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잠녀] 4부 '잠녀,지키다' <180>어촌체험관 변신중 '사계어촌계'
70명 잠녀 중 50대 20명…바다 넘어 관광연계 사업 수익 확대 
▲ 사계리 잠녀
고됐던 기억은 여전하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 자부심도 커
"아이구 아야, 이 할망신디 무신 들을 말이 이성 영 헴시니. 난 말다"(이 할머니한테 무슨 들을 말이 있다고 이렇게 하느냐, 난 싫다) 매번 듣다보니 이제는 이런 말이 "왜 이렇게 늦게 왔냐. 어쨌든 잘 왔다"하는 소리로 들린다. 며칠째 바다에서 밀려온 해무로 인적이 뜸한 사계항 마라도 잠수함 선착장에서 '당번'할머니들을 만났다.톳이며 천초 작업은 일찌감치 끝났고 해수 온도 상승으로 예년에 비해 한 달 정도 빨라진 소라 금채기에 잠녀 할머니들의 고무옷은 볕에 잘 말라있다. 아직 물기가 여전한 것은 잠녀 체험용 뿐이다. 해녀의 집과 용머리 좌판 외에도 요즘은 체험 도우미로 잠녀 할머니들의 하루가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 관광 효과 '사람 수입' 톡톡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사계어촌계(어촌계장 김봉익)는 지난해 2월 어촌체험마을로 바다를 열고, 이제는 '바다 수입'보다 '사람 수입'이 훨씬 나아졌다.
처음 어촌체험관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무슨 소리냐며 반발하던 잠녀들은 이제 관광 연계 사업에 보다 열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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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일 사계어촌계가 운영하는 어촌체험관에서 여중생들이 잠녀 체험을 하고 있다. | ||
유명자 할머니(63)는 사람이 뜸한 틈을 타 아이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애써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의 험한 손길에 찢어진 고무옷 수선이다.
사계어촌계에는 70명의 잠녀가 있다. 50대가 20명이나 되니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이날 해녀의 집 당번 할머니 중 '막내'인 탓에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막내라고는 하지만 유 할머니는 물질 경력 46년의 베테랑이다.
"그 때야 뭐 공부를 시켜주나 할 일이 있나 그냥 다 물질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며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몸 곰으레 왔다(수영하러 왔다) 그냥 했다"고 말했다.
물적삼에 속곳만 입고 할 때는 부끄럽기도 하고 다소 천하게 보는 분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누구한테 어렵다 손 한번 안 벌려 봤다. 그것만큼은 떳떳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결혼을 하기 전 18~19살 무렵 3차례 전라도 소양도로 바깥 물질을 갔었다. 그 때는 '보재기'란 말이 죽도록 싫었다고 했다.
"그때야 뭐 가방이 있나 뭐가 있나. 그냥 짐을 보따리를 싸고 다니는 것을 보고 그 곳 사람들이 '보재기' '보재기' 불렀다"며 "돈을 벌겠다고 작정하고 간 길에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 힘겨웠던 작업…할 수 있는 일 자부심
잠수함에서 내린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겨우 한숨을 돌릴 참, 해녀의 집 원탁 식탁이 갑자기 '불턱'으로 바뀌었다. 모여 앉아 옛날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한 바가지 타박도 쏟아 붓는다. "뭐 다 아는 것추룩, 불턱에 앉아보기는 해서"(뭐 아는 것처럼 묻는지, 불턱에 앉아보기는 했냐)
고옥동 할머니(74), 강신자 할머니(71), 이자와 할머니(74), 양옥순 할머니(70)까지 경쟁하듯 지난 일들을 꺼내놓는다.
먼 바다까지 배로 나가 물질을 하다 보니 60대 중반을 넘기면 바다에 나가는 일 자체가 버겁다. 열 다섯발 이상 물을 차야 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래도 공동어장 내 형제섬을 수심이 깊지 않아 작업을 할만하다.
고무옷은 아예 대화에 낄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쑥 거슬러간다. 광목으로 물적삼이며 수건을 만들고 추위에 떨어가며 작업을 한 얘기에 이어 오래 된 상처까지 보여준다.
경상도 구룡포에서 '도박'작업을 하던 일이며, 강원도 고성군 대진까지 가서 언 바다에 몸을 던져 스크류에 감긴 닻줄을 잘라내던 위험천만한 순간 등등. 아직도 깊고 흉하게 남아있는 상처 자국에서 그 때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때야 병원이 어디 있나, 약도 없어서 피가 뚝뚝 떨어져도 그냥 처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주게".
당시 기억이 떠올랐는지 할머니들이 부르르 몸을 떤다. 화제를 돌리느라 할머니들이 집에서 챙겨온 점심밥 한덩이에, 자판기 것보다 '맛있는' 믹스 커피를 얻어 마신다.
졸지에 종업원 행세를 하며 좌판에도 끼어앉는다. 다시 묻는다. "물질하는 것 어떠셨어요?" 바다에서 일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할머니들은 '박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물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할머니 한 분이 슬쩍 말을 보탠다. "난 다시 태어나도 물질을 하크라. 일해야지. 뭐 배운 것도 이것 뿐이주 마는 자유롭지 일하는 만큼 돈도 벌지. 이만한 일이 어디 이서"
# 자부심에 경제적 뒷받침 보태야
몸만 허락한다면 언제고 바다에 달려갈 기세다. 그럴만도 하다. 할머니들의 머리맡엔 적어도 5가지 이상 약이 놓여있다. 뇌선에 신경안정제, 두통약 등등. 이제 일흔이 넘은 할머니들이 30살 이후부터 옆에 두지 않으면 불안할 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챙겼던 약들이다.
"무사 먹느냐고? 하도 여기 저기 아프다고 하니까 누가 한 번 머거보렌. 머그난 이거 아픈디도 하나도 없고 물질도 확확해지고…. 경헌디 누가 안 머그크라게. 경 먹다 보난 지금까지도 머거점서. 이것도 중독되는 거노랜…"(왜 먹느냐고? 여기저기 많이 아프니까 누가 먹어보라고 해서 먹었는데 아픈 것도 사라지고 물질도 더 잘하게 되고 해서. 그런데 누가 안 먹겠냐. 그러니까 지금까지도 먹게 되고. 이것도 중독되는 것 같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그렇다고 바다를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들 옆으로 어촌체험관 손질이 한참이다. 최근 공중파 연예프로그램이며 농·어촌 소개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의 걸음이 늘어난 때문이다.
올해 첫 소라 작업은 예년에 비해 두달 쯤 늦은 10월 말로 예상하고 있다. 그 때까지 관광 소득이 할머니들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 곳 역시 톳은 풍작이다. 지난해에 비해 2만㎏정도 수확량이 늘었다. 전국에서 홍해삼 사업이 제일 잘된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사계리는 올해 마을 경영평가에서 1위를 했다. 홍해삼 농사를 잘 지었던 때문이다. 강원도 고성에서부터 부산, 충남 보흥 등 각지에서 홍해삼 성공 비결을 얻기 위해 사계리를 찾았다.
김봉익 어촌계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한다.
어촌관광사업 역시 탄력을 받고 있다. 잠녀 할머니들이 직접 체험 관광객들과 함께 물에 들어가 물건을 찾아주는 일련의 과정이 입소문을 타면서 역시 당번이 생겼다.
빈 소라껍데기를 이용한 관광상품 개발도 진행 중이다.
김 어촌계장은 "이렇게 변화를 주는 것 역시 잠녀 할머니들을 지키는 방편"이라며 "자부심을 물론이고 경제적 뒷받침이 돼야 잠녀를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김대생 교육체육부장·고미 문화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