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장수명

"여기도 있다, 봐라"

나의 어머니는 옷장에서 매번 옷을 꺼내 입게 되면 옷 주머니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빼내 보이시며 내게 말했다. 그처럼 빙긋이 웃으며 말씀하시는 어머니 손에는 매번 지폐가 달랑달랑 춤을 추고 있었다.

"주머니가 텅 비면 마음이 허전해서 안 돼"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일부러라도 돈을 어머니 옷 주머니 곳곳에 찔러 넣어 두곤 했다.

그렇게 보고 자라서일까?

나도 언젠가부터 외출했다가 돌아와 옷장에 옷을 걸어둘 때면 지폐 몇 장은 주머니에 넣어 둔 체 옷을 걸어둔다. 그러다가 철이 바뀌거나, 딱히 입고 나갈 일이 없어서 한참동안 잊고 지내던 옷에서 어느 날 만나게 되는 종이 느낌은 행운권에 당첨된 그 때의 기분이라면 표현이 맞을까?

나는 그렇게 어느 새 어머니 그 때의 나이가 되어 있고, 어머니와 하나하나 닮아가고 있다. 그처럼 내 안에 있는 어머니를 느낄 때면 기억저편에 있던 어머니에 대한 소소한 기억들이 이쪽으로 성큼성큼 건네 온다.

그럴 때면 내게서 터져 나오는 일성(一聲)이 있다.

'벌써!'라는 단어다.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았던 그 일이'벌써' 몇 달이 지나있고, '벌써' 몇 년이 지난 시간으로 남아있으니 말이다.

시간이란 정말 머무는 법이란 없다.

늘, 있어 온 시간처럼 스치듯 찾아와서 순간으로 남아, 기억 저편으로 건너가 있으니 말이다.

베란다 넓은 창으로 얇은 커튼을 드린 듯 희뿌연 하늘이 보인다. 그 하늘을 받치며 유유히 강물처럼 물길을 만들어 흐르는 바다가 오늘은 문득 시간의 강처럼 느껴진다.

12월…….

어느 덧 2010년 마지막 달력이 남았다. 10여일도 체 남기지 않은 채 말이다.

내게 있어서 일 년 열두 달 중에 12월은 기다림의 시간이고, 공연히 바빠지는 시간이며 못내 아쉬움이 남는 시간들로 점철되었었다. 그런데 2010년 12월은 오직 아쉬움의 달로 남을 것 같다.

밀물썰물 칼럼이 이제 마지막 칼럼으로 지면을 채운다고 한다. 그간 주변에 크고 작은 소소한 이야기들과 이슈적인 사회 시사내용을 부담 없이 써 갈 수 있어서 참 좋은 코너라고생각했었다. 그런 밀물썰물 마지막 자리를 내가 쓸 수 있어서 조금은 덜 서운하지만, 그 글을 내가 쓴다는 것이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질 또 다른 코너에게 귀한자리를 내어주며, 그간 애써주신 담당기자님과 귀한 지면 만들어주신 신문사에 깊이 감사 인사를 전한다.

오늘은 일 년 중에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짓날이다.

펄펄 끊는 동짓팥죽 한 그릇으로 남은 12월과 다가오는 2011년을 따뜻하게 맞이해보자! /동화작가 장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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