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프랑스 사진작가 레오나르 드 쎌바
제주의 아부오름 분화구 위로 인간들이 서 있다. 나무처럼. 파노라마로 찍은 이 사진가의 눈은 파랗다. 부리부리한 눈매, 익살, 진지한 표정이 일품인 '한국통' 프랑스 사람. 한때 한불합작 영화의 자막엔 그의 이름이 반드시 올려져 있었다. 프랑스에서의 촬영 때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영화가 거의 없다는 말씀. '불란서 한국문화원!' 프랑스에 살던 한국 사람들은 그의 집을 그렇게 불렀다. 마땅하다. 파리에 온 한국의 예술인들이 항상 모였고, 뭔가 일이 이뤄졌으니. 그 집이 팔릴 때 아는 한국인들은 집의 구명운동을 하겠다 할 정도였다. 한국을 아는 이가 드물던 시절, 한불영화의 인적 지원, 두 나라 사진예술을 알게 모르게 이어온 이 사람. 어느 봄날을 아예 한국에서 보내기로 했을까. 예술가 아내와 함께 이 섬에 잠시 체류하면서, 서울도 왔다갔다 하면서, 향그런 제주도를 찔끔찔끔 찍고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홍보를 위한 관광가이드 같은 책을 위해서였죠. 아시아 세 나라 가운데 한국이 가장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 한국을 택했어요. 서울에 먼저 왔죠.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엄청 애를 먹었죠." 2주를 그냥 흘려 보냈다. 허나 세계 공통어 몸짓 언어가 있지 않은가. "시장에 가면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눈으로 이해를 할 수 있었어요. 아무 것도 모르면서. 다들 쳐다보고 놀라는 눈빛을 했어요." 키도 크고 눈도 파란 남자. 게다가 거구였으니.
어쨌든, 불란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휘적였다. 2∼3주 어슬렁 다니다 천만다행, 처음으로 불어를 아는 사람을 만났다. "서울 불란서문화원에서 영화를 담당하던 박건섭씨였어요. 그때 한달 반 정도 있으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한국 문화를 만났어요."
제주도? 물론 제주도 여정은 있었지만 또 다른 인연이 엮어줬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禪)화가인 수안스님의 서울 전시회에서 스님이 제주도 목석원을 꼭 찾아보라고 권유한 것. "목석원 정원이 정말 맘에 들었어요. 저 역시 도시에 사는 사람이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연에 가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자연에 가는 게 인간한테 필요한 덕목이지요. 처음 만난 목석원 주인 백운철 원장과는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밤새 그의 사진을 골랐어요."
# 화산섬 제주도는 냄새부터가 달라
"저는 바다를 좋아해요. 한국에서 제주도는 유일한 화산섬인데 냄새가 육지에서의 냄새와 전혀 달라 독특해요. 다들 비행기 타고 빨리빨리 오는데 우린 바다를 좋아해서 배 타고 왔지요." 일상에서 벗어나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 사진가. 최초의 한불합작 영화 '이재수의 난'때는 아예 제주도에서 2개월을 살기도 했다.
"이재수의 난은 1901년 실제 일어난 천주교인과 제주 주민들 간의 충돌 사건을 다뤘어요. 농민봉기를 주제한 이 사건을 보면서 이 섬의 아주 강한 정신문화를 느낄 수가 있었어요. 대륙에 비해 강한 정신같은 것이. 가톨릭이 처음 들어가면서 마찰하고 부딪쳤어요. 지금은 불란서 시골의 성당보다 한국 성당이 더 많아졌어요."
그가 찍은 스틸 사진집은 그 때 그 때의 영화의 한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 포착하지 못하는 장면들이 나오기도 한다.
사진작업은 10대 때인 1950년대부터. 직업적인 사진작업은 1968년부터다. 40년 넘은 셈. "젊었을 때는 사진으로만 살 수가 없었어요. 빵도 벌어야 했지요. 하지만 월급쟁이로 복종하며 살 수가 없어서 독립적인 사진가를 했어요." 그에게 사진이란 그냥 삶의 일부분이다. 어려서부터 카메라를 만지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사진가라면 안타까운 선의 미학, 그에게 한국적인 스카이라인이 잘려지는 것은 안타깝다.
"사진을 찍을 때 보면, 자연은 곡선이고 조화로운데 도시 안에서 찍을 때는 라인이 전부 공격적인 라인이 됩니다. 라인이 잘라지는 거예요. 경복궁은 역사적인 궁인데도 라인이 이렇게 잘려지는 거예요. 인간이 건조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우리는 자연과 잘 조화롭고자 하지만 도시라는 곳은 시대에 상관없이 전부 다 라인이 공격적이고 직선이고 수직적이 됩니다. 물론 지금 시대에 저도 도시에 살고 그러지요. 하지만 초현대식 도시엔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의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한국의 유물을 많이 파괴시켰잖아요. 파리 중심가 건축을 보면 굉장히 조화롭습니다. 내가 보기엔 서울은 아주 아름답지 않습니다. 저도 편안하지 않습니다."
