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이 만난 '사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

 슬픔 뒤의 미소라했다. 슬픔마저 아름다운 자연이 보듬어 주는 것 같다했다. 화산섬 제주도, 그의 선조들의 섬 모리셔스와 많이 닮은 아픈 역사의 땅. 하여 서글픔 뒤의 기쁨 한조각, 희망을 노래하라했다. 그가 왔다. 또다시. 날다가 아름다운 곳에 앉은 새처럼. 미지의 대지를 찾는 프랑스 문학의 살아있는 신화. 그의 행로 안에 제주섬이 있었다. 2008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르 클레지오. 그다. 타는 사막을 향하던 태양과 사막의 작가. 그의 시선이 제주섬을 향했다. 인터뷰를 약속한 아침, 장마의 전주곡인 안개비가 자옥하였고, 그의 표현대로 '몽환적인 섬', 제주바다를 향한 거장의 눈길은 잠시 우수에 빠진 듯 했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도 그는 미소했고, 겸손했고, 제주에 한편의 시를 남겼고, 제주를 떠나는 날 아침엔 홀로 산호초 고운 우도를 다녀왔다. 

 # 소설 「혁명」은 프랑스판 '뿌리'…본질 찾기

 1940년 프랑스 니스 출생. 영국 브리스틀 대학과 프랑스 니스 대학. 조상들 대대로 모리셔스섬에 정착했다. 1963년 스물셋에 첫 작품 「조서」로 프랑스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 「열병」 「홍수」 「물질적 법열」 「황금 물고기」, 40번째 소설 「혁명」 등 수많은 화제작을 발표. 1967년부터 멕시코와 파나마 등지에 체류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존재를 추구한다. 시적 산문의 정수인 「성스러운 세 도시」, 모로코인 아내와 함께한 사막 기행문 「하늘빛 사람들」이 있다. 「사막」으로 폴 모랑 문학대상을 수상.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는 자발적 유랑자처럼 살며 글을 쓴다. 2001년을 시작으로 한국 문단과 교류하고 있다. 2007년 이화여대 초빙교수 역임. 3년전 '지문'다큐 촬영차 제주를 방문하는 등 이번 방문이 4번째. 제주도명예도민. 유럽 최대 잡지 「GEO」창간 30주년 기념 특별호에 제주기행문을 실어 세계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르 클레지오, 당신의 「혁명」에는 비극의 역사성과 서사의 절묘한 결합이 엿보인다. 거장의 답변은 명쾌했다. "요리법이 있다면 슬픔 안에 살짝 보이는 미소, 미소 안에 살짝 보이는 슬픔, 그런 것의 조화라고 봅니다. 자기만 겪어왔던 일들과 그리고 상상의 나라 조합만 있으면 좋은 하모니가 되지 않을까요. 자기 경험에 역사와 환상의 세계가 합치면." 이 거장에게 문학은 사는 것이리. '쓴다'는 것, 그것은 그에겐 '집착'이라 했다. 거장의 탄생은 집착인가. "아침에 글 쓰고, 점심에 글 쓰고, 자기 전에 글쓰고, 자면서까지 글쓰는 저에겐 집착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집착이 안좋은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집착으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국적은 모리셔스이며, 감성적으로 모리셔스 주민이다". 스스로 제3세계인이라는 르 클레지오. 그의 대표작 「혁명」은 5대에 걸친, 프랑스판 '뿌리'로 비견되는 가장 솔직한 자전소설. 고모의 편지를 통해 자신과 모리셔스의 뿌리를 알게된 과정이 그려진다. 그에게 글쓰기란 "하나의 모험이며, 나와의 다른 것을 발견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결국 그의 작품은 근원, 본질적인 것을 찾는 여정이 아닐까. 그의 답. "작가가, 시인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다는 모르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것, 본질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한국말로 본질이라면 불어로는 '가슴', '심장' 이죠." 그가 소리내 단어를 한마디씩 따라한다. 심. 장!.

