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걷는 오름 나그네] <16>왕이메오름

삼림욕 산행에 안성맞춤…다돌아도 1시간20분 충분왕이메오름은 서부지역 오름군의 제왕이다. 이름에 왕이 들어간 것도 그렇고 자리한 위치는 더욱 그러하다. 왼쪽 조근대비악을 시작으로 뒤쪽과 오른쪽까지 10여개의 오름의 호위를 받고 바로 앞에 경호대장인 괴수치와 돔박이를 두고 멀리 서쪽 바다를 향해 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임금이다. 더욱이 산굼부리와 달리 '물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서부지역 최대의 분화구를 만들어낸 화산의 폭발력도 왕임을 인정하게 한다. 크고 넓은 분화구와 함께 울창한 수풀·개활지 등 왕이메오름은 거의 모든 것을 갖춘 오름의 종합선물이다.
왕이메오름의 소재지는 안덕면 광평리 산79번지(표고 612.4m) 일대다. 비고는 92m로 도내 368개 오름 가운데 135번째이나 면적이 70만9179㎡로 20번째로 넓어 비교적 큰 오름으로 분류된다.
이름은 옛날 탐라국 삼신왕이 이곳에 와서 사흘동안 기도를 드렸다는 전설에서 비롯, 한자로는 왕림악(王臨岳)·왕이악(王伊岳)·왕이산(王伊山) 등으로 표기한다. 전설이 그렇듯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오름이 낮고 넓게 퍼진 모습이 소가 누워있는 모습을 닮았다하여 와우악(臥牛岳)이라 불려진다.
오 제주학연구소장은 "제주도 선인들은 오름의 이름에 전설과 지식 등을 동원하지 않았다"며 일단 왕이메의 임금 '왕(王)'자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만약 한자어 왕과 순우리말의 통합 구성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후대에 새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탐방로 입구 B=둘레길과 교차점 C=평지 구역 D=정상부 교차점 E=최정상 F=수직동굴 지역 G=분화구 길·탐방로 교차로 H=분화구 중심 I=남동쪽 화산체 J=나이브릿지골프장 가는 길
탐방을 시작, 오름 둘레길과의 교차점(〃B)을 지나 5분 가량 올라가면 개활지(〃C)다. 개활지의 억새를 헤치고 북동쪽을 나아가면 본격적인 능선 오르기다. 그래도 울창한 숲에다 일부 구간을 제외하곤 가파르지 않아 10분이면 정상부 갈림길(〃D)이다. 시계방향으로 7~8분 가면 최정상을 가기 위해 표고 612.4m의 최정상이다.
정상(〃E)에서 왕이메는 그야말로 군왕의 모습이다. 좌우의 대신을 거느리고 멀리 서쪽 바다를 응시하고 있다. 왼쪽(남쪽)에는 조근대비악·무악과 감낭오름·원수악이, 오른쪽(북쪽)에는 폭낭오름과 북돌아진오름·괴오름·다래오름·빈내오름이 자리하고 있다. 뒤(동쪽)로는 한대오름과 삼형제오름·이돈이오름·영아리·어오름·하뉘복이를 두고 있다. 바로 좌측 앞 괴수치와 돔박이는 경호대장이다.


정상부에서 5분 정도 내리막 탐방로를 진행하면 분화구의 북동쪽 사면을 형성하고 있는 거대한 암벽을 만나게 된다. 서부지역 최대의 분화구를 만들어내기 위해 뿜어냈던 엄청난 용암의 증거다. 그래서 그런지 동쪽과 동남쪽에 제2·제3의 분화구가 있다. 특히 동남쪽 분화구는 주봉과 맞먹을 정도의 않은 산체를 자랑한다.

'드넓은' 분화구에서 자연의 힘에 경탄하고 길을 되돌아 올라와(〃G) 우회전하면 정상부 갈림길(〃D)이고 직진하면 둘레길이다. 정상부를 거쳐 내려오면 15분, 둘레길을 따라 하산하면 10분이다. 분화구까지 다녀와도 1시간20분이면 충분하다.


왕이메는 지질학적으로는 비교적 젊은 오름으로 추정된다. 강순석 제주지질연구소장은 "약 10만 이내에 엄청난 양의 용암이 분출, 하류로 흐르며 이시돌목장 등을 형성한 용암대지(lava plateau)를 형성했을 것"이라며 "분화구가 크기 때문에 제2·3의 분화구는 화구이동에 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 소장은 "용암류는 저지대로 흐르다 팝콘 터지듯 폭발하면서 지금의 지형을 만들었다"며 "산굼부리는 주변의 호수 또는 지하의 물을 만나 폭발한 수성화산이 일부 가미돼 있으나 왕이메는 그것과 다르다. 육상화산 임에도 분화구가 크다는 것은 폭발력이 컸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왕이메오름에는 때죽나무·까치박달·고로쇠·팥배·비자·산딸·윤노리·단풍·합다리나무 등이 분포하고 정상부에 드물게 붉가시나무·사스레피·동백나무 등 상록활엽수가 분포하고 있다. 초본층에는 큰천남성·방울꽃·자금우·파리풀·국수나무·노루발·돌외·줄사철·속단·산수국·갈매기난초·새우란·맥문동·제주조릿대·십자고사리 등이 자라고 있다.
김대신 연구사는 "왕이메오름의 식생은 삼나무·해송 조림지와 때죽·개서·까치박달나무 등 낙엽활엽수가 우점하는 지역으로 구분되고 식물상도 매우 다양한 편"이라며 "경작지 등 인위적인 간섭이 있었던 분화구 내부에는 꽈리와 양하 같은 재배식물이 분포가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철웅 기자
| "오름 정명화 작업 필요 ![]() 오창명 제주학연구소장은 "오름 이름은 원래 제주 선인들이 제주어로 불러온 것이나 최근 잘못된 이름이 국가 지형도뿐만 아니라 행정기관 제작 자료와 인터넷 등을 통해 전파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 오름 정명화(正名化)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 소장은 "오름 이름을 제대로 조사, 본디 이름은 무엇이고, 변하거나 바뀐 이름은 무엇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한글과 한자 표기는 물론 적절한 중국어·일어 표기 방법도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름 이름에는 가장 먼저 해당 오름의 인상적인 사물이나 물체가 동원됐다. 이는 상형문자와 같은 원리"라며 "가령 붉은 송이로 덮여있으면 붉은오름, 암반·바위가 유난히 드러나 있으면 검은오름이라 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오 소장은 "입으로 전해지던 오름 이름이 쓸 때는 사람마다 다른 경우가 많아 오류가 계속되고 있다"면서 "심지어 국가 지형도에 엄연히 '검은오름'으로 표기돼 있는 오름도 세계자연유산으론 등재되면서는 '거문오름'으로 바뀌어 버렸다"고 지적했다. 오 소장은 무리한 한자화의 오류도 질타했다. 안덕면 론오름(골른오름)을 竝岳(병악)으로, 봉개동 오리오름(으리오름)을 犬月岳(견월악)으로 써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는 "른오름과 병악은 나름 의미가 통하기 때문에 중국인이나 일본인을 위한 소개 책자에는 쓸 수도 있지만 오리오름과 견월악은 의미가 통하지도 않고 엉뚱하게 개[犬]와 달[月]을 연관시켜 해석하게 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실제로 그러한 책들도 많아 문제"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오 소장은 "제주 문화의 정체성 찾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주어 찾기이고, 오래된 제주어가 녹아있는 것이 지명"이라며 "높아진 오름에 대한 관심이 제 이름 찾기까지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철웅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