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① 아이들과 올레를 걷다

라오스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쯤이었다. 여행학교에 참석하기로 한 청소년들의 부모들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용돈은 얼마나 줘서 보내야할지…?" "컵라면을 몇 개 넣을까 하는데 괜찮을까 해서요…." "아무리 열대지역이라도 1월이면 한겨울인데 옷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이래저래 부모들은 걱정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부모 없이 여행을 보내는데, 라오스라는 들어본 적도 없거나 들었다 해도 처음엔 그 나라가 세계지도 어디쯤에 박혀있는지 짐작조차 안 되던 곳으로 떠나보낸다 생각하니, 아이들이 새삼 짠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런데 이러저러한 질문들 다음으로 마지막에 꼭 등장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아~들 얘기가 쩌거들이 숙소도 잡고 마 싹 다 해야 된다카던데 진짜라예?"
진짜다. 우리 부부가 '청소년 여행학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차에 실려 다니거나 가이드에 끌려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가 여행자가 되어 여행을 만들어 가는 것. 이미 학교와 집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온 아이들에게 여행마저도 주어지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무엇을 보고 오는 것 이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봤다는 기억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원했다. 그래서 스스로가 숙소도 구하고 볼거리도 찾아다니는, 그러다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 인연을 만들기도 하는 그런 여행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사전 캠프로 여행 떠나기 6개월 전에 제주도에서 3박4일의 걷기 여행을 했었다. 캠프라고 해서 걷는 것 이상의 프로그램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출발지와 도착해야할 목적지가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이 캠프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 밤새 수다를 떨어도 자야할 시간이라고 강제하지 않았고, 입맛이 없다고 아침밥을 굶어도 간섭하지 않았다. 배낭끈을 엉덩이까지 늘려 폼 잡고 다녀도 그러면 많이 걷기 힘들 거라고 단 한 번 알려주었을 뿐이다. 단지 3박4일 동안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두 가지뿐이었다. 하나는 걷는 것, 다른 하나는 매일 잠자기 전에 일기 쓰는 것.

그날 밤에 아이들이 쓴 일기가 가관이었다. 평생 이렇게 많이 걸었던 적은 처음이라는 고백이야 당연지사다. 그런데 아마존 밀림을 걷었다는 둥, 암벽을 올랐다는 둥, 험준한 산을 올랐더니 산등성이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는 둥, 아이들이 경험한 세계는 올레길에서 결코 만나본 적이 없는 놀라운 세계였다. 도대체 올레길 어느 곳에 그런 세상이 존재했던 걸까? 숲길이 아마존 밀림이 되고, 바닷가 바위길이 암벽이 되고, 부드러운 오름이 험준한 산악지대가 되고 마는 아이들의 눈과 마음은 신기하고도 놀랍고도 귀엽다. 나로서는 남은 인생 동안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상상력의 경지임이 분명하다.

아이들 중에 고양에서 온 성호(17)와 정호(16)라는 형제가 있다. 처음 이 녀석들은 엄마로부터 라오스여행에 대해서 들은 바도 없고 그냥 캠프가 있으니 다녀오라는 말만 듣고 왔다고 했다. 엄마의 강권으로 왔으며 방학동안 할 일도 많으므로 라오스 따위에는 갈 마음이 전혀 없다는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내비쳤던 녀석들이었다. 그런데 3박4일 여행이 끝나고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을 때 벌써 두 아이의 눈에는 라오스여행에 대한 기다림이 고여 있었다. 돌아가서 각자 신중하게 생각해본 후 한 달 내로 라오스 여행학교 참가신청서를 보내라고 했을 때, 11명의 아이들 중에 제일 먼저 신청서를 보낸 것도 그들 형제들이었다. 그날 물어보진 않았지만, 두 녀석은 '여행이란 것의 자유'에 대해 설핏 들여다보지 않았을까.
그 후 아이들에게 한두 달에 한 번씩 과제를 냈다. 메콩강에 대해 알아보기, 라오스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와 하고 싶은 것 세 가지 적기, 자기 집을 중심으로 사방 1㎞ 지역에 대한 지도를 그리기 등이다.
나는 여행은 세 번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한 번, 길 위에서 한 번, 그리고 돌아와 추억을 정리하면서 또 한 번. 아이들은 그 첫 번째 여행을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서 라오스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고, 집주변 지도를 그리면서 여행지에서의 날들을 상상했다. 그리고 괘씸하게도 우리 부부만 빼고 자기들끼리는 문자를 주고받으며 여행의 설렘을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이미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1970년 울산 출생. 고려대학교 불문학과를 다녔다. 2003년~2006년 967일 동안 아내와 함께 세계 47개국을 여행했다. 그 이후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월간지 '프라이데이 콤마', '좋은생각', '행복한동행' 등에 여행칼럼을 연재했다. 2010년 1월에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로 이주하였고, 제주교육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청소년 여행학교를 시작하여 라오스로 제1기 여행학교(2011년)를 다녀왔고, 북인도 라다크로의 제2기 여행학교(2012년 7월)를 준비 중이다. 저서로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2008), 「여행자의 유혹(공저)」(2010), 「시속 4킬로미터의 행복」(2011) 등이 있다.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 0908ya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