 # 만화를 잘그리던 소년…어려서부터 소설 써

 천혜의 작가였다. 미세한 감수성의 소년은 만화를 잘 그렸고, 이미 어린 소설가였다. 자신이 쓴 소설을 친척 동생들이나 형들, 그의 반 친구들에게도 보여주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이 소설보다 만화를 더 좋아해서 만화를 많이 그렸어요. 만화가가 될까도 했었지요. 그때 만화의 주인공은 항상 '북(BOOK)'이란 이름을 가진 선생님이었어요." 그가 웃었다. 추억처럼. 말 수 적은 소년에게 만화는 아마 소통의 수단이었으리. 그래선지 데생은 그의 소설집 군데군데서 발견된다. 그의 「어린 여행자 몽도」가 떠오른다. 소설은 시적이며, 상상력이 넘치고 몽환적이다. 그의 첫 여행과 글쓰기는 여덟살 때. 2차 세계대전 시기 의사인 아버지를 만나러 나이지리아로 가던 배 위에서였다.

 통과제의처럼, 문학 신열에 시달리던 소년 르 클레지오. 밤이면 몰래 창문을 통해 뛰쳐나가 밤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던. 그에게 삶은 곧 문학이었다. "글쓰기는 단지 책상 위에 앉아 있는 일만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는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세상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람들은 그를 '유목작가'라 부른다. 그래설까. 그의 소설엔 길 위의 사색이 자주 묘사된다. "여행을 좋아하고, 길을 걸을 때 그러한 풍경들이 소설에 들어가지요."

 그는 70년대 초 4년간 파나마 앙베라 인디언과 함께 살기도 했다. 늘 새로운 도전인 그의 소설은 인간과 자연의 화해, 현대 도시문명의 외피를 꿰뚫는다. 5대륙을 넘나드는 수많은 여행을 통해 작품의 영감을 길어올리는 작가. 그는 이미 제주의 장엄한 숲과 한라산, 자연에 매혹 당해 있었다.

 # 4·3기억 간직…조금 더 행복 위해 나아가야

 "제주도 역시 모리셔스 섬처럼 많은 요소들로부터 침공과 파괴를 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와 대륙의 문학과 세계 평화 사이에 관계를 이룰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저희 섬사람들입니다." 그는 제주의 모리셔스처럼 어두운 이야기를 배경으로 해서 제주도민들이 많이 쓴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같은.

 "이제는 젊은이들이 좀 더 자연보존, 미래에 대해서 쓰셨으면 합니다." 그에게 물었고, 그가 내게 물었다. 4·3에 대한 시도 쓰시죠? 그렇다고 했다. "4·3이 일어나고 화해의 시간이 오면서 평화에 대한 글이 더 많으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슬픔 뒤에 미소가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미소를 띄울 수 있는 평화의 글을 더 많은 분들이 썼으면 합니다. 슬픔이 오면 행복이 오는 것이니까 슬픔에 빠져서 계속 슬픔만 생각하는 것 보다는. 그것은 이미 많이 있었으니까. 그 기억은 고이 간직하면서 조금 더 행복을 위해서 나아가면 어떨까 합니다."

 제주가 겪고 있는 깊은 고민인 개발과 보존의 갈등에 대해 작가로서의 그는 어떤 입장일까. 많이 궁금했다. 그는 특히 4차례 방문 동안 제주도의 변화가 눈에 띄게 드러났다고 봤다. "제주도를 방문할 때마다 제주도가 자꾸 더 모던하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길이 하나하나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선지 제주도에 올 때마다 자연보호 단체가 조금씩 더 생기는 것 같구요. 앞으로 제주도가 더 자연을 지키는데 신경을 쓰셨으면 합니다." 짧았으나 조심스런 작가의 메시지다.

