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육 희망순례 1. 남원중 김동수 교사
'교사 경력=생활지도 담당' 아이들과 네트워크 형성 우선해
"일방적인 잣대 적용 대신 대화 거리 찾는 것으로부터" 제안


△ 소통, 학교가 밝은 이유
졸업식을 앞둔 남원중학교 실내 체육관에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모여 있다. 웅성웅성. 요새 기준으로 질풍노도의 시기 중학생 두세명 이상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의심의 눈초리에 슬슬 피해갈 상황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불안감은 궁금증으로 바뀐다. 일단 밝은 표정을 확인하고 불편했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무리들 사이에서 불쑥 까무잡잡하고 중학생 치고는 많이 나이가 든 얼굴이 다가온다. 남원중 생활지도 담당 김동수 교사(48)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 학생과 교사라는 거리감이 아니라 집 근처 동네 형과 만난 듯 아이들의 표정이 가볍다. 주고받는 대화는 더 가볍다. 방학동안 얼마나 컸는지, 최근 또래들 사이 화두가 뭔지 다정하다 못해 격의가 없다. 그런 분위기를 가라앉힌 것은 김 교사의 전근 여부. 학생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김 교사를 붙잡았다. "선생님 다른 학교에 가시면 안돼요".
김 교사가 툭툭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제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을 보면 그냥 미안해지네요".
김 교사는 벌써 3년째 남원중 학생들의 생활지도를 맡고 있다. 학교 사정은 물론이고 아이들 사정까지 훤하다. 담임을 맡은 반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반에 학년 구분 없이 아이들의 이름이며 가정 사정, 친한 친구 여부까지 줄줄 꿴다.
김 교사는 그 이유를 "모교라서"라는 한 마디로 정리했다. 남원중 출신인 김 교사는 학창 시절 모범생은 아니었다. 거기에 이런 저런 이유들이 보태지며 늦게 교단에 섰다. 비슷한 연배의 교사들이 중견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과 달리 이번까지 6년을 꽉 채우는 동안 늘 의욕이 넘친다.
사실 모교 발령을 받으며 자진해서 생활 지도 담당을 맡았다.
"이 아이들은 제 후배들이자 제 친구들의 자식들입니다. 언제고 지금의 나처럼 이 곳을 지킬 아이들이기도 하죠".
△ 일진이 없는 학교

김 교사는 한 번도 손전화 전원을 꺼놓은 적이 없다. "필요할 때면 언제나 전화를 하라고 했더니 정말 수시로 전화를 하더라고요"하며 웃는 표정에는 만족감까지 번진다. 차비를 잃어버렸다며 데리러 와달라는 부탁이며 이성친구와 헤어졌는데 어떻게 하냐는 애정 상담까지 쉴 틈이 없지만 그것 역시 교사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학교에서 이른바 '짱'이라 불리는 아이들에게 '학교 선도 위원'위촉장을 주고 졸업식에 교복 대신 자신들이 좋아하는 옷을 입고 참가하도록 한 것도 다 김 교사의 아이디어다.
힘으로 남에게 군림하려는 아이들의 심리를 먼저 읽은 까닭이다. 김 교사는 "힘을 내세우는 아이일수록 자존감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며 "잘 하는 것을 칭찬하고 제대로 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친구나 선·후배의 잘못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제안을 하고 뭔가 문제가 생기면 학생들끼리 똘똘 뭉쳐 대응한다. 물론 뒤에 김 교사가 지키고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 교사는 "우리 학교에는 일진이니 짱이니 하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학생과 교사간 소통이 원활히 이뤄지다 보니 저절로 힘의 균형 같은 게 형성됐다"며 "누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는지 하는 것을 아이들이 직접 말해주고 도움을 구한다. 몸은 좀 힘들지만 이 정도면 괜찮지 않냐 싶다"고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학교·교사·학생 모두가 함께해야
김 교사는 교원 인사를 통해 새학기부터는 다른 학교로 출근을 한다. 아직 전근할 학교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 곳에서도 남원중에서 처럼 생활지도 업무를 맡는 것을 사양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마음이 온전히 편안하지는 않다.
김 교사는 "남원중에서는 전 학교에서보다 더 많이 마음을 썼다"며 "아마도 모두가 후배고 자식 같아 그랬던 것 같다"고 털어왔다. 김 교사는 지난달 제주지방경찰청이 주재한 학교폭력대책 지역 간담회에 참가해서도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교사들이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더 많이 애를 쓰면 된다"며 "도서 지역 가산점 외에 출신지 학교를 지원하는 교사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고 강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런 김 교사의 노력에 모두가 박수를 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인정해 준다는 점은 늘 힘이 된다.
김 교사는 "아이들과 유고 보드를 타고 싶다고 기자재 확충 요청을 했을 때 교장 선생님이 힘들다고 하면서도 애를 써주셔서 고마웠다"며 "문제 학생으로 치부하던 학생을 선도위원으로 위촉하거나 졸업식 문화를 바꾼 것도 모두 학부모들의 동의가 있어 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결국은 지역과 학교, 학생, 교사가 소통을 중심으로 일심동체를 이룰 때 희망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김 교사는 "학교폭력이나 교권 추락 같은 얘기가 나올 때마다 마음이 편치 못하다"며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대화할 거리를 찾아내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생길 수 있다"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