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대탐사Ⅱ: 객원기자 김대신의 곶자왈 10년 생명을 읽다]<2> 상창-화순곶자왈

   
 
  상창-화순곶자왈 함몰지형.  
 
 안덕면에 자리 잡은 해발 477m 높이의 병악에 오르면 유장한 흐름의 드넓은 숲을 만날 수 있다. 날씨가 살짝 흐린 날 쯤에는 그 끝이 아득하다. 바로 상창-화순곶자왈이다.

 곶자왈은 보통 용암류로 구분하고 있는데 상창-화순곶자왈용암류는 월림-신평곶자왈용암류와 더불어 한경-안덕곶자왈지대에 속한다. 병악에서 시작된 상창-화순곶자왈용암류는 화순리 방향으로 약 9㎞를 흘러 만들어졌다. 월림-신평곶자왈용암류가 여러 갈래로 분기하며 흘러간 반면 상창-화순곶자왈용암류는 거의 분기하지 않고 평균 1.5㎞ 의 폭으로 해안지역까지 이어진다. 곶자왈내부의 암부의 크기는 대병악 주변에서 2m내외의 크기로 분포하다가 점차 작아지고 말단부인 화순곶자왈 인근에서는 암괴의 크기가 작아지고 2㎜ 이하의 분쇄물이 다량 포함되며 암괴층은 상부보다 더욱 두터워지는 특징을 보인다. 대병악에서 바라본 곶자왈의 흐름은 흐트러짐이 없이 산방산부근을 향하고 있음을 잘 볼 수 있으며 곶자왈지대 중 비교적 그 흐름이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 중 하나이다. 이러한 흐름은 곶자왈지대가 해안지역과 중산간 지역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상창-화순곶자왈의 상부지역에는 낙엽활엽수가 우점하는 식생을 보이나 하부에 이르면 상록활엽수와 낙엽활엽수가 혼효하는 형상을 보인다. 낙엽활엽수가 자리 잡은 지역은 주연부의 관목림지역을 제외하면 때죽나무와 팽나무가, 하부지역으로 가면서 종가시나무나 참식나무, 생달나무, 때죽나무 등이 우점하는 식생으로 변한다.

 # 함몰지형과 큰봉의꼬리

 곶자왈지대는 끊임없는 요철지형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지역에 따라서는 깊은 함몰지형이나 용암제방 같은 특이지형들이 산재하여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 주기도 하는데 이런 지형은 곶자왈지대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되는 상징적인 공간 중 하나이다. 깊이나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곶자왈용암류의 공극에서 만들어지는 비교적 높은 습도와 일정한 온도에 의하여 함몰지형의 바닥부분과 상부 쪽은 온도와 습도에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래서 표면을 따라서 분포하는 식물이 자연스럽게 서로 층상분포를 하며 자라게 된다. 특히 여름철에는 함몰지형 내부는 주변보다 서늘할 정도의 낮은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마치 동굴내부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위쪽으로 갈수록 그 효과는 미미해지므로 함몰지형의 표면을 따라 식물분포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곶자왈내에서 큰봉의꼬리는 이러한 함몰지형에 분포하는 독특한 생태적 지표종의 하나로 볼 수 있다. 함몰지형의 바닥부에는 일반적으로 밤일엽이나 큰봉의꼬리가 분포하는데 토양의 형성유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닥부위에서 점차 위로 올라올수록 더부살이고사리가 순군락을 형성하고 상부에는 가는쇠고사리가 분포하며 노출된 바위 등 최상부에는 건조에 강한 석위나 개부처손 같은 식물이 자란다. 이러한 현상은 저지대의 곶자왈지대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해발 고도가 비교적 높은 교래곶자왈지역이나 애월곶자왈지역에서는 주로 일색고사리나 큰톱지네고사리가 함몰지형을 따라 분포한다. 양치식물뿐만 아니라 지역에 따라서는 섬사철란이나 붉은사철란이 군락을 형성하기도 하여 지역별, 해발고도별로 차이를 보이고 있어 곶자왈지대만이 가진 독특한 특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무환자나무, 개가시나무, 방울꽃.   
 
