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역사와 함께하는 제주의 학교 4)온평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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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산읍 소재 온평초 6학년 어린이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활기차게 달리고 있다. 장공남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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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평초가 해녀들의 공덕을 기려 지난 1961년 학교에 세운 '해녀공로비'. 장공남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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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산읍 온평리 해녀들이 조업을 앞둬 미역을 손에 들고 '학교 바당'에서 미역을 캐 학교 운영비로 보탠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장공남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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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산읍 소재 온평초 6학년 어린이들이 학교숲 '열운이 초록동산'에서 해맑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1946년 12월 개교한 온평초는 1950년대 '학교 바당'(바당은 바다의 제주어)을 보유해 해녀들이 미역을 캐 학교 운영비를 충당했다. 열운이는 온평리를 지칭했던 말이다. 장공남 기자 | ||
# 온평리의 야학운동
3·1운동 이후 1930년대 중반까지 야학운동은 민중 교육 운동으로 전개됐다. 제주도 야학 운동은 제주 청년들이 계몽 운동 차원에서 개설돼 운영됐다.
일제 강점기 온평리에는 야학소가 운영돼 마을 청년들이 야학 교사로 나서 민족정신과 한글을 가르쳤다.
특히 온평리 야학소에서는 연극 공연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계몽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을지인 「온평리지」에 따르면 마을 청년들은 「겨울바다」라는 각본을 써서 연극을 공연했다. 이 연극 공연은 연례행사가 돼 청년들은 연극 공연과 야학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계몽했다.
온평초등학교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 12월 개교했다. 학교 부지는 독지가(고은국 등)들의 희사로 마련됐다. 학교 건물은 온평리 출신 재일동포 이두후 선생과 기성회 간부들의 희사금과 모금으로 건립됐다.
이로써 동남초(1923년 개교한 성산공립보통학교)에 다니던 마을 어린이들은 마을에 들어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다.
# '학교 바당'
삼신인이 평생의 배필을 온평리 바닷가에서 만났다는 전설이 전해질 만큼 온평리의 해안선은 길다. 북쪽의 신양리 바다 경계에서 남쪽의 신산리 바다 경계까지 해안선 길이는 6㎞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넓은 바다가 있었기에 '학교 바당'(바당은 바다의 제주어)이 있었다. 학교 바당이란 학교의 운영비를 충당하는 바다 목장이었다.
마을 주민들이 정성으로 모은 자금으로 1947년 학교 건물을 신축했다. 하지만 1950년 12월 교무실에 불씨를 남겨둔 채 교직원이 외출하는 바람에 교사가 전소됐다.
이 시기를 전후에 학교 바당이 생겨났다. 학교 바당에서 해녀들이 채취한 미역을 팔아 학교 운영비로 사용됐다.
지난 14일 온평리에서 만난 김추옥·현경춘·현옥란씨 등 온평리 해녀들은 학교 바당을 기억하고 있었다. 현옥란씨는 "학교가 불에 타서 학교 지으려고 학교 바당에서 미역을 캤다"며 "반은 학교에 냈고 반은 용돈으로 했다(반으로 나눴다). 윗동네(신양리쪽) 경계는 '서근여', 아랫동네(신산리쪽)는 '애기죽은날'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지금 같으면 소라를 잡았지만 그때는 미역 값이 좋아서 미역을 캤다"며 "당시에는 12세부터 늙은이까지 해녀뿐 아니라 남자들도 나서서 미역을 나르고 말리는 일 을 협력했다"고 밝혔다.
학교 바당에 해당되는 온평이 경계 바다는 이전에는 수산리와 난산리 소유 바다였지만 바다에서 밀려온 송장 처리 문제로 이 마을에서 바다 소유권을 포기해 온평리가 바다를 관리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현인욱·장춘익씨 등 온평리 촌로들은 "(온평리)경계 바다는 원래는 수산과 난산 바다였다"며 "하지만 어선의 난파 등으로 송장이 밀려왔지만 이 마을에서 처리를 하지 않아 온평리에서 관리했다"고 말했다.
