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자의 제주바다를 건넌 예술가들] 72. 추상화가 이성만

무(無)의 세계는 유(有)의 세계가 있을 때 알 수 있는 세계
내면적으로는 동양적 세계관, 외면적으로는 서양 형식 활용

   
 
  이성만 근영  
 
# 현대미술의 혁명, 추상미술

최근 성행하고 있는 각종 비엔날레나 아트페어는 '미학의 국제화(internationalism in aesthetics)'라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이미 세계는 각국 간의 이미지들을 네트워크로 실어 나르고 있다. 외국문화라는 말보다 다문화(multiple culture)라는 말로 대변되는 사회적 인식은 문화의 이질적인 차이를 강조하기보다는 문화차이를 존중하게 만드는 시대 변화를 담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적인 교류나 경제적인 상호 작용이 활발하다고 해도 여전히 남는 문제는 '문화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차이는 동양·서양, 문명, 종교, 사회체제에 따라 매우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자연관에 있어서 서양인들은 개인을 중심에 두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연을 보지만, 동양인들은 개인을 자연과 긴밀히 연결된 관계 속에서 천지 만물과 더불어 사는 것으로 인식한다. 예술의 형식에서도 동양화는 종이에 붓을 사용하여 먹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서양화는 캔버스에 유채로 그림을 그린다.

서양화가 한국에 유입된 것은 일본을 통해서였다. 추상미술 또한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도입된다. 추상미술(abstract art)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23년 월북 작가인 주경(朱慶)의 <파란(波瀾)>이라는 작품에서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이정표를 세운 화가는 김환기로 볼 수 있다. 1947년 창립한 <신사실파> 그룹은 해방과 더불어 등장한 최초의 추상회화 동인이었다. 제주에서는 1973년 <관점 동인>에 의해 최초로 추상미술이 소개되었다.      

추상미술(abstract art)은 비구상 미술, 비묘사적인 미술이라고도 불리며 눈에 보이는 현실의 사물을 묘사 대상으로 하지 않는 미술을 일컫는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추상미술의 기원을 세잔느로 상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는 기하학적으로 면 처리를 함으로써 20세기 추상미술의 기초를 다진 화가가 되었다. 자연 대상에 구조적인 형상을 부여한 것은 의식의 순수한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내면적 고뇌의 산물이었다.

추상미술은 요소주의(Elementalism)와 자유추상으로 나뉜다. 요소주의는 러시아의 절대주의를 대표하는 말레비치와 신조형주의 창시자인 몬드리안이다. 자유 추상은 칸딘스키나 아르프 등에 의해 감정과 직관에 충실함으로써 매우 주관적인 요소를 띠게 되었다. 추상미술의 매력은 바로 주관적인 자유로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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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회화를 택한 화가

새롭다는 것은 기존의 질서를 깨는 것이다. 새로움이란 창조적인 지향이 있을 때 가능하다. 새로움으로 나아가려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낡은 것'은 고정관념과 정체(停滯)를 수반한다. 고정관념은 안정성을 지향하게 되고 정체는 퇴보를 가져다준다. 낡은 것은 변화하는 시대에 소멸대상이 된다. 변화는 만물의 속성이고 새로운 적응의 시작이다.

추상화가 이성만(李成滿, 1952~   )은 제주시 용담 1동에서 출생하였다. 제주서초등학교와 오현중·고교를 졸업. 제주대 미술교육과, 중앙대 대학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조형예술학 준박사(D.E.A) 학위 취득, 동대학교에서 박사를 수료하였다. 이성만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 5학년 때 소년한국일보가 주최한 전국미술실기대회에서 입상하여 서울로 초청을 받기도 하였다. 이성만의 오현중학교 미술부 선배로는 고영석, 김영철, 김종석, 변덕부가 있었고, 동창으로는 강요배, 고영훈, 백광익 등이 있었다. 중학교 미술부 시절 미술교사 김보윤은 육지에서 미술실기대회가 있으면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대회에 참가시켜 화가의 꿈을 키워주었다.

이성만은 오현중학교에서 7년 정도 미술교사로 근무. 제주대학교 미술학과에서 2년 6개월 강사를 거쳐, 현재는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초빙객원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수상 경력으로는 중앙미술대전 2회 입선, 제주도미술대전 대상을 받았다. 프랑스에서 개인전 3회 개최. 국내외 단체전에 다수 참가하였다.

1990년 이성만은 가족을 두고 홀로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프랑스 교육은 창의성을 우선시하며, 중학교 때부터 철학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프랑스 학교는 새로운 미학적 개념, 즉 자신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개성을 원하였다. 발표와 토론수업이 주가 되는 프랑스에서 이성만은 자신이 가지고 갔던 예술 교육의 흔적을 과감히 지워버렸다.

