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자의 제주바다를 건넌 예술가들] 66. 판화가 강승희

도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 '어린 시절 경험된 제주 자연'과 긴밀하게 연결돼
명상으로 보면, 고요한 정적, 맑은 기(氣)로 채워진 파장의 세계 볼 수 있어


   
 
  판화가 강승희  
 
# 판화 약사(略史)


판화는 영어로는 Print, 또는 Printmaking, 불어로는 Gravure, 또는 Estampe라고 한다. 판화는 판(版)이라는 매개체로 이루어지는 미술 장르로서, 하나의 표면(版:Support)에서 또 다른 표면(종이)으로 그림을 옮기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판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판화는 간접예술이라고 할 수 있으며, 하나의 판으로 여러 장 제작하기 때문에 복수(複數)예술이라 일컬어진다.

고대 중국에서 장식을 위해 사용했던 나무 스탬프가 판화의 시초이다. 2세기경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면서 목판이 널리 사용되었다. 이집트에서는 4세기 콥트 천(Copt布)에 바커스의 생애를 도장으로 찍은 천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무렵부터 목판화를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을 해체·수리하는 과정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靜光大陀羅尼經)이 발견되었는데, 이 목판본은 서기 751년 신라시대의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쇄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중국의 종이가 유입되는 14세기 후반부터 목판화가 생겨났다. 1420년경부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종이가 대량생산되자 목판화와 동판화가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판화는 트럼프, 기록화, 책·신문 삽화, 벽보, 풍자화, 만화 등에 종교적, 국가 정책적인 이념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또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판화에 옮겨 원본을 보지 못한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하였다. 이로 볼 때, 판화는 처음부터 독립된 예술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복제기능 역할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독일의 알베르트 뒤러(1471~1528)가 등장하면서 판화가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뒤러는 인그레이빙(Enggraving), 드라이 포인트(Dry Point), 에칭(Etching), 목판화(Woodcut) 등의 작품을 남긴 판화의 대가이다. 네덜란드의 브뤼겔(Pieter Bruegel, 1525~1569)은 당시 유행했던 괴기스런 그림을 에칭으로 남겼다. 렘브란트(Rembrandt)도 에칭기법으로 수준 높은 판화를 제작하였다. 스페인의 고야(Goya)는 아콰틴트(Aquatint)와 에칭을 혼합한 기법으로 <전쟁의 참화>시리즈와 <투우>를 동판화로 제작하였다.

18세기말에 이르러 독일 출신의 극작가 제네필더(Aloys Senefelder)에 의해 석판화 기술이 개발되었다. 프랑스의 제리코는 고전문학의 삽화 그림을, 도미에는 풍자화를 석판화로 제작하였다.

18세기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손으로 찍었던 판화 인쇄술이 기계로  대체되었다. 판화가 독립된 순수예술로서 자리하게 된 것은 현대미술이 출발할 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새벽 5시 30분-8970, 220×150㎝, 아크릴릭, 1989  
 
# 강승희의 판화기법


강승희(姜丞熹,1960~  )는 오현고등학교, 홍익대학교 미술대 서양화과·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그는 1988년 제5회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 대상, 1991년 제4회 와카야마(和歌山) 국제판화비엔날레 2등상, 제10회 대한민국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수상 경력이 화려하다. 23회에 걸친 개인전을 서울, 워싱턴, 도쿄 등에서 열었다. 800여회에 이르는 국내·외 단체전 활동이 말해주듯 그는 부지런한 작가이다.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미술학부 판화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강승희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영국 대영박물관, 일본 와카야마 근대미술관, 러시아 우크라이나 독립센터, 중국 흑룡강성 미술관 등 국내·외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1989년 서울 바탕골 미술관과 제주 세종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은 강승희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당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생이자 조교였던 그는 도시의 이미지에 주목하였다. 흔히 사람들은 도시를 소외감과 삭막함으로 점철된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하고 있었다. 강승희는 도시에서 또 다른 자연이자 공간으로서의 여백을 찾아내었다. 어린 시절 제주의 자연이 안겨주었던 충만한 감정들이 어느 날 문득 도시 속에서 살아 움직였던 것이다. 도시는 작가의 고향 제주 바다의 두 가지 모순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바람 없는 날 제주 바다는 지독한 침묵으로 잠잠해진다. 바람이 일면 그 바다는 거대한 몸을 일으켜 분노하듯 으르렁댄다. 세상이 깨어나기 전 도시는 정적만이 감돈다. 일상이 시작되면 도시는 만물의 소리로 구비친다.

