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잠녀를 만나다' 성산 대표 잠녀 오옥추 할머니<148>
18살 운명처럼 몸에 익힌 물질로 60년…현역 잠녀 중 최고령
딸·누이·아내·어머니·할머니로 녹록찮은 삶 바다에 풀어내
하늬바람 탓일까. 아침 일찍 바다에 나간 할머니를 기다리는 일이 생각보다 편했다. 흠뻑 바닷물을 먹은 고무옷 차림 그대로 만난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바다 냄새가 난다. 편안한 마음에 덥석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연세만큼 굵어진 손가락 가득 소금기가 배어난다. 몇 번이고 씻어낸들, 고운 화장수로 닦아낸들 그대로일 터다. 그 것이 할머니, 제주 잠녀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 바다도 인정한 노(老)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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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물질을 하는 이 곳 잠녀들에게 중도에 그만 둔다는 말은 의미가 없다. 한 배로 나가 한 배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어싸나"주고받는 노래 가락은 없다. 대신 오가는 배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물질을 하며 여섯 남매를 키운 것도 모자라 20년 가까이 손자를 키운 사정이며, 그 손자가 내년 군대에 가는 얘기는 함께 물질을 하는 잠녀라면 자신 집안의 일처럼 다 안다.
바람도 잔잔하고 모처럼 작업에 나선 때문인지 우뭇개 탈의장으로 돌아오는 잠녀들의 망사리가 묵직하다. 양식장을 해경한 것도 아닌데 하루 채취량이 100㎏이 넘었다며 표정이 밝다.
오 할머니 역시 한창 때에는 못 미치지만 꽤 물건이 많았다고 했다. 70대에 들어서기 전까지 하루 물질에 50㎏ 정도는 거뜬했다. 지금은 다 옛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 물질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하다.
고송환 성산어촌계장(63)은 "헛물에 물질을 하거나 양식장을 해경할 때 잠깐 나와 작업하는 분들은 몇 분 되지만 직접 작업을 하는 잠녀중 오 할머니가 제일 연장자일 것"이라며 "한창 때 잠녀들도 혀를 내두를 때가 많다"고 귀띔했다.
# "물 아래서 밥도 해 먹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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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일 물질 작업을 마치고 탈의장으로 돌아오고 있는 잠녀들. | ||
이웃 오조리에서 태어난 오 할머니는 18살에 물질을 배웠다. 배웠다기보다는 운명처럼 몸에 익혔다는 말이 더 맞다. 먹고 살기도 힘들었던 시절 3~5월 작업하는 듬북은 농사에 중요한 거름이 됐다. 바다에서 채취한 듬북을 해안가에서 잘 말린 뒤 등짐으로 져 날라 밭고랑에 깐다. 해초 거름은 흙으로 덮은 뒤 여름에는 조를, 가을에는 보리농사를 졌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듬북 작업을 위해 속옷에 맨손 바람으로 물에 들었던 것이 조금씩 깊은 물로 이어졌고, 물건을 건져 올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힘들 때다보니 물질을 하는 딸을 어머니는 차마 말리지 못했다. 이후 결혼하기 전까지 오 할머니는 바깥물질을 하며 생계를 지탱하는 든든한 딸이자 누이였다. 경북지방의 양포와 구룡포, 진도와 평일도, 소안도며 험한 작업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혼 후에도 오 할머니의 물질은 계속됐다. 젖도 떼기 전인 딸과 아들을 데리고 바깥물질을 갔던 얘기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에인다. "누가 봐줄 사람도 없고 해서 해안가에 아기구덕을 놓고 작업을 했지. 아기 울음이 들릴까 귀를 기울이다보면 물 속에서도 환청처럼 그 소리가 들려". 작업을 마치고 탈진하듯 물에서 나온 뒤에도 잔뜩 목이 쉰 채 축 늘어져 있는 아기의 안부를 확인하고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
오 할머니는 "만삭인 상태에서도 언 물에 작업을 했다"며 "진통이 있었는데도 참고 물에 들어갔더니 아기가 나오지 못해 꼬박 하루를 고생하고 아기를 낳은 적도 있다"고 회상했다.
# 몸만 허락한다면야…
물질을 마친 뒤에도 쉴새없이 몸을 움직여야 직성이 풀린다. 취재 도중에도 몇 번이고 자리를 떠 도구를 챙기고, 소라가격을 확인하며 부산이다. 물안경에 챙겨온 다른 잠녀의 전표를 일일이 나눠주는 여유도 보인다.
오 할머니는 단순히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촌계 소속 다른 잠녀들과 마찬가지로 조를 이뤄 물질 공연도 하고, 해녀의 집도 지킨다. 잘 자라 자리를 잡은 자식들은 물론 함께 생활하는 손자까지 물질을 말리지만 할머니의 고집은 한 수 위다.
"배운 게 이 것뿐인데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계속해야지. 누구에게 손을 벌리면서 살고 싶지는 않아"
오랜 물질 끝에 예고 없는 어지럼증이며 두통, 관절염 등 성한 곳이 없지만 노 잠녀의 눈은 바다에 고정돼 있다.
'바다'가 '바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이것저것 다 가리지 않고 다 '받아'주기 때문이다. "괜찮다" 그 말 한마디로 어머니는 바다가 됐다. 노 잠녀가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 특별취재반 김대생 교육체육문화부장·고 미 편집부 차장·해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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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포 오정개 탈의장에서 둘러본 바다. 잠녀들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들어왔던 바다는 바닥을 내보이는 투명함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