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역사와 함께하는 제주의 학교 6)구좌중앙초등학교
![]() | ||
| ▲ 구좌읍 월정리 100번지에 위치한 구좌중앙초는 일제 강점기 구좌읍 월정리 주민들과 행원리 주민들의 희사금을 모아 설립됐다. 제주형 자율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구좌중앙초 2학년 학생들이 제민일보를 이용해 신문활용교육을 하고 있다. 장공남 기자 | ||
![]() | ||
| ▲ 제3기 제주형 자율학교로 지정돼 운영하고 있는 구좌중앙초 1학년 학생들이 담임교사와 전문강사와 함께 활동수학을 하고 있다. 장공남 기자 | ||
![]() | ||
| ▲ 지난 1924년 설립 인가돼 87년의 학교 역사를 자랑하는 구좌중앙초 교무실 인근에 마련된 학교 역사관에서 김병택 교장과 학생들이 졸업생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장공남 기자 | ||
![]() | ||
| ▲ 구좌읍 행원리와 월정리 주민들의 희사한 돈을 설립된 구좌중앙초에는 1920년대 100원 이상을 희사한 사람을 대상으로 학교에 공적비를 세워 희사자의 뜻을 기리고 있다. 장공남 기자 | ||
# 개량서당에서 보통학교로
구좌중앙초의 전신인 사립중앙보통학교는 월정리의 영신사숙과 행원리의 보명사숙의 합병돼 월정리 100번지에 설립됐다. 사립중앙보통학교는 1923년 학교 후원회가 결성돼 마을주민들이 부지를 내놓고 설립기금을 모금해 1924년 5월 20일 설립인가 됐다.
학교 후원회는 학교가 설립되자 학교 유지회로 명칭을 바꿔 1945년까지 학교를 후원했다.
현재 구좌중앙초 야외학습장에는 공적비가 세워져 학교 설립을 위해 헌신한 마을사람들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공적비를 통해 보면 학교 설립에는 김성율, 박성일, 신원식(이상 월정리), 홍순중(행원리) 등의 공적이 컸다. 이와 함께 당시 100원 이상을 희사한 사람에게는 공적비를 세워 그 뜻을 기렸던 것으로 보인다.
1929년 3월 9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사립중앙보통학교는 4년전에 이민의 열성으로 1만원을 수집해 재단법인을 완성하고 이래 많은 영재를 내었는바 4년제임을 이민일반이 유감으로 생각해 학년연장운동을 일으킨다는 말을 듣고 자진해 100원씩 기부한 사람이있었다는데 한 사람은 여자이고 또 한사람은 리의 하인이더라.…' . 기사에 이름이 거론된 고명서와 이원백은 각각 구좌중앙초에 세워진 기념비에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성원에 힘입어 사립중앙보통학교는 1930년 6년제로 승격됐다.
# 마을간 학교 설립 경쟁
구좌중앙초의 개교 시점은 학교 측과 총동창회 측이 서로 다르다.
구좌중앙초의 학교 연혁과 제주도교육청에서 펴낸 「제주교육사」(1999년) 등 대부분의 교육사를 다룬 책자에서는 1923년 9월 1일 설립 인가돼 1924년 5월 10일로 개교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구좌중앙초 총동창회가 지난 2010년 6월에 펴낸 「구좌중앙교육 85년사」는 「제주도편람」(1930년)과 1943년도 학교 '통신표'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1924년 5월 20일 설립 인가돼 10월 4일 개교했다고 바로잡고 있다.
구좌중앙초의 개교기념일이 이처럼 다른 것은 이웃마을 김녕리에 설립된 구좌공립보통학교(현 김녕초등학교)와의 신경전에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제강점기 1면 1교 설립정책의 시행으로 구좌공립보통학교가 구좌중앙초 보다 앞선 1923년 9월 설립됐다.
「구좌중앙교육 85년사」를 집필한 박서동씨(구좌중앙초 31회)는 "김녕과 월정·행원이 학교 설립 경쟁을 벌였다"며 "월정·행원은 교사를 마련하고도 설립인가를 받지 못해 이듬해(1924년) 사립보통학교로 개교해야 했다"고 말했다.
