도는 가슴이 쿵쿵 뛰는 곳이예요" 제주도 안덕계곡에서 꼬리가 없는 남방제비나비를 채집했을 때의 감격, 남방남색 부전나비를 사육한 것은 기억에 남는다. 이 나비는 정말 작지만 아름답다.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는 나비로 여겼는데 나비채집 30년 만에 선흘숲에서 처음 만난 남방남색 부전나비. 마음이 공허할 땐 선흘숲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됐다.

 제주도에만 있는 나비는 이 나비와 한라산의 세종류를 합해 모두 4종류. 우리나라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산굴뚝나비, 산꼬마나비, 가락지나비가 한라산에만 있단다.

 "제주도도 처음엔 내륙과 붙어있다가 기온이 높아지면서 빙하기에서 간빙기가 될 때 떨어져 나간 것이죠. 그때 같이 살았지만 서늘한 곳을 좋아하는 나비들이 갈 데가 없었어요. 해발 1400m이상 한라산 꼭대기로 올라간 것이죠. 내륙의 것들은 함경북도까지 날아간 거죠. 한라산의 세종류는 함경북도에 있어요. 나비는 원거리를 날 수 없어요. 그래서 분포가 같아진거죠. 제주도가 섬이 되지 않았다면 모여 살았을 나비들이 미아가 되었죠"

 한라산은 나비채집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다. 그는 국립공원지역이라 하더라도 연구목적으로 채집하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심사해 채집 허가증을 발급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비나 곤충은 어여쁨의 대상이지만 표본이 뒷받침돼야 하는 학문. 연구목적인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는 그다. "근원적으로 생명이라는 것은 다 같지만 나비연구는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착과 모순을 가진 사랑이죠. 표본없이 도감이 어떻게 나와요. 그래서 사육도 하는거죠"

 그렇게 공들여 보살핀 나비가 알을 낳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단다. 다 자란 애벌레는 허물벗기를 하고 번데기. 며칠 지나면 번데기 가슴 부위에 붉은 빛이 비쳐 보이고 얼마 후 날개돋이, 드디어 나비탄생이다. 나비도감으로, 자연과학에 보태는 마음으로 죄스러움을 덜고자 했다는 이 나비연구가. "어린 시절 처음 나비를 손으로 잡았을 때 가슴 뛰던 황홀이 오늘날 나비 변이 연구가로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지요" 

 # 어릴때 나비 채집 황홀감 변이연구가의 길로

 소년에게 나비가 왔다. 참나무 진을 먹고 자라는 사슴벌레, 풍뎅이 같은 수많은 곤충 가운데 나비가 간혹 날아 앉았다. 긴 대롱으로 진을 빨아먹다 물러나는 그 나비. 짙은 남색 날개에 밝은 파란색 띠가 선명한 청띠신선나비가 그에게 온 것은 한국전쟁기였던 1953년 여름날. 아버지의 납북, 요양중이던 어머니. 시골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던 시절, 나비는 소년의 우울을 달래준 존재였다. 그때 처음 해본 나비채집 숙제물로 그는 방학과제물 경시대회 곤충표본부문 대상을 받았다.

 나비인생의 길은 대학의 생물학과 선택과 함께 이뤄졌으나 나비채집에 들어선 것은 서른 넘은 1971년. 교편을 잡은 직후였다. 주말과 방학이면 포충망을 들고 산과 들을 헤맸다. 울릉도, 제주도 등 섬까지 나비길따라 헤맸다. 외할머니 비석을 세워드리는 날, 산소 밑자락의 풀숲에서 귀한 바둑돌부전나비 수컷 두 마리를 채집했다는 이 나비광. 나비채집을 먼저 한 이들은 많으나 그처럼 지독한 열정을 바친 이는 드물다. 게다가 그는 반드시 꼼꼼하게 기록한다.

 그의 수첩에 담긴 글구. "아무리 말을 잘하는 사람도 몽당연필로 남긴 글만은 못하다" 그의 40년 채집 기록은 우리나라 나비 채집사라 할 만하다. 오랫동안 애태우다 만난 유리창나비, 우리나라 나비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큰주홍부전나비도 그를 매혹시키는 연인이다.

 # 석주명은 우리나라 나비 기초 만든 개척자

 나비를 잡다 놓친 꿈도 꾼다. 산부전나비, 홍줄나비같은 귀한 나비가 날아오르는데 포충망이 없어 맨손으로 잡다가 놓쳤다는 이 나비연구가. 시대를 앞서간 '제주학의 선구자' '나비박사' 석주명선생의 업적을 기려 나비박물관의 한 코너에 '학자의 방'을 만들어 추모했다. 이미 1936년부터 배추흰나비의 변이를 연구하며 논문 한줄을 쓰기 위해 나비 3만마리를 만졌다는 석주명. 그가 갖고 있던 석주명의 저서와 논문 등도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배추흰나비 범나비 호랑나비 정도 밖에 모르던 시절, 나비의 기초를 잡은 사람이죠. 아무 것도 없을 때 만들어낸 개척자예요. 여건이 안돼서 나비도감을 만들진 못했지만 전국의 나비 분포도를 만든 것은 큰 업적이죠. 후학들은 그 바탕 위에서 헤매지 않고 연구할 수 있었죠." 그는 아직도 후학들이 밝혀내야할 것이 많은데 나비 연구하는 사람이 계속 줄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귀한 나비들도 점점 사라지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나비가 날아다닌다는 것은 환경이 아직도 살아있다는 증거죠" 그는 논문을 통해 감소 나비를 보호하기 위해 '채집금지 구역'을 발표했다. 개발과 조림으로 인한 서식지 감소, 환경파괴, 지구 온난화 등도 원인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붉은점모시나비, 상제나비, 산부전나비, 고운점박이푸른나비 등. 사라지는 이름들이다. 요즘은 나비 생태사진을 찍어 까페에 올리는 젊은이들이 멸종되었다하는 나비도 찍어내는 것을 보면 안심이 된단다.

 # 나비 점점 사라져…나비 '생태도감' 나와야

 "생태도감이 나와야죠. 할게 많아요. 우리는 합치는 힘이 부족해요. 부분적으로는 나오긴 나오는데. 먹이식물 안나온 것도 많아요. 일본만해도 다 밝혀졌는데 우린 없어요"

 그토록 오고싶던 제주도였다. 어느날 나비박물관 프시케월드 대표 제주출신 임승호 사장이 그를 관장으로 청했다. 그곳의 디자인을 맡은, 나비사업하는 제자가 그 인연을 맺게 해줬다. "제주도엔 지역변이가 있는 나비가 많습니다" 그는 한국의 나비 전종 205종 표본을 이곳에 기증했다. 나비박물관은 전국 곳곳에 있지만 제주도에서는 나비 전종을 볼 수 있다는 것, 패러디화되어 있다는 것이 특별하단다. 그는 앞으로 세계의 분포구별 나비를 전시하고, 지도를 그려가면서 배열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내년엔 사육해서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많이 볼 수 있도록 해 체험학습공간이 되게 할 거예요. 남은 인생에 목표가 있어야겠더라구요. 우리나라 나비의 지역변이와 개체변이를 충실히 정리해 놓고 싶은거죠"

 다 풀어낸다했다. 허나 지금도 나비길을 찾는, 나비에 매혹당한 영혼은 어찌 벗어나랴.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시간이 행복한 일이죠. 한라산에서 나비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에 숨죽이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까지 몰입하고 있어요"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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