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대탐사Ⅱ:객원기자 김대신의 곶자왈 10년 생명을 읽다] 8 종달-한동곶자왈

   
 
  백약이오름에서 바라본 곶자왈지대  
 
 '오름 왕국'이라 불리는 구좌읍 중산간 지역엔 오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름 사이사이 '제주의 허파'라는 곶자왈이 비밀처럼 자리잡고 있다. 바로 구좌-성산곶자왈지대다. 북부 및 서부의 곶자왈지대가 나름의 규모를 보이는 반면 제주도의 동부지역에 위치한 구좌-성산곶자왈지대는 규모가 작고 그 흐름이 불명확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곶자왈인지 잘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구좌-성산곶자왈대는 종달-한동곶자왈용암류, 세화곶자왈용암류, 상도-하도곶자왈용암류, 수산곶자왈 등으로 구분된다. 이 지대는 동거미오름 주변과 비자림, 둔지봉 주변 등 비교적 규모가 작고 부분적인 흐름들만이 남아 있다. 그나마 동거미오름주변에 남아 있는 곶자왈용암류는 주변의 오름군들 사이에 둘러싸여 작지만 온전하게 흐름이 보존되어 있다. 또 비자림처럼 사람의 보호 아래 곶자왈 속의 진주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이 흐름과는 성인이 다르지만 둔지봉 주변의 곶자왈용암류 흐름은 특이할 만하다. 이번에는 동거미오름에서 시작하여 다랑쉬오름, 둔지봉 및 돛오름을 지나 비자림으로 이어지는 곶자왈용암류의 흐름을 살펴본다.

 # 종달-한동곶자왈의 백미 비자림

 비자림지대는 종달-한동곶자왈용암류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비자나무의 순림으로 볼 수 있지만 독특한 곶자왈 지형과 어우러져 종다양성이 매우 풍부한 편이다. 비자림지역은 평이한 지형을 보이는 형태지만 부분적으로 함몰지형이 나타나기도 하며 무엇보다 다른 곶자왈지대와는 달리 장기간 안정적인 숲을 형성해 왔다. 때문에 식생 및 식물상에 차이를 보이는데 과거부터 세계최대의 비자나무의 분포지역뿐만 아니라, 차걸이란, 혹란, 풍란 등 다양한 희귀식물이 자라는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또 박쥐나무, 방울꽃, 일색고사리 등 온대성식물들이 분포하고 있는 점도 특징적이다.

 비자림의 가장 특이한 부분은 역시 비자나무의 분포 그 자체이다. 비자나무는 어쩌면 곶자왈지대에서 어색하거나 좀 예상외의 수종으로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곶자왈지대에는 침엽수의 분포는 매우 제한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인위적인 간섭 등으로 숲 틈이 생성되면 양수인 곰솔이 생육하긴 하지만 그 외 수종은 거의 없다. 특이하게 애월곶자왈지대와 비자림지대에서는 비자나무가 비교적 흔하게 관찰되고 있다. 두 지역이 기본적으로 해발고도에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생장면에서 애월곶자왈지대와 비자림 지역과는 차이를 보이는데 아무래도 애월곶자왈지역이 생육도 매우 열악한 편이다. 비자림의 생성 원인에 여러 가지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과거 비자림 곶자왈지역과 그 주변 오름 등에 일부 생육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며 이러한 분포특성들이 근간이 되어 지금의 비자림지대가 만들어지는데 단초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 비자나무와 착생식물

   
 
