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역사와 함께하는 제주의 학교 8)서귀포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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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여년 전통을 자랑하는 서귀포초등학교는 지난 2007년 제주형 자율학교로 지정돼 운영, 학교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서귀포초 4학년 학생들이 특성화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는 중국어 교육을 받고 있다. 장공남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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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귀포초등학교는 학생들의 청결하고 간편한 교실 청소를 위해 세탁기 등을 갖춰 청소전용 공간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장공남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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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920년 서귀포 지역에 설립돼 지역의 학생들의 교육을 맡고 있는 서귀포초등학교 전경. 학생들이 쉬는 시간을 이용해 교기인 축구를 즐기고 있다. 장공남 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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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귀포초등학교는 올해 도민체전 남초부 축구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학교의 명예를 드높였다. 축구는 서귀포초의 교기다. 사진제공=서귀포초 | ||
# 서귀포시의 중심 서귀포
서귀포시의 중심에는 서귀포가 있다. 서귀포는 포구다. 이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 서귀리다. 현재 서귀포항은 관광미항으로 개발 중이다.
서귀포 인근에는 빼어난 자연 풍광으로 관광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천지연폭포, 정방폭포, 삼매봉 등을 끼고 있다.
특히 바다에는 새섬, 섶섬, 문섬, 범섬 등이 파도와 어울려 서귀포만의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서귀포는 고려시대 원나라에 조공 보낼 때 이용했던 작은 포구였다. 조선시대에는 서귀진이 들어서 방호소와 수전소로 이용됐다.
서귀포는 일제강점기에 변화를 겪는다. 일본 사람들은 서귀포를 어업의 근거지로 삼아 이곳에 거주했다. 1920년대 중반 160여명의 일본인이 거주, 서귀포항 인근에 통조림공장과 고래공장을 짓는 등 어업 이권에 깊이 개입했다. 일본인들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1917년 10월 서귀포심상소학교를 설립했다.
이에 자극받아 서귀포 주민들은 1920년 서귀리 713번지에 서귀공립보통학교(현 서귀포초등학교)를 설립했다.
서귀동(서귀리)은 현재 송산동, 정방동, 천지동, 중앙동 등 4개 행정동으로 분리돼 있다.
# 1920년 개교 서귀포초
1920년 문을 연 서귀공립보통학교는 서귀포지역의 유일한 교육기관으로 서귀포 교육의 중심 역할을 했다.
서귀공립보통학교는 제주의 다른 학교에서 보이는 설립 시기 논란을 겪고 있다. 제주도교육위원회가 발간한 「제주 교육 연혁지」등에는 개교일을 1920년 12월 23일로 명시하고 있으며 현재 서귀포초는 이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서귀포시지」, 「근·현대 제주교육 100년사」 등은 개교일을 1920년 10월로 보는 반면 인터넷 백과사전인 네이버 백과사전은 12월 20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교육청이 1999년 발간한 「제주교육사」는 1929년 1월 15일자 동아일보 기사를 바탕으로 1920년 10월에 개교했다고 기술하는가 하면 학교를 소개하는 면에서는 12월 23일 개교했다고 하고 있어 개교일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논란은 1930년 학교가 불에 타 전소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교사 전소 이후 서귀공립보통학교는 학교 부지를 더 넓은 부지로 옮겨 현 서귀포초가 위치한 서귀동 558번지로 이전했다.
1945년 서귀포초 교사를 역임했던 현화진씨는 "학교가 전소된 것은 실화였던 것 같다"며 "이전 학교가 협소해 넓은 곳에 터를 마련해 이전했다"고 말했다.
학교 이전에는 주민들의 정성이 모아졌다.
