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잠녀] 3부
소리를 따라 - 서귀포 대포동 김 절 할머니 1

   
 
  중문 지삿개  
 
대상군·해녀 노래 잘하는 것으로 유명…어머니 따라 대마도 물질하며 소리 배워
지팡이 짚고 물질 나서 '막댕이 할망'애칭, "하늘우의 절만 안 들면 물드레 갔져"

언제나 말없이 안아주던 바다였다. 그랬던 바다가 변했다. 언젠가 부터 그토록 자신의 안을 더듬어대던 잠녀들을 하나 하나 품기 시작했다. 하나둘 잠녀들이 떠나는 것이 안타까워서 일까. 더 이상 내줄 것 없이 말라가는 가슴에 부애(화)가 나서일까.

산북 한 어촌계는 잠녀들이 줄줄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자 3년이나 큰굿을 하다 끝내 작업을 접었다 했다. 가만히 앉아 바다를 내줘야 하는 마음은 오죽할까. 해군기지의 끝자락에 걸치는 대포동, 그 바다의 손짓이 의미심장하다.

   
 
  김 절 할머니  
 
# "이젠 다 늘겅 아무 것도 몰라"
3년 전까지 김 절 할머니(90)에게 제주 현직 잠녀 중 '최고령'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대상군으로 해녀노래를 잘 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옥련'이란 이름도 있지만 호적에는 '김 절'외자 이름으로 기록돼 있다.

사실 이름이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김 할머니의 존재감이다.

87세까지 지팡이에 의지해 바다로 나가고 작업할 때는 그것을 테왁망사리에 걸어두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막댕이(막대의 제주어)할망'이라는 애칭까지 붙었다.

철이 들면서 시작한 물질을 70년 가까이 놓지 못했다. 하지만 물에 나섰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질 뻔한 후로는 일절 바다 걸음을 하지 않았다.

상군 소리를 들으며 물질을 하는 딸들이 와 같이 바람이나 쐬자고 해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할머니가 바다를 벗어난지 3년 동안 이곳 바다에서만 벌써 다섯명이나 목숨을 잃었다.
예전에는 물숨을 먹고 죽었지만 지금은 세월이 잠녀를 잡는다고 했다. 임춘희씨는 "작업하다 목숨을 잃었다면야 힘들어서 그랬다고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며 "작업을 잘하고 뭍에 나와서는 조금 몸이 안좋다며 쓰러져서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한다.

그래도 바다에서의 얘기만 나오면 눈이 빛난다. 김 할머니를 만나러간 길, 올레 밖에 사는 큰 딸 임춘희씨(60)가 동행했다. 우연히 시간이 난 임영자(57)씨는 먼저 김 할머니와 시간을 풀고 있었다.

찾아간다는 전화에 김 할머니는 "다 늘근 할망신디 들을 소리가 뭐 이서"하며 "이젠 귀도 막고 다 이저부렁 고를 말 어쪄(이제 다 잊어버려 할 말이 없다). 오지 말라"했다.

하지만 막상 바다를 던지니 사정을 달라졌다. 조금씩 꺼내지는 기억의 단편들은 잘 꿰어져 이내 큰 천이 되어 출렁인다.

"골젱 허문 울어졍…(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울음이 나와서…)"
할머니의 눈은 멀리 바다밭을 뒤지고 있었다.

   
 
  왼쪽 임춘희씨 오른쪽 임영자씨  
 
# 바다로 이어진 많이 닮은 세 모녀
"하늘우의 절만 안 들면 물드레 갔져"(파도가 심하게 거칠지 않으면 물질했다)
김 할머니 일생에 바다를 빼면 남을 것이 몇 안 된다. 자식 여덟이 전부라면 전부다.

열 일곱부터 물질을 한 김 할머니는 열 아홉에 결혼하고 스무살에 대마도에 물질을 갔다. 이듬해까지 어머니를 따라 간다. 쌀 1섬에 고구마가루 2말을 챙기고 가지만 늘 배가 고팠다. 어른 주먹만한 소라를 주고 호박같은 채소를 바꿔 먹었다.

흉내내듯 슬쩍 내뱉는 일본어가 일품이다. "살젠허난 다 들어졌주 이제 하랜하면 못해"
멀미가 심해 걸어서가 아니면 대포 마을을 벗어나본 적이 없다는 할머니의 아주 특별한 결험이다.

남들이 작업하지 않는 날 물에 들었다가 31㎏ 남짓한 전복을 땄다. 전주가 다른 잠녀들에게 뭐라 재촉을 했을 만큼 많은 양이었다. 하지만 김 할머니의 대마도행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갑자기 어지럼증과 함께 몸이 아프기 시작한 김 할머니는 돌아가신 아버지 넋이 씌었다는 말에 제주도로 돌아와 굿을 하고서야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잘 한다 소리를 듣는 소리도 거의 대마도에서 배웠다. 대포 바다는 작업을 하고 돌아올 때나 겨우 배에 의지한다. 물건을 나르는 용도였으니 잠녀들의 노젓는 소리가 필요할 리 만무했다. 김 할머니는 "대마도서는 저절로 소리가 나왔다"며 "작업이 없을 때면 다다미 위에 누웡 신세타령도 많이 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대화는 어느 샌가 오늘로 돌아왔다. 작업한 얘기를 꺼내놓는 딸들에게 어머니가 먼저 바다 얘기를 한다.
"게난 새여더레 가셔시냐" "어머니 그쪽이 아니고예…" 몇 번의 시도에도 끼어 들 여지가 없다. 도란도란 주고 받는 말이 노래처럼 들린다.

몸은 마음을 따라간다고, 바다를 나누다 보니 말씨와 생각도 비슷해지고 하는 것도 닮아간다. 닮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처럼 하나같은 모녀다.

임춘희씨가 한숨처럼 "언제까지나 이런 말을 하게 될지"한다. 그 까닭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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