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양혜영

나는 명품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명품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호화품이 아니라 수명이 아주 긴 제품이다. 그런 성격 탓에 내 집안 곳곳에는 결혼 직후 마련한 신접살림들이 아직도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런데, 며칠 전 갑자기 오디오가 고장이 났다. 콤팩트디스크를 넣는 부분이 망가졌는지 디스크를 넣어도 도로 뱉어낼 뿐 작동이 되지 않았다. 졸지에 침묵에 잠긴 오디오를 보며 수리 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설명을 들은 기사는 오래된 사양이라 부속을 구하기 힘들다며 제법 높은 금액의 수리비를 요구했다.

"완전히 망가진 것도 아니고 겨우 디스크 넣는 부분이 고장 났을 뿐인데 무슨 수리비가 그렇게 비싸담."

생각을 더 해보겠다며 통화를 끝낸 내 입이 툭 튀어 나왔다. 자주 듣지 않는 오디오를 돈을 들여 고치려니 아까운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기회에 갖다 버리고 저렴한 플레이어로 교체할까?"

나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오디오를 재활용센터에 넘기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디오를 버리는 김에 그간 쌓아두기만 했던 디스크들도 함께 정리하기로 했다.

서랍을 열자 먼지를 뒤집어쓴 낡은 디스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애시절 남편이 선물한 영화음악에서부터 아이를 가졌을 때 구입한 클래식 명반, 울적할 때 차를 마시며 듣던 가요음반들이었다.

하나씩 꺼내 곡목을 살피며 골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골라내는 시간이 점점 더뎌지더니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놓게 되었다. 왠지 그들을 버리는 게 꼭 추억의 일부를 버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오디오를 바라보았다. 눅진하게 묻은 세월의 흔적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A/S센터에 다시 연락을 해 수리를 부탁했다. 기사가 방문하고, 새 부속을 갈아 끼운 오디오에 전원이 들어오면서 오래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먼지를 털어낸 맑고 투명한 음색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10년의 세월동안 삭힌 음악이라 더 정겨운 것일까? 음률 너머 세월의 상처가 새겨진 낡은 오디오처럼 내 결혼에도 크고 작은 균열과 생채기가 있는 게 보였다. 서운할 적마다 이런 사람인줄 알았으면 다시 생각했을 거야라고 따지던 내 철없는 모습이 그 안에 있었다.

'명품'이란 오랜 세월동안 우수한 품질을 잃지 않는 물건일 것이다. 화려하거나 비싸지 않고 남들이 선호하지도 않지만, 10년의 세월동안 나를 변함없이 지켜주고 일으켜준 내 사람이 나에게는 '명품'일 것이다. 고장이 난다해도 결코 버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소설가 양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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