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가 변시지를 '숭고미의 화가'라고 감히 부른다. (일반적으로 변시지를 '폭풍의 화가'라 칭하지만, '숭고미의 화가'라는 표현은 필자의 자의적인 칭호임) 그의 작품들은 감상자로 하여금 내면에서부터 올라오는 어떤 '울림'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기 때문에, 그의 제주풍 회화에서 느껴지는 감상들을 필자는 미적 범주 중 숭고미로 판단한다.
 
우리가 변시지의 제주화 작품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강렬한 감정은 숭고미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들꽃을 볼 때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는 다르게 감상자를 멈칫하게 만든다. 작품 속으로 빨려들어간 감상자는 무한한 상상을 하려고 하지만 실존의 존재인 인간은 한계를 느끼게 된다. 그 순간, 인간의 의식 세계 너머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신세계가 고양되는 쾌감을 느낀다. 바로 숭고의 미학을 경험한 것이다.
 
세계적인 화가 변시지는 평생에 걸쳐 그린 작품들을 기증과 임대형식으로 서귀포시에 내놓겠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언급해왔고, 화가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서귀포시에서는 미술관 건립을 위해 부지를 확보했다. 하지만 예산상 추후 과정이 늦춰지는 틈을 타서 몇 곳에서 미술관 유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지켜보며, 화가를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속상하다.
 
변시지미술관은 서귀포에 건립되어야한다. 또 다른 곳을 거론하다보면, 화가의 본래 뜻을 왜곡하고 화가를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며, 감상자들의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화가의 작품을 감상자들은 한 곳에서 볼 수 있어야한다. 또한 작품을 이해하는데, 화가가 영감을 받은 고향은 실로 의미있는 일이다. 제주도내에서도 서귀포 자연풍광은 색다르다. 태풍이 태평양에서 올라오는 첫 길목에 서귀포는 있다. 그러니 한라산이 태풍을 막아주기 전에 고스란히 태풍과 맞서야 하는 서귀포의 환경, 그로인해 만들어진 서귀포 앞바다의 기암절벽들은 다른 지역에선 느낄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이런 서귀포 자연이 화가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미술관을 찾는 감상자들에게도 화가가 영감을 받은 자연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해야한다.
 
또한 서귀포에 미술관을 건립해야하는 것은 화가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화가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는 아픔을 수 십 년간 겪으면서도 작품의 영감을 얻는 서귀포를 고집하여 살아오고 있다. 그만큼 서귀포라는 지역은 화가 예술성의 원형인 것이다. 따라서 이 원형의 장소인 서귀포에 미술관을 건립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살바도르 달리 또한 스페인 북동쪽 조그만 시골 마을인 고향 피게레스에 미술관을 건립하지 않았는가?
 
'변시지 미술관'은 화가의 고향 서귀포에 건립해야 마땅하다. 이는 세계적인 화가라는 칭호를 가진 예술가의 예술정신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독서강사 김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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