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유산, 역사의 ‘새숨결’ 불어넣다] <11>유네스코 긴급무형문화유산 그리고

▲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무형문화유산 국제정보 네트워킹센터 아태 전문가네트워크 회의에 참가한 전문가들이 구좌읍 하도리 서동 불턱에서 제주 잠녀과 불턱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단절 위기감 등 무형문화유산관리 이원화…국제적 강제 보호 장치 마련
잠녀 중심의 추진 의지 소원, 불턱·해신당 관심 문화재 지정 서둘러야

몽고 전통 민요와 중국 허저(赫哲)족의 전통 이야기인 이마칸(伊瑪堪), 브라질의 기우제 행사, 베트남 북부 푸토성의 성지에서 불리는 '쏘안' 등 이들의 공통점을 묻는 질문이 공허해진다.입에 달라붙지 않는 만큼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버린 것들. 다름 아닌 유네스코의 '긴급보호 무형문화유산'이다. 무형문화유산 단절에 대한 위기감이 만든 국제적 강제 보호 장치까지 언급해야 할 만큼 우리의 사정이 녹록치 않다.
 

▲ 만농 홍정표의 ‘잠녀’
# 즉각적 보호 없이 소멸 위기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6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이날 24개국이 올린 무형유산 18건 중 9건을 선정했다. 추가적인 유산 등재도 거론됐다.

이번 무형유산 목록에는 회의 개최국 인도네시아의 전통춤인 '사만춤(Saman Dance)'과 이란의 전통 이야기 공연과 전통 보트도 각각 포함됐다.

어쩌면 특별해야 했을지도 모를 이들 등재는 생각보다 조용해 이뤄졌다. 긴급보호무형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보호조치가 없으면 소멸될 정도로 심각한 위협'에 처했음을 증명한 것들이다. 이 기준에 맞추지 못해 등재되지 못한 유산이 부지기수였다. '무형'이기 때문에 겪는 아픔이다.

지난 2006년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유네스코 국제협약이 발효된 이후 유네스코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과 '긴급 보호가 필요한 무형문화유산 목록'을 제정해왔다.

긴급보호 무형문화유산은 2009년 12개, 2010년 4개가 등재된 바 있다.

무형문화유산의 가장 큰 잠재적 가치는 세계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어떤 특정 지역의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지구촌 어디를 가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음악과 춤을 즐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다소 주춤하고 있는 제주 잠녀·잠녀문화 세계화 작업에 대한 안타까움은 여기서 출발한다. 지금이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어느 한 순간 잠깐의 방심이 이를 '긴급 보호가 필요한 무형 문화유산'으로 바꿀지 모르기 때문이다.

▲ 불턱과 함께 사라지고 있는 해신당. 지역 문화재 등재작업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진은 동복어촌계 해신당.
해녀축제가 끝난 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잠녀·잠녀문화의 국가 비지정 무형유산 잠재목록 등재 신청을 위한 제안서를 문화재청에 했다. 등재 기준을 채운 첫 작업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하지만 "제주잠녀에 대한 가치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지나친 억측이나 앞선 단정은 안 된다"는 것이 문화재청 측의 입장이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초까지 진행된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무형문화유산 국제정보 네트워킹센터(이하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ICH) 아태 전문가네트워크 회의에 참가했던 문화재청 관계자는 "'등재'라는 말을 성급히 쓰면 안 된다"고 뼈있는 귀띔을 했다. 오히려 제주도의 의지를 묻기도 했다.

# 잠녀문화에 대한 다양·체계적 접근 주문

제주 안에서의 더딘 작업에 비해 제주 밖의 평가는 여전히 후하다. ICH의 아태지역 무형유산 전문가 네트워크 회의 참가자들은 '공동체'가 살아있는 해안 중심의 여성 문화에 대한 관심을 아끼지 않았다. 유형인 세계유산과 공존하고 있는 장점 역시 높게 봤다.

제6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 정부간 위원회를 마무리하자마자 제주일정에 합류한 가우라 만차차리타디프라씨의 시선이 날카롭다. 먼저 '긴급 보호'목록을 확정하고 온 탓인지 제주잠녀·잠녀 문화를 보다 세심하게 살펴봤다.

▲ 가우라 만차차리타디프라씨
▲ 아이가와 노리코씨
가우라씨는 아직까지 해안가를 중심으로 한 무형문화유산이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 잠녀의 특이성이나 가치가 뛰어나다는 것이다. 공동체와 함께 공연·예술적 성격이 포함돼 있는데 대한 평가도 후했다. 이른바 유네스코가 주창하는 '무형문화유산적'가치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아이가와 노리코 전 유네스코 무형유산 과장의 평가에는 뼈가 있었다. 해녀박물관에 대해 '놀랍다'고 언급한 아이가와 전 과장은 잠녀노래와 물질 공연에 대해 "관광적인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를 관광산업과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멈칫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수년에 걸쳐 다듬어지고 관광객들의 호응도는 높아졌지만 '무형문화유산'이란 측면에서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아이가와 전 과장은 "지속가능한 변화를 전제로 한다고 하더라도 공동체 문화와 함께 원형적 성격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어떤 형태의 전승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아이가와 전 과장 뿐 아니라 참가 전문가들은 박물관과 함께 몇 남지 않은 불턱과 해신당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불턱과 그 안에서 형성됐던 잠녀 공동체에 놀라워했고, 그런 특이한 문화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에 다시 놀랐다. 무속문화로 해신당의 존재와 역할, 그리고 현존하고 있는 배경에도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지역 문화재로 등재하지 못한 채 남아있는 공간이자 문화유산들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제주 잠녀와 관련한 자료를 요구하기도 했다.

ICH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보는 시각은 일반과 크게 다르다"며 "이들이 관심을 쏟는 부분, 지적하는 사항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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