온평초는 학교 바당에서 미역을 캐 학교 운영비로 쓰라고 기꺼이 기부한 온평리 해녀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1961년(단기 4294년) 학교에 '해녀공로비'를 세웠다.
이후 학교 운영비가 국고에서 지원되고 미역 값이 하락세로 접어들자 학교 마당이란 이름은 서서히 잊혀 갔다.
# 농촌지역 소규모 학교로
올 2월 졸업한 온평초 제61회 졸업생은 15명이다. 현재까지 총 217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하지만 지난 1951년 제1회 졸업생의 수가 27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학생수 감소가 확연하다. 1972년 2월 제22회 졸업생은 무려 84명이었을 정도로 학생수가 많았다. 하지만 2011학년도 온평초의 전교생 수는 56명에 불과해 저출산과 청년층들의 농촌을 떠나는 이농 여파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3학년은 1명에 그쳐 3학년과 4학년은 합반을 해 수업을 하고 있다.
정성충 온령리 이장(57)은 "1960년대 (온평초)전교생수는 350여명이었다. 학생수가 100명 밑으로 내려온 것은 3년전부터다"며 "학생수가 줄어드니까 운동회도 시들해졌다"고 말했다.
학생수 감소는 학교와 마을의 모두 염려하는 부분이 되어 버렸다.
#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노인교실·서예교실
온평리 마을주민들의 학교 사랑을 학교 바당으로 그치지 않는다. 지난 1993년에는 마을 주민들이 학교 급식소 추진위원회를 꾸려 3120만원의 성금을 모금해 학교 급식 조리실을 신축, 학교에 기부채납하기에 이르렀다. 학교급식시설은 2009년 개축됐다.
이 같은 마을 주민들의 학교에 대한 정성에 온평초는 지역 사회의 구성원을 위한 교육에 나섰다.
올해부터 노인교실과 서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온평리 인구는 1398명(497세대)인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68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대로 추정되고 있다.
온평초는 지난 3일부터 온평리경로당에서 기공체조 프로그램을 마련해 매주 2회 노인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나이 많은 해녀들이 많은 마을임을 고려해 물때에 맞춰 프로그램 일정을 조절하고 있다. 노인교실은 오후 7시부터 1시간 동안 운영된다. 노인교실은 참여하는 노인들의 호응도 좋은 편이라고 온평초는 밝혔다.
온평초는 매주 목요일 오후 7~8시 학교 도서관인 '열운이도서관'에서 학부모를 대상으로 어머니 서예교실을 운영된다. 목요일은 서예교실과 함께 학교 도서관은 밤 10시까지 야간 개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학교 특색 활동을 '묵향 속의 서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5·6학년 방과후학교 서예교실과 어머니 서예교실은 김동윤 온평초 교장이 직접 강사로 나서 지도하고 있다.
김동윤 온평초 교장은 "학교와 지역사회와 함께하기 위해 도서관을 야간 개방해 어머니 서예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며 "교육의 시작은 관심이며 교육의 끝은 사랑이다. 인성 교육을 중시하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 아름다운 학교숲, 아름다운 학교
제주시에서 동쪽 일주도로를 따라 51㎞, 서귀포에서 39㎞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농산어촌 학교인 온평초는 아름다운 학교 숲 '열운이 초록동산'을 품고 있다.
초록동산은 2006년 학교숲 시범학교로 지정돼 연못, 수련, 민물고기, 소나무, 꽃 등을 갖춰 자연 생태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와 함께 온평초는 1·2학년을 대상으로 초등 돌봄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김 교장은 "교사가 변해야 한다"며 "교사가 변하면 아이들이 변한다"며 학교를 변화시키는 힘은 교사에게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해맑은 웃음을 가진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이 학교 운동장과 초록동산을 뛰어 노는 풍경을 '해녀공로비'가 교정 한쪽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글·사진=장공남 기자 gongnam@je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