1931년 10월 8일자 동아일보는 서귀공립보통학교의 낙성식 예고 기사를 게재했다. 10월 15일 낙성식을 열고 신축기념으로 3일간 각종경기를 개최해 신축의 기쁨은 물론 감사의 표시를 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1938년 일제의 제3차 조선교육령에 의해 보통학교가 심상소학교로 명칭이 바뀐다. 당시 일본 거류민 학교와 구분하기 위해 한국인이 다니는 보통학교는 학교 명칭에 '서'나 '북'을 붙였다. 서귀공립보통학교는 1938년 서귀북공립심상소학교로 명칭을 바꾼다. 다시 1941년 심상소학교라는 명칭은 천황의 다스리는 나라의 신하된 백성이란 뜻의 '황국 신민'을 줄인 국민을 학교 명칭에 사용, 국민학교로 변경된다. 서귀북공립국민학교는 해방 이후인 1947년 서귀공립국민학교, 1950년 서귀국민학교, 1988년 서귀포국민학교로 명칭을 변경했다. 1996년 3월부터 '황국 신민'의 낙인인 '국민'을 학교 명칭에서 제거해 서귀포초등학교를 학교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 교기는 축구
91년의 학교 역사를 자랑하는 서귀포초등학교는 올해 2월 제88회 졸업생을 배출하는 등 총 1만543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서귀포초는 1980년 2420명(41학급)의 학생을 수용하는 등 서귀포의 중심 학교였다. 학생수 추이를 보면 1990년 1817명, 2000년 844명이던 학생수는 2006년 456명으로 급감했다.
서귀포초는 2007년 제주형 자율학교로 지정·운영하며 학교 살리기에 나섰다. 학생수가 불어나 현재 학생수 500명에 달한다. 이들 학생들은 송산동(106명), 정방동(73명), 천지동(24명), 중앙동(16명) 지역 학생과 이 지역 외의 학생(125명)들로 구성돼 있다.
김병수 서귀포문화원장은 "서귀포초는 서귀포의 중심학교였다. 서귀중앙초(1967년)가 분리되고 홍로분교가 서귀북초(1963년)로 승격돼 분리됐다"며 "서귀포 북쪽에 서귀중앙초가 설립, 남쪽에 위치한 송산동, 천지동, 정방동 학생들이 학교에 다녔다"고 말했다.
서귀포초의 교기는 축구다. 축구부는 1964년 3월 창단됐다. 올해 제주도민체육대회에서 남자초등부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도내 대회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서귀포초의 자랑이 되고 있다.
서귀포초 축구부는 50여명으로 구성, 오전 7시30분부터 8시30분까지 1시간, 방과후 1시간을 활용해 다른 학생들의 교육과정을 배려하며 훈련을 펼치고 있다.
고원배 서귀포초 교장은 "축구를 하는 것은 선수가 되기 위한 것이지만 모두 축구선수가 될 수는 없다"며 "축구를 하며 다른 사람들의 미움을 사면 안된다. 선수가 모범이 돼야 한다고 선수들에게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귀포초는 제주형 자율학교 특성화 프로그램으로 중국어 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전학년을 대상으로 1주일에 1시간씩 담임교사와 중국어강사와 함께 게임, 역할 놀이 등을 통해 중국어를 학습하고 있다.
중국어 교육과 연계해 특색교육활동으로 한자교육을 하고 있다. 졸업 때까지 기본 한자 1000자를 학습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 수요자가 감동하는 교육복지
서귀포초는 옛 서귀포의 중심지로서 지역적으로 낙후돼 있다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동홍초와 서귀북초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옛 도심권에 살던 사람들이 아파트 단지로 옮기자 빈집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거주한다고 설명했다. 기초생활 수급자 수만 하더라도 다른 학교는 보통 20~30명 수준이지만 서귀포초는 60~70명에 달한다는 분석이다.
서귀포초는 2009년부터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취약 계층 학생들의 학습을 돕고 이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학교와 가정, 지역사회 차원의 교육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대상 학생은 160여명이다. 이들에게는 요양원 봉사활동 등 학습·문화·심리·복지영역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돼 '수요자가 감동하는 교육복지'가 제공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학생들이 청결하고 간편하게 교실 청소를 할 수 있도록 '행복의 샘터'라는 청소도구 전용공간을 만들어 세탁기를 이용해 걸레를 빨고 청소 도구를 한 곳에 모아 학교를 변화시키고 있다.
고원배 교장은 "청소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위생적"이라며 "행복한 생활을 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학교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행복으로 이름 붙였다"고 말했다. 글·사진=장공남 기자 gongnam@jem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