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유산, 역사의 ‘새숨결’ 불어넣다] <9>‘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①

세계문화유산 등재, 꼬박 12년 준비 과정 끝 ‘쾌거’
살고 있는 마을 가치 인정…주말 3000명 넘는 관광객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문화재청은 2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택견과 줄타기, 한산 모시 짜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고 밝혔다. 택견과 줄타기는 사전 심사 단계에서 '등재 권고' 판정을 받아 등재가 확실시됐지만, 등재 보류 판단을 받았던 한산모시짜기가 막판에 극적으로 목록에 추가되며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이번에 세 건이 추가되면서 한국은 2001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모두 14건에 이르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정통무예인 택견과 한산 모시짜기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전승된' 부분에 있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택견은 전승자들 간의 협력과 연대 강화를 통해 전 세계 유사한 전통무예의 가시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한산 모시짜기는 '해당 공동체에 뿌리내린 전통기술로 실행자들에게 정체성과 지속성을 부여'한다는 점이 등재 이유가 됐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는 어떻게든 그 답을 찾아야 할 때다.
# 마을의 생명력과 역사성 가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지난해 8월 1일, 현지시각으로는 7월 31일 브라질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Historic Villages of Korea : Hahoe and Yangdong)'에 대한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 등재를 확정했다.
WHC의 자문기구인 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같은해 6월 WH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에 대해 '보류(refer)' 결정을 내린 것을 뒤집은 쾌거였다.
당초 ICOMOS는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의 역사ㆍ문화적 가치와 대표적 양반 씨족마을인 두 마을이 한데 묶여 '연속유산'으로 신청되어야 하는 이유 등은 공감했으나 행정구역이 다른 두 마을을 통합 관리하는 체계가 없는 점 등을 우려했다.
불과 한달 여만에 통합관리 체계인 '역사마을보존협의회'가 구성되고 경상북도와 문화재청이 관여하는 통합적 체계의 존재를 확인시키면서 WHC를 설득했다.
사실 드라마틱한 결과 이면에는 꼬박 12년의 준비가 있었다.
안동 하회마을이 세계유산 등재 준비를 시작한 것은 1998년 7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포함되면서 부터다. 그 시간 동안 안동시를 중심으로 안동 하회마을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지역민의 동참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WHC와 ICOMOS회원국을 상대로 등재 당위성을 홍보하는 물밑 작업까지 동시에 진행했다.
마을의 원형보존과 관리체계를 확립하고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를 작성한 뒤에는 WHC에 이를 제출하고 ICOMOS의 현지실사와 보완요청, WHC의 심의 발표까지 계속적인 준비 과정이 이어졌다.
처음 안동 하회마을만의 도전은 문화재청이 2008년 경주 양동마을을 공동 등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으며 규모가 커졌다. '한국의 역사마을-하회와 양동'으로 이름도 바꿨다.
눈에 보이는 '마을'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것과 '제주 잠녀·잠녀문화'를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어떤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까.
다름 아닌 '지금까지 살아왔고, 현재 살아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갈'에 있다. 등재 1년, 이제 2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두 마을이 안고 있는 고민도 우리와 비슷했다.

# 지나친 관심…'보존' 의미 퇴색
경주 양동마을까지 대중교통으로는 쉽게 접근하기 힘들었다.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갈아타고서야 간신히 닿을 수 있는 마을은 그러나 '시간이 멈춘'듯한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들어가는 입구는 주차장 등 기반 시설 조성으로 분주했다. 한편에서는 잘 깔아놓은 시멘트 포장을 걷어내는 작업도 하고 있다. 마을을 둘러보는데도 몇 가지 주의사항이 따라다닌다. 출입이 허용된 곳만 들어가야 하고, 시끄럽게 떠들면 안 된다는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마을해설사며 이지관 마을이장 등 관계자가 수차례 강조를 한다. 직접 마을을 둘러보고 나서야 그 이유가 이해가 됐다. 촬영을 위해 사전 협조 공문을 보내야 했던 사정이다.
경주 양동마을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는 것은 단순히 오랜 전통 때문만은 아니다. 단위 문화재가 아닌 주민이 '살고 있는'마을이 세계유산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은 분명 다른 세계유산과는 차이가 있다. 양동마을은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가 5세기 넘게 살아온 마을이다. 아직도 마을에는 이들의 후손이 살고 있다. 세계 유산 지정의 배경에는 '빈 집'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살고 있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루해가 다 지도록 마을 사람이 아니면 왕래가 많지 않았던 마을에 하루 평균 600~700명, 주말에는 3000명이 넘는 관광객이 쏟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역사마을'로 인정받았다는 긍지와 자부심이 높았지만 그만큼 사생활 침해 같은 불편도 늘었다.
이지관 이장은 "실사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이 많이 협조했다"며 "대부분 개인 소유 재산이란 단점을 협의를 통해 긍정적으로 풀어냈다"고 말했다.
문제는 다음에 있었다. 이 이장은 "유네스코 등재와 관광산업 활성화를 같은 선상에서 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인 만큼 교감과 소통을 위한 장치가 마련돼야 하지만 많은 관광객들이 '민속촌'정도로 생각하면서 크고 작은 마찰을 빚고 있다.
이 이장은 "알 만한 사람들까지 종가에 들어가 안채를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한다"며 "입장을 바꿔 본다면 불쾌하고 실례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찾는 사람이 늘다보니 여행사 등에서 수수료를 요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세계유산 등재에 있는 '보존'의 의미가 퇴색되고 상업성만 부각되는 상황에서 마을 차원에서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양동마을에서는 오히려 '불편'해도 좋다. 지나친 관심과 무분별한 관람행태에서 오는 피로감이 마을 사람들의 각성을 불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