# 도시의 라인은 공격적이고 직선이고 수직적
그렇다면, 그의 렌즈에 비친 제주도는 어떤가? "물론 처음 왔을 때부터 제주도를 지금 보자면 호텔도 그리 많지 않았는데 너무나 달라졌어요. 내가 너무 늙었는지 모르지만 신도시 분위기로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요. 건축들은 정말 맘에 안들어요. 저는 옛날 집이 맘에 들었어요. 지금 제주도는 관광섬이 됐어요. 대륙에 있는 한국 사람들이 올 때 바캉스를 하러 오는데, 저는 관광객으로 오고 싶진 않아요. 불란서도 마찬가지로 해안가 남불을 보면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아름답지 않아요. 제주도 바다를 어제 봤는데 낚시하는 사람도 있고, 낚시배도 있고 그런데 지금은 불란서 해안가엔 낚시객들을 볼 수 없어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두 가지가 사라지고 있지요. 농민하고 유목민들이 없어져가고 있어요. 전 농민을 좋아하고, 스스로 유목민이 되고 싶은 사람입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우도, 추자도, 마라도, 차귀도 등 섬을 둘러봤다. 말의 한가로운 풍경, 참 인상적이었다. 그에게 제주도다운 것은 어떤 것인가? 제주돌문화공원은 제주다운 신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딴 사람들은 다 돈벌러가는데 유물을 모은 것은 훌륭한 일이고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요. 제주도는 돌의 섬입니다. 돌문화공원은 잘만 가꾸면 신화가 될 수 있겠지요. 이스트 섬의 거대한 석상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지만 유명하잖아요."
제주도, 예전엔 신혼여행은 다 제주도로 오면서 이상향이었는데. 이제는 보편적인 관광지가 됐다. "육지 어떤 사람들은 집도 사고 그러겠지요. 불란서 남부 해안가도 정말 아름다웠는데, 사람들이 자꾸 와서 집도 짓고 그러다보니 전부 깨졌어요. 제주도도 건축에서 보호를 해야 할 거예요. 변화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 부인 끌레어, 사람을 테마로 찍어
그의 아내 끌레어 역시 헝가리 태생 예술가. 그녀는 사람을 찍는다. 그녀에게도 질문을 던져보자. 타피스트리(tapestry·다채로운 선염색사로 그림을 넣은 직물) 작가인 그녀, 왜 사람인가? 간단명료 답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는 불란서에 오랫동안 사는 한국 예술가들을 인터뷰해서 기록한다. "불란서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왜 자기 나라를 떠나서 사는지 궁금했어요. 사람을 찍고 사진 뒤에 내 물음에 답한 그 사람의 말을 붙입니다. 질문 하나. 불란서에 살면서 무엇이 부족했나? 질문 둘. 불란서에 살면서 한국의 무엇이 그리운가? 나중에는 한국에 돌아갔을 때는 불란서에 대한 향수, 그리운 것이 무엇이며, 무엇이 한국을 떠나게 했는가? 어떻게 자기 나라를 떠나서 살 수 있는가? 같은 것을 묻죠. 또 역으로, 한국에 온 불란서 사람들을 찍어서 무엇이 한국에서 살게 했는가를 묻는 거예요."
이민 가는 경우, 어려웠던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외국인들은 체류증이 필요하고, 불편한 게 많을 것이다. 끌레어는 그런 것에 호기심이 간다. 과연 이동해 간 그 나라의 생활에서 무엇이 자신을 다르게 만들었는가를 찾는 작업이다.
"네 커트를 빨리 찍어요. 거기서 사람의 움직임이 다 보이죠. 그 사람에게 왜 직접 쓰게 하느냐 하면 글을 쓸 때는 몰입하면서 쓰기 때문에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역할이 더 깊게 가는 것입니다. 한·불 각각 13명씩을 인터뷰 할 예정.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 13명은 이미 됐다. 한국에 사는 불란서 사람은 6명을 인터뷰 했단다. 다 이뤄지면 전시회도 열 생각이다.
# 한국의 한지에 사진작업 하고 싶어
레오나르 드 쎌바의 고향도 바닷가다. 프랑스의 서쪽 끝, 비스케이 만과 영국 해협 사이에 솟아나온 삼각형의 반도. 켈트족 문화가 살아있는 브르따뉴. 유럽의 연결 라인에 있는 곳이다. 소금이 좋단다. 그가 지도를 꺼내든다.
"제주바다와 큰 차이는 태양이 뜨고 지는 게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거예요. 제주에선 해를 보러 동쪽 성산포 바다로 가는 것을 보고 신기했어요. 브르따뉴에선 바다에서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어요. 해가 지는 것만 봤지요."
어린 시절 부모는 굴양식을 했다. 자식들이 많아지면서 아버지는 공무원의 길을 갔다. 도시로 이주. 그는 3남5녀 가운데 셋째. 형제들도 화가, 민속학자, 건축학자로 활약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지금이 좋다는 레오나르 드 쎌바. "80년대는 일로서 찍은 사진들이고, 지금은 내가 찍고 싶은 사진들을 자유롭게 찍어요.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진은 팔리지도 않고 서랍에 박혀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의 시도일 뿐이지요." 자신의 아틀리에서 한국의 멋진 종이 한지에 프린트하고 싶단다. 완전 한지에 작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지만 꼭 그러고 싶다. 그는 지금이 행복하다. 그의 삶에 함께 한 친구들의 나라, 오래된 한국병, 제주도병을 사랑한다. 그의 이 연정은 어디까지일까. 그에게 이미 제주도는 낯선 길이 아니다. 깊어가는 친구의 길이다. 카메라 메고 제주도의 동으로, 서로 홀로 돌고 돌아도 익숙한 길이다. 오름을 돌아온 낯선 바람결 어디가 미치도록 좋은지 팔을 벌린다. 아이처럼.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