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유산, 역사의 ‘새숨결’ 불어넣다] <13> 에필로그

관광산업 활성화 기대 대신 보존·전승에 대한 진중한 고민 필요
소리 없는 '문화전쟁'의 틈바구니 속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고 또 고민하자는 의도에서 첫 단추를 끼웠다. 4개월여. 길수도 또 짧을 수도 있는 시간 동안 기대 이상으로 큰 일이 벌어졌고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성과라기보다는 사실 '숙제'에 가깝지만 해야 할 것을 찾았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완성품'까지 이제 마지막 단추가 남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상황에서 우리의 문화 경쟁력 수준을 짚어본다.
# 잠녀·잠녀 문화 정체성부터
제주특별자치도는 9월 '해녀문화 세계화 5개년 기본 계획'을 확정했다.
제주 잠녀의 고유의 공동체 문화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보존·전승하는 것을 기본 틀로 2015년까지 615억여원을 투입해 해녀축제를 규모화하고 해녀 문화의 학술적 가치 정립 등을 통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 등재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면 다소 실망스럽다. 제주잠녀의 유·무형적 콘텐츠를 개발하고 논란이 됐던 '해녀상' 건립은 없던 일이 됐지만 잠녀들의 안정적인 소득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잠수복 지원·패조류 투석사업 확대 등 기존 조례 등을 통해 진행되던 사업들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잠녀문화를 상징하고 체험 등을 통해 전승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해녀문화센터' 역시 시설 인프라에 불과할 뿐 잠녀와 잠녀 문화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담겨 있지 않았다.


물론 처음 해녀문화전승 및 보존을 위한 조례 제정 작업에서부터 일련의 흐름들을 쭉 지켜본 입장에서 이만큼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앞서지만 지금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단절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보다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주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상황들을 감안할 때 먼저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 명작으로 선정된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강릉단오제'나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안동하회마을과 경주양동마을의 사례나 이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또 유지하려는 노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유네스코 등재≠관광·수익 창출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보존회가 다르다. 처음 종묘제례가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고 이후 추가 작업을 통해 종묘제례악을 포함시켰다. 전체 제차 등을 감안할 때 둘을 떼 놓는 것은 사실상 무리였다. 잠녀와 잠녀문화에 대한 작업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주문도 이를 배경으로 한다.
직접 둘러본 예들은 하나의 공통된 목소리를 낸다. 유네스코 등재는 문화 경쟁력을 확인하고 지키겠다는 다짐을 강하게 하는 것일 뿐 절대 관광상품화 등 경제효과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명작이라고 하더라도 정부 차원의 지원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아닌데다 오히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대중에 더 많이 접촉해야 한다는 주문과 정통성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부딪히는 상황이 이어진다. 보유자 지정 등에 있어 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고 여전히 유형문화유산에 비해 제 평가를 받지 못하면서 홀대론이 부각되기도 한다.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겪는 홍역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지나친 관심과 호기심에서 오는 피로감으로 하나 둘 문을 걸어잠그고 있다. '역사 마을'가치는 오간데 없고 방문객 증가에 포커스를 맞추는 행정의 관심도 문제지만 단순히 유명하다는 말만 좇아 문화유산에 대한 기본적 예의를 지키지 않는 행태가 문화적 마찰로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의 제주잠녀·잠녀문화세계화 계획 중에도 '관광 상품'이란 단어가 들어있다. 보존·전승과 상품화 어느 쪽에 무게를 두겠다는 얘기도, 지정 이후 우리가 짊어져야할 책임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기대했던 대로 지정이 되지 않는다면, 지정된 이후 특유의 문화적 가치를 지키지 못한 채 잠녀·잠녀문화가 아닌 그에 대한 호기심에 기준을 맞춘다면 우리는 더 큰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다.
# '지켜야할 이유'중심 가치평가부터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반드시 지켜야할 해양 중심의 여성 공동체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보존의 기준이 아직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 문화적 가치에 대해서는 관련 전문가들 모두 '충분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분과위원장이자 제주해녀문화전승보존위원인 임돈희 동국대 석좌교수의 얘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임 석좌교수는 '제주잠녀·잠녀문화'의 유네스코무형문화유산 등재'는 목표점을 위한 '세계화위원회(가칭)'를 제안했다.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에 밀려 도토리 취급을 받고 있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에 이어 제주잠녀·잠녀문화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기 위한 기준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문화재청 등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제주 내부에서 충분한 논의와 공감대 형성을 통해 주도할 때 성사될 수 있다는 귀띔이기도 하다. 강릉단오제도 그랬고, 안동하회·경주양동마을 등도 민·관·학 등 관계자들의 유기적 결합과 함께 적극적인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다. 안동하회마을만 해도 준비과정에만 10년이 넘게 걸렸다. 강릉시는 강릉단오제의 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먼저 ICCN(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을 제안했고, 대표 도시로 내년 공동프로젝트인 '세계무형문화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업이라고는 '해녀축제의 규모화'가 유일하다. 아직 축제 콘텐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등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지만 일단 단일 축제로 치러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기획을 시작하면서도 당부했지만 잠녀와 잠녀문화를 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시도는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의 글로벌 전략 및 무형문화유산보호조약에서 명시한 문화에 대한 의미의 확대 해석, 자부심과 정체성으로 연결된 문화의 개념을 인정하고 실체화한다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살아있는 무형의 것을 '보호(Safeguarding)'한다"는 것이 유네스코의 취지다. 사라지고 있으나 살아있는 것으로 또 지킬 수 있다는 것. 거기에 유네스코 자연과학분야 3관왕이란 든든한 배경까지 장점으로 활용할 때 제주 잠녀·잠녀문화의 가치는 인정받아야 한다.
* 이 연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