 # 할머니와의 경험 통해 제3세계 여성 주인공

 지배적인 문명너머 또 그 아래서 인간을 탐사하는 작가인 그의 소설엔 제3세계 여인들이 종종 등장한다. 어둡지만 아름다움과 희망을 놓치 않는 「황금물고기」의 여성은 아프리카 여성, 서울에서 쓴 「허기의 간주곡」은 어머니의 초상이다. 그의 소설 속 빛나는 색채의 여성들에게서 제주4·3을 겪은 제주 할머니의 힘이 느껴졌다고 하자 그도 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렸다.

 "저도 전쟁의 시간을 할머니와 형과 보냈지요. 할머니는 그랬죠. 과일과 야채의 껍질만 드시곤 하셨어요. 과일 안의 즙과 알맹이를 남겨서 좋은 것만 저희에게 주셨답니다. 그런 위대한 여성의 힘을 저희에게 남겨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독일군이 쳐들어 왔을 때는 저희들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산에 숨겨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런 할머니에게서 강한 여성의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할머니와의 경험을 통해서 제3세계의 여성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었죠. 거기서 저는 아마도 인생에서 끝까지 자신의 아이들을 책임지고 싶어하는 강력함과 여자의 위대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의사셨기 때문에 아프리카 쪽에 사셨지요. 때문에 저희들 곁에 없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계셨지만, 할머니께서 모든 것을 이끌고 계셨습니다."

 # 제주말 학교 교육 필요…해녀, 글로 남겨야

 '엇어지는'(사라지는) 제주어에 대한 그의 생각까지 듣기로 했다. "물론 매우 안타까운 일이죠. 프랑스 니스에도 표준어로 공부를 하지만 '닛사'(니스어, 니스에서 쓰는 지역말)를 보존하기 위해서 학교마다 하루에 한시간씩 수업을 합니다. 제주에서도 제주어를 보존하기 위해 표준어를 배우되 제주어가 편하도록 하루 한시간만이라도 배울수 있게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해녀는 고기잡이의 프롤레타리아다…그들을 지탱하는 것은 보람, 즉 희생의 정신"이라는 르 클레지오. 해녀란 직분은 지금처럼 모던한 세상에서 보전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절감한다. "해녀들에 대한 기억을 글로 남기고, 시로 남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모리셔스 사람들처럼 과거를 통해 평화를 지키려는 제주 사람들의 의지를 높이 샀다"는 이 작가는, 젊은이들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모리셔스의 비극 모른과 닮은 성산일출봉에 처음으로 해가 뜨는 것과 같이. 그는 운명보다는 인연을 믿는다. "제주도에는 하늘에서 자연과 인간을 이어주는 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번에 방문에서 제주도가 해외문화교류의 중요한 센터가 되기를 희망했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로 늘 매혹시키는 '침묵의 작가'. "자신한테 매우 솔직해질 때 좋은 글을 쓸 수있다"고 함축했듯, 그 자신 문학과 삶의 화두. "나에게 진실하자." 그는 언젠가 좀 더 제주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내용, 슬픔에서 배어나오는 미소, 기쁨 같은 것에 대해서 짧은 영화로 찍고 싶다했다. 제주칠머리당 영등굿 기능보유자 김윤수 심방의 연물소리에서는 아프리카의 타악기 소리를 연상했다. "많이 걷고 소식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는 이 거장의 문학은 지금도 절정이다.

 그는 중문의 주상절리 산책길에서 파란색 깃털을 가진 새(바다직박구리) 한 마리에서 영감을 떠올리고 시를 썼다. 어쩌면 멸종된 모리셔스의 도도새를 떠올리며 섬의 문화를 증언하고 싶지 않았을까.

 "가끔은 잎사귀가 없는 외로운 나무/파랗고 검은 바닷새/저녁이 되면 색은 있지만/ 해가 떠올 때면 밝은 색을 띤다/여행의 끝에는 검은 바위와 호수가 기다리고 있다/그곳에 비로소 바람의 노래가/ 슬픔을 보듬어 준다/세상 끝에서 온  이 작은 새는 /별과 같이 활기를 가져다 준다"

글·사진 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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