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매연 독서강사

헉헉~, 오랜만에 하는 등산이라 숨이 가쁘다. 다리는 무겁고, 땀으로 송송 맺혔던 얼굴에선 소금기가 사르륵 만져진다.

지난 지방선거일에 남편과 둘이서, 우리나라에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이 당선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라산을 등산했다. 돈내코를 출발해 남벽분기점과 윗세오름을 거쳐 영실로 내려오는 총 12.8km 구간이다.

돈내코에서 남벽분기점까지 7km 구간은 길면서 약간의 오르막코스라 힘들게 느껴진다. 곡선이 아닌 직선의 오르막길이었다면 힘들어 주저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살짝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길이라 묘미가 있고, 곡선에 가려졌다 보여지는 정경을 기대하며 걷다보니 그나마 나았다. 자연 그대로의 부드러운 곡선이 주는 편안함이다.

곡선의 부드러움을 생각하는 순간, 강정마을 해군기지화 정책이 떠오르며 가슴이 답답해진다. 우리가 다양한 꽃과 나무들,동물들을 볼 수 있는 것은 자연 그대로 두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곳에 인간의 인위적인 힘으로 수많은 직선을 그어가며 인공물들을 만들어낸다면, 이는 후손들을 배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태도이고, 눈앞의 이익에 눈 먼 근시안적인 사고이다. 자연에 인위적인 힘을 가할수록 식물과 동물들은 서식지를 잃고 점점 떠나게 된다. 식물과 동물들이 떠난 곳에는 인간도 살아갈 수 없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기 위해 행정 지도자들과 심의기관의 관심과 노력들이 필요하다. 반가운 소식은 도지사 당선자께서 강정해군기지사업을 잠시 보류하도록 권고했다는 점이다. 앞으로도 숙고하여 강정해군기지화보다는 지금의 모습을 보존할 방법으로 재고되었으면 한다.

한라산에 오르며 각양각색의 나무와 들꽃들도 보았다. 청초하니 하얀 찔레꽃, 높게 뻗은 소나무 사이에서 분홍빛 윙크를 해주는 철쭉, 연둣빛 잎사귀랑 조화롭게 노란 꽃을 피운 이름 모를 나무들도 많다. 산딸나무의 하얀 꽃들은 하늘의 에너지를 흠뻑 받으려는지 잎사귀 위에 사뿐히 올라앉아 해를 쬔다. 보랏빛 각시붓꽃은 쑥스러운지 잔디 사이에서 수줍게 미소 지어준다.

숲이 깊어지자 안개가 바람을 따라 하늘을 달린다. 안개 세수를 마친 꽃과 나무들은 그 빛깔이 더 아름답다. 안개에 휩싸인 한라산은 아우라를 발하며 신비롭고 자리를 지키는 든든한 아버지같다. 훗날 강정마을도 지금의 모습을 간직해, 강정마을이 그 자리에 그냥 있어줘서 고마운우리 모두의 강정으로 남겨지길 간절히 바란다.

이제 새로운 지도자가 도정을 이끌 것이고, 도의원들은 도의회를 구성하여 각종 현안을 심의·의결해 나갈 것이다. 한라산의 다양한 꽃나무들처럼 다양한 곳의 소리들을 담아낼 수 있는 넓은 그릇을 가진 지도자를 소망하며 한라산에 내 발자국을 남긴다.  /김매연 독서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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