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경 <제주외고 논술강사>

며칠 전 주말 1주일 내내 수많은 일들에 시달려 지칠대로 지친 몸과 마음을 무조건 쉬게 하고 싶었다. 아무 약속도 잡지 않고 허리가 아플 정도로 누워있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그건 꿈같은 다짐!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베개를 머리에 누일라치면 혼자 잘 놀던 16개월 딸아이가 마하의 속도로 기어와서는 내 머리를 잡아채거나, 제가 먼저 베개를 차지해 버리는 심술을 부리는 것이었다. 심술이라기보다는 함께 놀아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16개월 수준의 시위였던 셈이다. 그러나 몸이 천근 만근 십만근이었던 나는 그런 딸아이를 제치고 드러눕기를 감행했다. 1단계 시위에 처참한 패배를 경험한 딸은 좀 더 활동성을 요구하는 시위에 돌입했다.

"으으으, 어어어, 아아아"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들을 내뱉으며 연신 손가락을 주방을 향해 가리켜댔다. 배가 고프다는, 뭔가를 먹고 싶다는 신호인 것이다. 평소 잘 먹지 않아서 딸이 뭔가 먹겠다고만 하면 매우 행복해하며, 쏜살같이 움직이는 나의 행동을 그 녀석은 용케도 써먹고 있는 것이다.

"왜? 배고파? 밥 먹을 거야? 우유 마실 거야? 물? 딸기? 치즈?"
묻는 족족 다 맞단다. 말하는 족족 다 먹는단다.
'그래, 아무리 피곤해도 애를 굶길 수는 없지!'
끄응차! 힘을 내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딸아이가 원하는 것으로 한 상 차려냈다. 그런데 딸아이는 모든 것들을 한 입 씩 먹는 척 하더니 금새 멈추고 뱉어내는 것이다. 누워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딸아이의 2단계 시위가 성공한 셈이다.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16개월 된 딸이랑 싸울 순 없어 욱하는 마음을 꿀꺽 삼키고 있는데 이젠 요 녀석이 현관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면 울어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으아아앙! 으아아앙!"

쬐그마한 손으로 강철 문을 두드리며 울어내는 붉은 두 눈에선 굵은 눈물이 흐르고, 나를 향한 그 눈빛은 애절함으로 가득했다. 순간 나는 베란다 창밖으로 펼쳐진 파아란 하늘과 따뜻한 봄기운을 느꼈다. 어제부터 딸아이가 그렇게 떼를 쓰고 조르던 이유가 창밖 너머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기는 답답한 집 안에서 벗어나 세상 구경하고, 무기력하게 지쳐있는 엄마에게는 노오란 봄 향기를 맡게 해서 에너지를 주고 싶었던 기특한 생각을 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그래, 예림아! 밖에 나가자~ 얼른 따뜻하게 옷 입고, 엄마랑 오른 발 왼 발 하자!"
내 말이 무섭게 딸아이는 모자를 집어 들고, 일어서서는 운동화에 자기 발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얼마나 나가고 싶었을까. 아~ 무심하고 무책임한 엄마, 강혜경! 그날 나와 딸은 파아란 하늘이 펼쳐지고, 노오란 햇살이 내리쬐며, 시원한 공기가 기분 좋게 부는 봄 기운을 온 몸으로 왕창왕창 느꼈다.

"여러분~ 이제 봄이 왔어요! 빨리 빨리 자리 털고 일어나, 으랏차차 힘을 내서 밖으로 나오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 딸처럼 누군가가 3단계 시위를 일으킬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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