그는 자신이 품었던 고정관념이 새로운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하였다. 바로 자신의 고정관념을 깨야만 했다. 고정관념을 깬 순간 일상의 모든 것들이 예술의 대상이 되었다. 예술가는 표현하기 위해서 무한히 자유로워야 한다. 그 자유는 주제, 대상, 재료 영역을 모두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자유가 억압되는 예술가는 개성적이지도 독창적이지도 못하다.

그때 선택한 것이 포장 박스를 이용한 골판지 작업이었다. 상품의 포장지였던 골판지를 벗기면 단정한 결이 나오고, 찢어진 종이의 마티에르가 우연적인 아름다움을 주었다. 골판지에 흥미를 느끼는 순간, 칼을 이용하여 단정한 결들을 찢거나 흠을 내어 자연적인 효과를 주었다. 색채는 흑백에서 청색과 붉은 색으로 이동하였다. 이때부터 동양의 음양사상을 작품에 적용하였다. 그의 지도 교수도 독창적인 작품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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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만의 작품세계

이성만의 준박사 학위 논문은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지침서가 된다. 이때의 작품들은 동양의 음양(陰陽) 사상을 뿌리로 하여 서양식 형식을 창안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역(易)의 사상적인 핵심은 양(陽)과 음(陰)-강(剛)과 유(柔), 건(乾)과 곤(坤)-의 대립이라고 하는 음양(陰陽) 이원론(二元論)이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일정불변(一定不變)의 법칙이 있는 법이다. 모든 사물은 고립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대립되는 것이 있어서 그와 대립함으로써 통일된 세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변화는 음과 양의 대립에서 생긴다. 음과 양은 대립과 작용을 통하여 소멸과 성장의 순환 속에서 변화하며 발전해 간다. 우주 만물은 바로 이런 음양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모든 색을 합치면 탁한 무채색이 된다. 색은 빛의 작용으로 나타나므로 빛이 없으면 색도 없다. 빛과 어둠은 음양의 대립이다. 대립이 있음으로써 아름다움과 추함이 존재한다.

이성만은 색의 상징성을 중요시 여긴다. 색의 상징성은 특정 문명의 응집된 문화적인 표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색에는 동·서양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다. 백색은 평화, 흑색은 죽음, 남자는 적색으로 태양을 상징하고, 여자는 청색으로 달을 상징하는 것처럼 그는 동·서양이 만나는 접점과 다름을 표현하고 있다. 색의 대비는 음양의 대립처럼 조화가 전제된 대비이다. 칼로 뚫어진 정삼각형의 표상들은 세계의 존재자인 남과 여의 기표들이다. 그 기표들은 음양에서만 아름답게 되고 음양을 벗어나게 되면 조화의 체계에서 일탈한다. 무(無)의 세계는 유(有)의 세계가 있을 때 알 수 있는 세계이다. 무의 세계는 크게 유의 세계의 범주 안에서 상상할 수 있듯, 음양의 대립 속에서만 세상은 아름답게 변화한다.

이성만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스스로 말한다. "정사각형은 정지하는 물체를 상징하고, 사방에서 방사(放射)하는 삼각형은 사고(思考)를 상징하고, 원은 영원히 움직임으로써 정신을 상징한다." 이성만의 예술은 그린다는 2차적인 행위를 넘어선다. 칼로 오리고 그것을 세운다는 것은 3차원적인 공간을 구성하는 행동이다. "예술은 행동에 의해 구해졌다"는 루치오 폰타나의 개념을 어느 정도 수용하고 있다. 그린다는 행위 자체의 회화적 방식을 버리고, 화면에 직접적으로 공간을 만드는 행동적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은 예술 형식적인 면에서 서양의 형식주의 예술 방법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뚫어진 공간은 평면의 세계를 전복(顚覆)시킨 것이다. 즉, 사고의 전복, 개념의 전복, 행위의 전복, 평면의 전복, 공간의 전복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듯 모든 화면은 변화하였다. 또한 공간의 빛은 다양한 각도, 무수한 개체들을 생성시키는 빛으로 변화한다. 화면을 뚫음으로써 일정공간의 화면이 일어서고, 뚫어진 다른 공간이 기존의 공간에 대해 음양으로 대립한다. 이때 대립은 빨강과 파랑, 빛(열림)과 어둠(깊음), 각형(角形)과 원(圓)이 대립물의 통일로서 변증법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성만의 작품 세계는 내면적으로는 동양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외면적으로는 서양의 형식을 활용하였다. 그는 미학적 관념으로 동양의 오랜 전통을 갖는 음양의 세계를 도입하여 서양의 재료, 표현방식, 일상과 만나게 하였다. 일면 그의 작품이 모험적인 요소가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궁극적으로 그는 동양의 정신과 서양 기법의 대립을 통해 조화로운 미적 차원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제주대학교 박물관 특별연구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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