<새벽 5시 30분> 시리즈는 1987년부터 1989년에 걸쳐 제작된 강승희식 도시해법이다. 미명(未明)에는 사물들 간의 경계(境界)가 불분명하고 근경(近景)과 원경(遠景)이 혼재된다. 작가는 이를 두고 "형상적 실체의 변주(變奏)를 통해서 내면적 체험의 공간을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강승희에게 도시는 '형상적 실체'이지만, 도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어린 시절 경험된 고향의 자연'과 긴밀하게 닿아 있다. 차가운 도시의 형상이 부드럽게 헤쳐지면서 자연의 느낌으로 화(化)하는 것은 이성적 사실묘사보다는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때 전시된 회화들의 느낌은 판화에서도 그대로 배어난다. 강승희는 이때부터 시작된 딥에칭(Deep Etching)과 아쿼틴트를 이후 20년 동안 작품 제작에 활용하였다. 동판이 주는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포근하고 부드러운 효과로 전이(轉移)시키는 데에 온 힘을 쏟았다. 이는 서양 느낌이 강한 동판화에 동양적 사유를 결합시키고자하는 그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2004년부터 이 과제에 대한 해법으로 드라이포인트(Dry Point)를 선택하였다. 그는 니들(Niddle)을 동판에 강하게 긁었을 때 금속찌꺼기(Burr)가 생기면서 나타나는 번짐 효과와 무수한 점으로 형성되는 강한 톤을 선호하였다. 철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담금질을 계속하여 강한 니들을 만들었다. 표현 효과를 높이기 위해 여러 종류의 니들을 만들었다. 드라이포인트는 동양화의 발묵법과 같은 효과를 내기에 적합하였다. 수없이 찍힌 점들이 다시모여 덩어리와 면이 되고, 그것들은 질량감 있는 검정 톤을 형성하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질감을 탄생시켰다. 강승희 작품의 세계가 변화하는 시점임을 알리는 신호였다. 드라이포인트 기법의 연구는 동양적인 명상의 세계로 다가가는 데에, 그리고 수묵화의 세계를 재발견하는 데에 중요한 길잡이가 되었다.

   
 
  새벽-2801, 50x80㎝, 드라이포인트(DryPoint), 2008  
 
# 강승희의 작품세계


강승희는 드라이포인트로 작업을 바꾼 이후, <작업노트>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현대는 첨단 매체로 무장된 시대다…화려한 컬러와 스펙타클함으로 넘치는 사회에서 상반(相反)된 매체의 표현양식으로, 새벽이라는 주제로 변함없이 작업하는 것은 아직도 표현할 대상이 많고,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2004년 이래 줄곧 집착해온 동양적 명상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그는 조용한 산사(山寺)나 강과 숲을 찾아 떠났다. 강승희가 추구하는 동양적 명상은 궁극적으로 삶의 여백에 다가서기 위한 것으로, 자연 공간의 여백은 곧 정신세계의 여백으로 치환(置換)된다. 강승희의 작품은 무수한 점으로 구성되는 화면처럼 '없지만 있는 상태'로 형성되다가도, '있어야 할 것이 생략되듯 점점 사라지는 대기의 기운' 같은 도(道)의 세계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한 문명 세계의 색을 모두 합쳐본들 흑백을 넘어설 수 있는가. 흑백의 대비는 새벽이라는 시간의 주제 의식을 잘 드러내준다. 흑백은 단순하게 보이지만 극명하며, 절제되게 보이지만 오히려 정신세계를 강화시킨다. 강승희 판화의 여백은 화면에 표현된 사물들을 마음대로 이동시킬 수 있는 공간이다. 여백이 많을수록 표현된 사물들의 파장과 운동 범위가 넓어진다. 여백은 단순히 빈 공간이 아니라, 사물들과 관념들이 개입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인 것이다. 또한 의식에 의해 구성되는 해방된 공간이기도 하다. 

강승희의 초기 작품에서는 어린 시절 제주의 자연을 바라보던 충만한 정서로 새벽 도시를 그리고 있다. 이는 직관과 감각으로 형상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동양적 자연관과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작품들에서는 선의 반복이 아니라 점의 반복이 주류를 이룬다. 점은 의식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보여주듯, 여백을 향해 걸어 나오거나 여백으로 사라지는 형상으로 남는다. 생성과 소멸의 과정은 의식의 흐름, 명상에 의해서 완성된다. 명상으로 세계를 보면 고요한 정적의 세계, 맑은 기(氣)로 채워진 파장의 세계로 다가 갈 수 있다.

우리는 강승희의 작품에서 파장을 통해 정지하고 있는 사물들의 운동성을 볼 수 있다. 이 사물들의 운동성은 강승희의 동양적 사유와 장인적인 기질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대학교박물관 특별연구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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