박서동씨는 "85년사를 만들면서 통신표, 제주도편람 등을 참고해 개교기념일을 밝혀 바로잡았다"며 "학교 역사에 대한 명확한 사실 규명이 필요하다. 그래야 제주교육의 역사가 바로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택 구좌중앙초 교장은 "개교기념일이 정확하게 밝혀지면 개교기념일을 바꿔야 할 것"이라며 "학교 설립에서 김녕리와 자꾸 알력이 생겨 개교도 (구좌중앙초가) 김녕보다 빨리 하려고 해서 당시 (개교기념일을)그렇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인 1946년 구좌중앙공립국민학교로 명칭이 변경됐으며 이후 구좌중앙국민학교 개칭(1950년), 구좌중앙초등학교로 개칭(1996년)하기에 이른다.
# 유배인 도착지에서 풍력단지로
구좌읍 행원리의 옛 이름은 '어등개'(어등포)다. 어등포는 조선조 제15대 임금이었던 광해군이 왕위를 인조에서 내준 뒤 유배형에 처해진 후 긴 유배생활을 하다 마지막 유배지로 찾은 제주의 도착지이다.
당시 제주의 관문은 조천포구가 화북포구였지만 제주에 유배 왔던 유일한 임금이었던 광해군은 날씨 사정으로 어등포를 통해 제주에 도착했다.
행원포구에서 보면 행원리 풍력발전단지를 훤하게 보인다.
행원리는 풍력발전단지와 함께 한국전력공사(KEPCO) 스마트그리드체험관이 들어서는 등 저탄소녹색성장 시대의 중심 마을로 떠오르고 있다.
이와 함께 1999년 동부육상양식단지가 조성돼 현재 29개 업체가 광어(넙치)를 양식하고 있어 제주의 자연 환경을 활용한 수산물 양식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행원리의 이웃마을인 월정리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거문오름용암동굴계 중 당처물동굴을 품고 있다.
당처물동굴은 동굴 내부에 다양한 형태의 종유석, 석순, 석화 등 2차 동굴 생성물이 잘 보존돼 내부 경관이 빼어나다는 평가다.
월정리는 1916년 제주도 최초로 월정리 어업조합이 설립될 정도로 멸치어장 등 어업이 성업을 이뤘다.
# 제주형 자율학교
올해 2월 구좌중앙초는 87회 졸업생 12명을 배출, 총 4243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구좌중앙초의 총 학생수는 63명(월정리 11명·행원리 52명)이다.
학생수 추이를 보면 1933년부터 1990년까지 학생수는 220~567명이 달했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학생수가 감소 추세가 지속돼 2005년부터는 학생수 100명을 밑돌고 있다.
구좌중앙초는 2009년 제주형 자율학교로 지정돼 운영되고 있다. 신문활용교육(NIE), 활동수학, 재능음악(하모니카연주), 재능미술(그리기), 생활영어 등 특성화과목을 자율적으로 편성·운영해 창의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농어촌 소규모 학교의 새로운 발전 방안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있다고 구좌중앙초는 평가하고 있다.
신문활용교육은 담임교사와 지도강사가 함께 참여해 제민일보 등 지역신문을 활용해 신문읽기 지도, 글쓰기 능력 향상 및 사고력 신장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주당 1시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생활영어, 재능음악, 재능미술, 활동수학 등도 전문강사와 담임교사가 함께 교육에 참여하는 '팀티칭'으로 교육을 진행해 학급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와 함께 학교 특색 교육활동으로 이웃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를 마련, 김녕리 소재 소망요양원을 방문해 자원봉사 활동과 공연을 펼치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 그리고 나눔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는 참된 봉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 '주경야독' 도서관
구좌중앙초는 매주 목요일 오후 5~8시 학교도서관을 학부모와 자녀가 함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종이접기, 풍선아트, 퀼트, 생활용품 만들기 등의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해 지역사회와 함께 하고 있다.
또 매주 목요일 오전에는 학부모들이 참여하는 책 읽어주기 활동인 책 먹는 부모회를 운영해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김병택 교장은 "앞으로 학교의 역할은 지역사회의 센터 역할을 해야 한다"며 "서울 등에 살았던 인재를 제주로 불어와 고향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센터 역할을 학교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좌중앙초 교무실 인근에는 월정리와 행원리의 교육의 역사를 간직한 학교 역사관이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