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자의 '예술작품 기행'] 22.고은경의 <작은 이야기>

▲ <작은 이야기> 60㎝×130㎝, 장지에 채색
고은경이 찾는 가치, 소외된 일상의 무관심에서 미학을 찾는 것
전통이면서 전통이 아닌 것, 현재의 시각에선 슬레이트집도 전통

어머니의 상징인 고향, 집, 땅

칼 융은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는 "본능적으로 가장 깊고 자극적"이며, 나아가 이 둘의 관계는 "인류의 절대적인 경험이며 유기체적인 진리"라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어머니에게 집착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를 상징적으로 말하면 고향, 집, 땅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집은 그 자리, 자신이 태어난 근원(根源), 즉 보금자리라는 의미가 있는 데 이것 또한 어머니의 상징성과 연관을 갖는다. 땅은 만물을 탄생시키고 키운다는 의미가 있으니 오래전부터 어머니는 대지로 관념되었다. 그러므로 고향을 찾는 것은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찾는 것이고, 집으로 가는 길은 어머니가 있는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것이고, 땅으로 돌아가는 것은 어머니의 품안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 집, 땅에 대한 기억(memory)을 갖고 있다. 기억은 무의식에 잠재돼 있기 때문에 무의식은 일종의 기억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다. 무의식에 있던 기억이 어떤 사물을 봤을 때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상태를 환기(喚起)라고 한다. 환기는 일상에서 유사(類似) 경험에 의한 연상 작용의 결과이다. 자신이 알던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보았을 때 알고 있던 사람과의 옛일이 떠오르는 것, 그리고 어떤 집 모양이나 골목을 보았을 때 어릴 적에 살던 집이나 동네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 등의 현상을 환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경험, 장소, 모양, 색채, 냄새, 소리 등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켜주는 매개가 되는 것들이다.

▲ 고은경 근영
마음의 집을 짓는 화가

고은경은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미술학과와 성신여자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개인전은 '사색의 시간전(가나아트스페이스, 2005)' 등 4회. 2011년 대구 6대 광역시 초대작가전(대구문예회관, 대구), 제주도 미술대전 초대작가전(신산갤러리, 제주), 이중섭미술관기획 드로잉전(서귀포 이중섭미술관, 제주) 등 다수의 단체전에 출품했다. 2011년에는 이중섭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선정돼 1년 동안 서귀포에서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현재 고은경은 한국미술협회제주도지회, 제주한국화협회, 그리고 제주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고은경이 관심을 갖는 것은 '집'이다. 집은 한 시대의 경관을 표현하는 기호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의 집은 기와집과 초가가 유일했다. 경우에 따라 너와집이나 나무집이 특수하게 있었을 뿐이다.

집이 문화적인 경관이 되는 까닭은 물질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건축자재가 자연재에서 공업재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공업재로 지은 건축이 무리를 이루면서 우리네 마을 경관은 서서히 바뀌게 되었다.

집으로 본 한국의 문화경관을 간략히 정리하면, 우리네 살림집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목조식 건축이 비집고 들어오더니, 한국전쟁을 계기로 도당집이 한순간 유행했다. 1970년대 새마을 운동의 붐을 타고 전국적으로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개량하여 오늘날 도시 주변이나 농촌 곳곳에 남아 경관을 이루고 있다.

초가지붕만 벗기고 지붕만 개량한 집 모양은 낮고 납작하다. 처음에는 형형색색 그런 집이 어색하더니 어느 덧 사람들이 살면서 고치고 색칠하다보니 다시 그럴듯한 우리네 건축 양식으로 정착하여 오늘날은 초가 다음으로 우리의 고향을 말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앙리 르페브르 말대로 "공간은 사회적으로 생산 된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농촌 환경을 개조하고, 그 개조된 농촌 환경이 다시 새로운 농촌 주택의 등장으로 새로운 공간이 탄생하는 것이다.

왜 고은경은 슬레이트집을 주목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의 세대적 경험이 슬레이트집을 다시 보게 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1960년대에 탄생한 세대는 초가에 살다가 슬레이트지붕으로 고쳐 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제주도 화가들을 보면, 초가를 즐겨 그린 세대는 원로 세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화적 경험은 단지 관심만으로 표명되지 않는다. 문화적 경험은 자신이 겪었던 시공간의 기억을 환기시키면서 직접적 체험들을 불러온다. 고은경이 슬레이트집을 그리게 된 것은 예술 대상으로서의 관심을 넘어, 자신의 삶에 강하게 남겨진 떨쳐버릴 수 없는 '생의 체험' 때문이다.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익숙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보지 않았고, 기억나지 않고, 환기되지 않는 것들은 자신의 인생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다.

▲ <소소한 그리고 행복한 이야기> 91㎝×117㎝, 장지에 채색
고은경의 작은 이야기

고은경의 작품은 그야말로 평범할 정도의 <작은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그는 스스로 "집밖의 소소한 일상들......삶의 흔적들이 작고 소박하여 무심해지고, 때론 버려지기도 한다. 그런 속에서도 제자리를 지키며 살아내고, 피워내는......풀꽃들, 나무들, 그리고 사라져가는 집들이 내게 속삭이며 말을 걸어 온다"고 고백한다. 고은경의 미학적인 초점은 쓸쓸함, 관심 밖에 밀려난 것들, 사라져 가는 집, 버려지는 것들, 소박한 것에서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가 찾는 가치란 남들이 하찮다고 생각하는 소외된 일상에서 무관심의 미학을 찾는 것이다. 고은경은 그림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무관심의 대상을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내어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

고은경의 <작은 이야기>시리즈는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집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집은 완전한 과거의 초가도 아니고, 현재의 건물 형상도 아니다. 초가가 근대화 과정에서 새로운 슬레이트집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고은경의 집은 전통과 모더니즘의 결합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전단계의 형상을 하고 있다. 전통이면서 전통이 아닌 것, 전통의 시각에서는 새롭지만, 현재의 시각에서는 그 집도 전통이다.

고은경의 집은 사물의 변화과정인 시간을 담고 있다. 그는 슬레이트집이라는 형태 안에 옛 시간의 체취를 보관함으로써 우리들의 저장된 기억을 환기시키곤 한다. 하나의 사물은 주변과 함께 존재함으로써 다른 담론들을 생산한다. 슬레이트집과 함께 존재하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그에 의해 우주의 시간에 공존하는 소중한 일상으로 환원된다.

고은경의 집의 형태는 홀로, 혹은 무리지어 그려지면서 그 위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의 집짓기는 우주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과 같아서 늘 변화하는 가운데 소록소록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낸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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