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또 다른 기억 유배문화, 그것의 산업적 가치 16)에필로그 : 아픈 과거의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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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제주는 유형의 섬이었다. 검푸른 바다를 건너 웅장하게 솟아있는 한라산을 마주하면 비운의 땅 제주를 실감했을 것이다. 바다에서 본 한라산과 제주. 장공남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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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자도를 거쳐 제주로 향하다 마주치게 되는 관탈섬. 제주로 귀양 가는 선비가 갓을 벗어 옷깃을 여몄다고 해서 관탈섬이라 불린다고 전해지기도 하고 쓸모 없게 된 관복을 벗고 평민의 옷차림을 했다해서 관탈섬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장공남 기자 | ||
# 제주에 온 사람들의 흔적
올 5월 대정에 제주추사관이 개관됐다. 제주추사관은 제주에 유배 왔던 조선시대 예술가이자 학자인 추사 김정희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추사 김정희를 단군 이래 최고의 예술가로 평가하고 있는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지난 12월 4일 제주추사관 개관기념 심포지엄에서 "제주도 사람만이 제주도를 사랑하지 않는다. 제주사람 보다 더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제주사람들과 제주출신이 아니지만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주추사관은 탄생됐다. 조선시대 최악의 유배지로 군림했던 대정에 건립되어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가 김정희를 기리고 있다. 김정희는 8년 3개월의 유배생활 동안 국보 '세한도'를 그렸으며 제주의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제주추사관 인근에는 황사영백서사건으로 대정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정난주의 묘가 남아 있다. 정난주는 제주에 처음으로 천주교 신앙을 알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정희가 물을 찾아 들렸다는 안덕계곡 인근은 문집 「서재집」을 남긴 임징하의 유배지였다.
대정 보성초등학교 교문 옆에는 제주 오현 중 한명인 동계 정온의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제주 오현을 모시며 200여년 동안 제주의 사립교육기관 역할을 했던 귤림서원은 현재 오현단이라 불리며 남아 있다. 귤림서원 인근 제주시 중앙로는 조선조 제15대 임금 광해군의 적거지가 있던 곳이다.
의병장 최익현은 방선문계곡 바위에 이름 석 자를 남겼다. 제주 여인과 애달픈 사랑을 나눴던 조정철은 한라산 정상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한 많은 사연을 전하고 있다.
조천의 연북정을 바라볼 수 있는 절에는 불교부흥을 꿈꿨던 보우의 석상이 불자들을 맞이한다.
# 유배지에서 관광지로
과거의 아픈 기억은 관광 자원으로 값지게 활용되고 있다.
전라남도 강진에 가면 유배인 다산 정약용이 저술활동을 했던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초당을 중심으로 문화와 생태관광이 결합된 남도 유배길이 관광객을 맞고 있다.
흑산도에는 유배 기간 어류백과사전을 쓴 손암 정약전의 이야기를 새로운 해석을 가미해 수익을 내기 위한 문화상품 흑산도유배문화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중국 하이난섬(해남도)은 당·송나라 때 유배지였다. 하이난섬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이덕유, 이강, 이광, 조정, 호전을 기리는 사당이 오공사다. 또 송대 문장가 소동파가 유배생활 동안 머물었던 소공사도 하이난섬에 있다.
호주는 영국의 유배지였다. 호주의 섬 테즈매니아는 유배의 섬이었다. 1840년대 죄수 1100여명이 머물렀던 마을 포트 아서는 유적지로 남아 있다.
에게해의 작은 섬 밧모섬은 로마제국시대 유배지다. 예수의 제자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때 밧모섬에서 18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하며 요한계시록을 집필했다. 밧모섬은 요한계시록을 썼다는 계시동굴과 성요한 수도원 등이 있어 세계적인 성지순례지로 각광받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서쪽에 자리 잡은 세인트헬네나섬은 나폴레옹의 유배지로 널리 알려진 섬이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1815년부터 6년간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다 1821년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는다.
# 유배인의 후손
제주는 섬이라는 독특한 지리적 특성과 함께 유형의 섬이라는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유배인들은 대부분 정권 다툼에서 패해 사형에서 한 단계 감형, 유배형에 처해진 정치인이자 학자였다. 중앙 정계에서 축출당한 유배인들은 권력에 비판적이었다. 유배인들이 제주에 올 때는 몸 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유배인들은 비판적 사상도 같이 가져왔다. 이들은 제주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한양 문화와 교육을 전파하는가 하면 비판사상까지 전했다.
특히 유배인들은 제주여인들과 인연을 맺거나 가족을 데려와 입도조가 됐다. 현대에 이르러 제주를 구성하고 있는 인구 가운데도 유배인의 후손들이 적지 않다.
장두 이재수의 선조는 유배인 이세번이며 김해김씨 좌정승공파의 입도조 김만희도 유배인이다. 간옹 이익은 헌마 공신 김만일의 딸을 맞아 들여 경주이씨 국당공파 제주입도조가 된다.
제주인물사를 다룬 책자를 보면 선조 38년(1605년) 장윤태는 경주부윤 관직에 있다가 환관의 모함으로 제주에 유배, 봉개에 은거하다 아들 3명을 두고 세상을 떠난다. 장윤태는 인동장씨 진가파의 제주입도조다.
유배는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같이 하며 제주에 자생하던 문화적 토양과 결합, 독특한 제주문화의 한 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유배기획을 통해 제주에 유배 온 인물 37명을 다뤘다. '귀양다리' 라 놀림 받으며 제주를 찾았던 유배인들의 사연은 저마다 구구절절하다. 유배인들의 이야기를 더 감칠맛 나고 더 알기 쉽게 전하는 또 다른 기획 기사를 기대하며 유배 기획을 마무리한다. 글·사진=장공남 기자 gongnam@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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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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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유배 기획에서 다룬 제주에 온 유배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