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영 소설가

무더위로 지친 머리를 잠시 식힌다는 게 깜빡 졸았나보다.

요란스럽게 열어젖히는 문소리에 눈을 뜨니 굵은 빗방울이 유리창을 사정없이 두들겨대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리쬐던 햇볕은 어느 틈에 사라져 버린 것인지……. 정신을 추스를 틈도 없이 문을 열고 나간다.

장마철동안 눅눅해진 이부자리며 집기들을 소독한다고 댓바람에 꺼내 두었던 것이다.

서둘러 옥상으로 뛰어 가는 데, 옆집이랑 뒷집도 맨발차림으로 빨래를 걷어 들이고 활짝 열어놓았던 창문을 단속하고 비설거지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겨우 물건들을 거실로 들여놓고 흠뻑 젖어버린 옷을 갈아입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덕을 부리는 여름날씨를 방심했던 걸 탓하며 이부자리와 집기에 묻어 있는 물기를 마른 수건으로 닦는 데, 쏴아 하며 일제히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가 집 전체를 울린다. 그나마 다행이란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어린 시절, 장독 뚜껑은 내 담당이었다. 할머니가 오전 마실을 나가면서 뒷마당에 놓여진 된장, 고추장, 간장 항아리 뚜껑을 열어 해바라기를 시키면, 나는 날씨를 지켜보며 비설거지를 해야 했다. 평소에는 어둑해지기 전에 뚜껑을 닫으면 되는 것이었지만,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변덕스런 소낙비가 갑자기 쏟아져 심심찮게 문제를 일으켰다.

바깥에서 동무들과 땀범벅으로 놀다가 우두둑 쏟아지는 비에 신발도 잃어버린 채 집으로 뛰어 들어왔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다. 자칫 비설거지를 놓쳐 빗물이 들어가 버리면 일년 장맛을 완전히 버리기에 어린 마음에도 비설거지의 중요성을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이번 주면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더위에 들어간다고 한다. 여름의 향기가 한층 깊어지는 것이다. 여름은 높은 기온에 지치고 습한 기운에 우울해지고 변덕스런 기후에 혼란스러워지는 계절이다. 또한 언제 갑자기 쏟아질지 모르는 소나기에 대비해야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여름을 보내기 전, 비설거지를 하는 마음으로 내 주변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여유를 가져야겠다.  /양혜영 소설가

*비설거지 : 비가 오려고 하거나 올 때, 비에 맞으면 안 되는 물건을 치우거나 덮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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