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 대탐사Ⅱ: 객원기자 김대신의 곶자왈 10년 생명을 읽다]<13> 상생과 변화, 곶자왈로

▲ 곶자왈은 제주생물다양성의 버팀목이자 그 힘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제주의 보물이다.
제주의 허파, 생명의 땅 등 곶자왈을 표현하는 여러 가지의 말들이 있다. 그 존재가치를 대변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들이다. 그간의 글들로 각 곶자왈지대와 그 휘하에 있는 곶자왈용암류 별로 개략적인 지형 및 지질특성과 그에 따른 식물분포 특성 등을 소개하였다. 빌레용암과 곶자왈용암이 불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곶자왈지대의 흐름은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다. 시작은 중산간을 지키고 있는 오름의 한쪽일지 모르지만 그 흐름의 포용은 넓은 대지를 아우르며 다양한 생명을 품고 있다. 집채만한 바위에서 시작하여 그 흐름의 끝은 작은 돌멩이 하나로 마무리되지만 어디하나 흘겨 볼 곳이 없다. 또한 지난날 용암의 흐름에서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 현존하는 식생의 흐름까지 있어 매우 독특하고 다양해지는 것이다. 그 골격이 다 드러난 모습이 여느 숲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것도 특유의 흐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곶자왈지대의 존재는 제주도 생태계 완결성의 핵심이며 중요한 소통과 버팀목 역할을 다하고 있다.

아쉽지만 이번을 마지막으로 곶자왈 연재가 끝난다. 나름 노력했지만 곶자왈을 다 보여주기에는 필자의 능력이 많이 부족한 듯 하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준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글로나마 함께 곶자왈로 떠나보며 이 글을 마무리 지을까 한다.

# 곶자왈 속으로

어느 고요한 아침, 세상이 잠에서 깨어나려 할 때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곶자왈 속으로 들어가 본다. 사위는 아직 어둠에서 완전히 깨어 있지 못하다. 여명에 기대어 숲 안으로 발길을 옮겨보지만 조심스럽다. 행여 넘어질까 몸을 사리며 천천히 들어간 숲은 동트는 바깥과는 달리 아직 어둑하다. 시나브로 사물이 분별될수록 몸은 숲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이따금씩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풍문처럼 떠돌다 사그러지기를 반복한다. 바위틈을 살펴보느라 굽힌 허리를 펴는 순간, 녹색의 장막이 시야 가득 들어오고 일순간 바뀐 풍경이 생경해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한줄기 빛이 눈앞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저 빛은 곶자왈에서 생명을 먹여 살리는 기제로 작동할 것이다. 빛을 받기 시작한 식물들은 일제히 분주해진다. 뿌리에서 물을 끌어올리고 이파리는 이산화탄소를 붙잡아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참 고마운 존재들이다. 이런 식물들이 곶자왈에 가득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터다. 땅 속을 뚫고 나온 지하의 마그마가 제주도를 만들어갈 즈음, 오름에서 시작된 어떤 흐름은 오름과 오름 사이를 굽이치며 유장하게 흘렀고 보이는 것이 모두 암괴뿐인 용암대지를 만들어냈다. 이 바위투성이에 씨앗 하나가 자리를 잡더니 점차 숲으로 변모한 곳을 현재 우리는 곶자왈이라 부른다.

# 변화 속 곶자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곶자왈 숲도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요즘 각광받는 올레코스로 변모한 저지곶자왈 숲을 걸어보면 한여름 빽빽한 곶자왈 숲은 방위나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고 얽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한겨울 잎을 떨군 나무들 사이로 듬성듬성 빛이 들면 조금은 시계가 넓어지며 숨겨졌던 바닥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런 단순한 계절적인 변화도 있지만 생태계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에 의한 숲 자체의 변화도 있다.  지난 몇 십 년 동안 방목이 감소하고 인간에 의한 간섭이 사라지면서 천이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곶자왈을 지나다 지역주민을 만나면 한결같이 곶자왈 숲의 변화를 증언해 준다. 가시덤불들이나 예덕나무들이 자라던 곳에 종가시나무, 참가시나무 같은 참나무과 식물들과 참식나무, 생달나무 같은 녹나무과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으며 부분적으로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안정된 숲으로의 변화는 다양한 숲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며 현재는 지역의 새로운 명소를 만들어 주기도 하였지만 긴 세월을 두고 이동과 정착 및 고립의 산물인 제주고사리삼처럼 높은 존재가치를 가진 식물의 자생지를 위협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최근의 변화는 곶자왈의 흐름들이 단절되고 고립되어져 가고 있다는 것으로 이러한 점들은 곶자왈지대의 보존을 위한 또 다른 고민들이 될 것이다.

# 소통과 상생의 공간

▲ 복수초
곶자왈지대의 식물상은 약 650종류에 달한다. 이는 제주도 식물의 30%가 넘는 것이며 단순 비교지만 한라산천연보호구역에 자라는 식물 수보다 많다. 한라산천연보호구역 식물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역시 든든한 허리를 받쳐주는 곶자왈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름의 고유한 흐름들을 가지고 있어 주변 동·식물들의 소중한 피난처 역할을 다하는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가 곶자왈 이해의 끝이 아니다. 곶자왈을 이해하고 싶다면 초목에 가려진 숲바닥을 봐야 한다. 곶자왈은 '돌의 대지'다. 지하 수미터까지 온통 암괴뿐이다. 흙이라곤 거의 없다. 곶자왈에 뿌리를 내린 식물들은 다들 바위 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식물들은 얇은 부엽토에 의지해 싹을 틔우고 몸체를 키우다 바위를 움켜잡는다. 뿌리는 바위 틈새를 자맥질하듯 땅 위아래를 솟구치다 스며들며 생의 의지를 불태운다. 흙 한 줌 없는 바위에 일어난 생명, 이 얼마나 놀라운 광경인가. 옛 선인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낭은 돌으(의)지, 돌은 낭으(의)지"라는 속담으로 '서로 의지함'이 어떠한 것인지를 새겼을 터다. 그래서 곶자왈 속 선인들의 흔적들을 보면 고단했을 삶과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려는 노력들이 그 흐름 속에 같이 녹아든 상생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곶자왈은 돌과 식물의 경이로운 상생뿐만 아니라 제주사람들과의 긴 상생의 흔적도 간직하고 있다. 이런 점이 곶자왈을 더 특별하게 한다.

제주생물다양성의 버팀목이자 그 힘으로 우리를 지켜주는 제주의 보물 곶자왈. 그것은 곶자왈이 곶자왈로서 존재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김대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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