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역사와 함께하는 제주의 학교] 에필로그

▲ 도내 학교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제주북초등학교

마을 중심기관 역할 주민 결집 매개체
형평·지역성 고려 않는 교육정책 '문제'

"지금의 학교가 마을의 구심이라는 게 설득력이 있나" 누군가 던진 질문에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마을의 역사이자 중심이었던 제주의 초등학교들이 이제는 경쟁사회를 맞아 잊혀질 위기에 처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젊은이들의 이농현상으로 마을내 취학연령 아동들이 줄어들어 한때 100명이 넘는 학생들로 가득찼던 농어촌학교들이 이제는 소규모학교라는 달갑지 않은 명칭을 달게 됐다. 시내 구도심 지역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혼란기 거치며 뜨거워진 교육열

「근·현대 제주교육 100년사」를 보면 1945년 해방 이후 미 군정기인 1948년까지 제주에 새롭게 문을 연 43개 학교를 포함, 모두 95곳의 초등학교가 문맹퇴치와 신문물 전달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후 13개 학교가 더 세워져 현재 108곳에 이르고 있다.

학교 설립에는 주민들의 공이 있었다. 당시 열악하기 그지없었던 재정적 한계란 벽을 넘기 위해 주민들은 사재를 털었고, 바다며 과수원 등 삶의 근간을 아낌없이 내놨다.

'학교바당'에서는 잠녀들이 채취한 미역을 팔아 학교 운영비를 보태고 있다. 중산간 학교들에는 감귤과수원이 그 역할을 했다.

섬을 관통했던 비극의 역사 속에 흩어졌던 마을 사람들을 다시 고향으로 불러 모은 것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마을을 세운 것도 다름 아닌 '학교'였다.

▲ 영평초등학교 정문 오른쪽에 위치한 학교 건립 유공자 송덕비.

△마을에 학교가 없었더라면

대부분의 학교에서 교사 앞이나 정문 주위에 서 있는 수많은 공덕비(송덕비)들이 그들의 치열했던 노력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주민들이 이렇게 학교에 정성을 쏟은 것은 단순히 교육열이나 아이들의 통학거리를 줄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학교가 교육적 차원 외에도 마을의 중심기관으로서 모든 주민들을 뭉치게 하고, 떠나지 않게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읍면지역의 학교들은 대부분 수십년의 역사를 마을과 함께 하며 동문회와 주민 사이의 구분이 없는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취재하며 만난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마을에 학교 하나는 있어야 사람이 모이고 발전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어떤 이는 심지어 "학교가 없는 마을은 미래가 없다"고 토로했다.

'보다 높은 교육환경'이라는 기준에 대한 아쉬움도 읽을 수 있다.

▲ 성산읍 온평리 해녀들이 조업을 앞둬 미역을 손에 들고 '학교 바당'에서 미역을 캐 학교 운영비로 보탠 옛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사회 환경 변화에 의미 퇴색

세상은 정말 눈 깜짝 할 사이 바뀐다. 학교 역시 그런 흐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오히려 더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역사가 길면 길수록 더 심하게 앓고 또 그 휴유증이 크다. 심하게는 '학교'의 존폐 위기라는 큰 벽에까지 직면한다.

도내 학교 중 가장 오랜 104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980년대 50학급, 학생수 3000여명에 달했던 제주북초등학교는 현재 18학급, 431명까지 줄었다. 그나마 '자율학교'라는 이름으로 특성화하면서 가능했던 일이지만 거의 10분의 1 규모로 작아지면서 여기 저기 빈자리가 크게 눈에 띈다.

교육 당국이 2014년까지 순차적으로 도내 소규모 학교 14곳을 통·폐합 또는 분교장으로 개편한다는 계획 안에서도 오래 지역을 지켜왔던 학교들은 배려가 아닌 우선 순위로 오르내린다. 10년 전 '현대화'광풍이 남기고 간 상처를 귀동냥했던 마을들에서 '적정 규모'라는 말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도심 학교들에 비해 사교육 시장이 열악해 학력 수준이 떨어지고, 학생 수가 적다 보니 교육혜택도 적고, 젊은 학부모들은 아예 도심 학교로 전학부터 시킨다는 논리는 지역을 설득하는 대신 반발만 사고 있다.

큰 학교 위주의 정책을 위해 교육 형평성이나 지역성은 물론이고 학교를 지키고 있는 지역과 학생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일단 보다 소통하라는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 주문과 예산삭감으로 순연되기는 했지만 언젠가 다시 불거질 문제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시대적 화두 '학교 살리기'

이런 분위기 속에 지역이 나서 '학교 살리기' 응급조치를 하고 있다. 현장을 찾아가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도 부지기수다.

일부 지역들에서는 주민 주도로 학교살리기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빈집'을 리모델링해 취학연령 가정에 제공하고, 학비의 일부를 보조해 주거나 통학버스 운행을 추진하는 등 학생 유치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학교와 지역사회가 힘을 합해 자체적인 '교육모델'을 제시하고 성과를 거둔 사례도 적잖다.

지역은 '아기 울음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들 웃음소리'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휴일에 맞춰 마을 전체가 잔치처럼 운동회를 치르고 동네 어귀서 만나는 아이가 올해 몇 학년이 되고 또 뭘 잘 하는지를 공유하는 등 함께 키우는 것으로 제대로된 인성교육을 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뿌리에는 처음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놓고 힘을 보태 학교를 세웠고, 또 그 학교를 나왔던 '선배'가 있다. 역사는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학교의 역사다. 그 조각들을 하나 둘 찾아 큰 그림을 만든 과정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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