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유산, 역사의 ‘새숨결’ 불어넣다] <1>프롤로그

   
 
  ▲ 물질나가는 잠녀들  
 
제주 대표하는 무형문화유산 확보 통한 '문화경쟁력'강화 필요
사라지나 살아있는 문화 아이템…'우리 것'인정부터 서둘러야

세계는 지금 '문화전쟁'을 치르고 있다. 눈에 보이게 피를 흘리거나 상처를 주고받는 그런 전쟁은 아니지만 그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다. 전쟁터 최전방에 서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기준의 모호성은 그것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나냐에 따라 승패를 갈라놓는다. 누가 더 문화에 애착을 가지고 연구하고 수집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운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잡아야 한다. 이번 기획에서는 11차례에 걸쳐 무형문화유산의 의미와 상징성을 살피고 제주를 대표하는 '무형문화유산' 확보로 문화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집중 점검한다.

# 민족 정체성의 가치

최근 중국이 연변 조선족자치구의 아리랑과 함께 판소리·가야금 등을 자국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이 조선족 아리랑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의 대표목록(이하 세계무형유산)에 올릴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면서 우리나라의 안일한 태도와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주문되고 있다.

하지만 현행 문화재보호법은 이런 움직임에 있어 힘을 실어주기보다 오히려 맥을 못 추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무형유산에 이름을 올리려면 먼저 해당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 '아리랑'은 이런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법 규정 때문이다. 지금까지 문화재로 지정한 아리랑은 '정선아리랑'(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1971년 지정)이 유일하다.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기능보유자를 선정(24조)해야 하고 지정 당시 기준으로 '원형성'을 유지해야 한다. 사실상 무형문화유산을 박제화된 제도 안에서 보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를 문화재로 지정할 경우 무엇을 보존해 전승할 것인지 애매하기 때문에 보유자나 보존단체를 선정하도록 명문화했지만 '아리랑'에 있어서는 그 적용이 모호하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니 우리나라를 알고 있다는 상징으로 자유롭게 불리는 민요인 아리랑의 보유자나 보존단체를 선정하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아리랑'의 움직임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제주 잠녀' 때문이다. 잠녀 역시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아이콘이지만 상대적으로 가치를 인정하는 작업이 더딘 상황이다. 무엇보다 보유자를 지정한다거나 원형성을 유지하는 부분에 있어 아리랑과 같은 고민에 빠져 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위해 한국 대표 무형문화재 목록 작성과 목록 작성 방안에 대한 용역을 실시할 예정이며, 빠르면 오는 가을 국회에서 이를 처리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제주 잠녀·잠녀 문화의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반가우면서도 걱정이 앞서는 부분이기도 하다.

# '무형문화유산' 관심

우리나라는 현재 10건의 세계유산(문화유산 9건·자연유산 1건), 11건의 세계무형유산, 7건의 세계 기록유산을 가지고 있다.

유형문화유산은 선정 기준에 맞게 세계적으로 뛰어난 '가치'와 진성이 있어야 하지만 무형문화유산은 상대적 개념이 아닌 차별화(outstanding)와 독창성(unique)에 무게를 두고 있다.

2001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유네스코의 세계 인류 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으로 지정될 때만 해도 큰 관심을 얻지 못했던 무형문화유산은 1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적인 문화 전쟁 아이템으로 꼽히고 있다. 그만큼 변화도 많았다. '걸작'으로 묶었던 것을 대표목록과 긴급보호목록으로 나눠 대상을 확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 칠머리당영등굿  
 
지난 2009년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대표목록에 포함된 것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 지난해 8월에는 경북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세계유산에 등재됐고, 11월에는 가곡(歌曲)·대목장(大木匠)·매사냥이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올랐다.

여기에 한국과 일본에 비해 무형문화재의 중요성을 다소 늦게 인지한 중국이 나서면서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국가간 관심이 커지면서 치열한 외교전까지 펼쳐지자 유네스코는 세계무형유산 제도가 문화전쟁으로 번지지 않도록 공유국들의 공동 등재를 권유하고 있다. 동·서양을 아울러 11개국이 공동 등재(연속문화·serial nomination)한 '매사냥'은 그 결과물 중 하나다.
심지어 한국과 일본은 한 번에 2건 이상 무형문화유산 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제한 조항까지 만들어졌다. '국가·지역간 균형'이 그 이유다.

기우일지도 모르지만 일련의 과정들 속에서 제주잠녀는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는 국내 전통문화 아이템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

   
 
  ▲ 강릉단오제  
 
# 안에서의 ‘인정’이 중요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 '제주해녀문화 세계화'를 내건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제주잠녀와 잠녀문화의 정체성과 가치 찾기에 나섰다. 아직 시작 단계이지만 해결해야 과제가 많은 상황이다.

문화재청의 한국 대표 무형문화재 목록 작성 과정에 맞춘다고 하더라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서는 매해 3월 31일까지 신청서를 작성해 사무국에 제출해야 한다. 사무국은 신청서를 접수한 후 이에 대한 답신이나 보완 요청서를 그해 6월 30일까지 해당 국가에 발송한다. 사무국이 수정이나 보완 요청을 할 경우 해당 국가는 그해 9월 30일까지 이를 제공해야 한다.

모든 자료를 토대로 사무국은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최종 검토에 착수하며 세계무형유산 정부간위원회가 11월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시간이 빠듯하다.

잠녀 문화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던지는 좋은 아이템이다.

하지만 잠녀문화는 세련되지도, 우아하지도 없다. 그러다 보니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걸작선(마스터 피스)'이라는 고정관념에는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거기에 제대로 된 연구 축적도 이뤄지지 않았고 당사자(잠녀)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다는 그럴듯한 이유까지 꼬리표처럼 달고 있다.

하지만 잠녀문화를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시도는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의 글로벌 전략 및 무형문화유산보호조약에서 명시한 문화에 대한 의미의 확대 해석, 자부심과 정체성으로 연결된 문화의 개념을 인정하고 실체화한다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당장 지역 문화재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잠녀문화의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를 논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것'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제주만'을 강조할 수 있는 문화 아이템으로 제주잠녀의 가치는 충분하다. 사라지고 있으나 살아있는 것으로 지킬 수 있다는 것 역시 무형문화유산으로 제주잠녀를 평가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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