  차걸이란  
 
 비자나무 수피를 지긋하게 눌러보면 딱딱한 느낌보다는 마치 부드러운 스펀지 같이 눌렸다가 회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비자나무의 수간을 따라 수피에는 매우 다양한 식물을 품고 있는 것이 흔하게 관찰된다. 특히 난과식물의 착생에 유용한 여건을 만들어 비자림의 종다양성을 높여주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각종 덩굴성식물에 의한 생육저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혹란, 차걸이란 등을 비롯하여 콩짜개덩굴, 모람, 석위 등은 수피나 수관을 따라 자라며 주로 수관을 따라 흐르는 물이나 양분을 흡수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착생식물들은 수림내부가 늘 습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보통 수분손실을 줄이기 위해 잎 표면을 왁스층으로 감싸고 있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중에도 혹란은 비자림과 도내 계곡 및 남해안의 몇몇 도서에만 생육하는 종류이며, 특히 차걸이란은 국내에서 비자림과 일부 계곡에만 분포하는 종류이다. 다시 말해 원시림에 가까운 숲이 잘 보전되어야 안정적인 생육이 가능한 종류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존재는 비자림의 가치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 함몰지형의 진수 둔지봉 곶자왈

   
 
  박쥐나무  
 
 종달-한동곶자왈의 함몰지형은 둔지봉주변 곶자왈에서 맛볼 수 있다. 구실잣밤나무, 조록나무, 생달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속에 감춰져 외부에서는 가늠하기 어려운데 함몰의 깊이도 다른 곶자왈보다 깊으며 마치 깔대기와 같은 형태를 취하기도 하기 때문에 인상적이다. 함몰지형의 식물상 역시 다른 곶자왈지대와는 사뭇 다른데, 바닥부분에는 바위 겉을 감싼 이끼들을 따라 붉은사철란이나 사철란이 카펫처럼 자라며 식나무와 박쥐나무가 자라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제주도에만 자라는 주름고사리가 함몰지역 주변으로 군락을 형성하여 분포하는 점도 차이점 중 하나이다. 함몰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함몰지형의 사면을 따라 바닥부분에는 일색고사리를 비롯하여 바위 겉을 따라 난장이이끼나 붉은사철란 등이 분포하고, 나도히초미, 비늘고사리 같은 종류들이 따라 분포하고 점차 상부로 갈수록 더부살이고사리, 가는쇠고사리, 후추등 군락으로 이어진다. 식물은 역시 자기 자리를 아는 것 같다. 깊게 함몰된 부분부터 올라가면서 제 삶에 맞게 자리를 잡은 식물들을 살펴보는 것은 곶자왈의 또다른 묘미다. 암괴로만 이뤄진 곶자왈의 함몰지형은 식물의 삶을 제약하기도 하지만 함몰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미기후는 식물에게 저들만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점에서 기회이기도 할 터다.

 # 곶자왈지대의 축소판 동거미오름곶자왈

 백약이오름에서 바라보면 동거미오름 주변에 남아있는 곶자왈지대는 그 흐름이 비교적 명확하고 잘 보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다른 곶자왈지대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어쩌면 숨겨진 보물처럼 간직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사방을 에워싼 오름군의 영향으로 곶자왈지대 주변으로 집중호우시에는 넓은 관목지대에 일시적으로 습지가 만들어진다. 단순해 보이는 흐름이 전부일지 모르지만 요철지형과 함몰지형은 다른 곶자왈에 뒤질 것은 없다. 발원부쪽으로는 암괴의 규모가 크고 깊은 함몰지형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후 점차 평이한 요철지형이 발달하는 형태를 보인다. 식생적으로는 녹나무과의 식물들이 우점하는 것이 특징이다. 둔지봉주변 곶자왈과 마찬가지로 이 지역도 참식나무, 생달나무, 센달나무 등이 대표적이며 낙엽활엽수의 분포는 단순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해발고도 300m 이하 지역으로 온대성식물의 분포가 적으며 수목의 밀도가 매우 높고 일시에 성장한 듯한 수목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초본식물의 분포는 매우 빈약한 특징을 보인다. 드물게 일부 지역에 규모가 큰 암괴들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도 있어 한라감자란, 새우란류 등 희귀식물의 분포는 매우 제한적이다. 주변이 오랜 세월 방목이 성행하여왔고 최근 경작지가 확대되면서 이 지역의 곶자왈은 마치 섬처럼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영향으로 종달-한동곶자왈은 제주도 동부지역의 중요한 종피난처 역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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