 # 다양한 식물을 품다

 상창-화순곶자왈은 상부보다는 하부로 갈수록 암괴층이 두텁고 함몰지형이 발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상창-화순곶자왈의 상부에서는 비교적 건조한 형태를 보이며 하층식생이 좀 빈약한 편이나 점차 하부로 갈수록 깊은 함몰지형이 발달하고 다양한 식물들이 분포하게 된다.

 상창-화순곶자왈에는 다수의 희귀식물과 다양한 특성을 가진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현재까지 조사된 결과로 약 300종류 이상의 식물이 자라고 있는데, IUCN(세계자연보존연맹)의 기준으로 볼 때 멸종위기종(CR)인 차꼬리고사리, 금새우란초를 비롯하여 위기종(EN)인 개가시나무, 숫돌담고사리, 밤일엽 등이 분포하고 있다. 식물구계학적으로 볼 때 고립하거나 불연속적으로 분포하여 학술적, 국제적으로 보호가치가 높은 식물 종류인 개가시나무, 방울꽃, 새우란초류, 난장이이끼 등이 분포하고 있어 희귀식물의 중요한 분포지임을 말해 주고 있다. 말단부인 화순곶자왈 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개가시나무는 도내 주요 자생지인 저지곶자왈에 비해 개체수는 적지만 그 크기는 큰 편으로 과거 이 지역에도 다수가 분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무환자(無患子)나무의 분포가 많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무환자나무는 과거 마을주변의 노거수로 기억을 하고 있지만 낮은 해발고에 형성된 곶자왈지대를 따라 곳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화순곶자왈에는 많은 수의 개체들이 분포하고 있다. 열매는 염주나 약용 등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는 식물로 무환자나무의 열매를 줍는 것도 곶자왈을 찾는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화순곶자왈 내부에는 함몰지형 뿐만 아니라 동백동산지역에서 볼 수 있는 튜물러스처럼 암괴들이 쌓여 마치 작은 동산을 이룬 지형을 드물게 접할 수 있다. 이렇게 암괴들이 나출된 지역은 주변보다 다소 높으며 수목의 분포가 거의 없는 게 특징이다. 이러한 지역은 최근에 뿌리내린 팽나무의 치수(어린 나무)나 관목류들이 일부 자라나고 있을 뿐 과거 수목이 있었을 법한 흔적은 거의 없으며 바위 밑이나 그늘을 따라 개부처손이나 왕모람 같은 암극식물들이 자라고 있어 다양한 생태적 특성을 가진 식물들이 생육할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은 앞으로 목본성 식물들이 자라나 관목림을 형성하고 주변과 유사한 식생으로 천이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예상해볼 수 있어 미래의 숲의 현재적 모습이라 할 만하다. 곶자왈의 초기 식생 형성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 곶자왈숲의 미래를 본다

 일반적으로 숲이 확장되어 가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가 숲의 가장자리인 주연부다. 대개 날카로운 가시를 가지는 복분자딸기, 산초나무 같은 식물과 개다래, 상동나무 같은 덩굴성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보기엔 작은 관목과 덩굴식물이 얽혀 있어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다양한 역할을 하고 숲의 미래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주연부의 식물들은 우선 기본적으로 숲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며 곤충들의 중요한 먹이활동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들의 하부는 향후 이 숲의 주인공이 될 어린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린 교목류들이 자라나고 이 어린 나무들이 왕성하게 될 때 쯤이면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고 사라진다. 주연부는 궁극적으로 덩굴식물이나 관목류의 보살핌과 희생으로 안정된 숲으로 변하게 된다. 화순곶자왈지역을 중심으로 보면 이러한 숲의 가장자리나 관목림에는 참식나무, 가시나무류 등의 어린 개체들이 자라는 것을 관찰할 수 있어 이런 지역은 앞으로 건실한 상록활엽수림으로 확장되어 변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예측은 틀리기 일쑤고 자연은 변화무쌍함을 왕왕 보여준다. 곶자왈지대의  식생 변화는 미묘한 지형 및 지질의 차이와 기후, 인간의 간섭 등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치 앞도 못 보는 게 인간이므로 과거는 어떠했고 지금은 어떤가를 통해 앞일을 더듬어 볼 뿐이어서 가시덤불이 가득한 주연부를 살펴보며 화순곶자왈의 미래가 우리의 예측대로 흘러갈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헤아려볼 뿐이다.

김대신 객원기자(한라산연구소 녹지연구사)/ retum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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