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은자의 '예술작품 기행'] 23.허문희의 <어느 섬의 표류기>

소녀의 표류, 문명이 주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 고의로 표류한 것
현실은 미적 상상력의 원천
환상을 추구하는 그림 그리기는 낭만주의에 가깝고, 꿈을 기억하고 환기시키는 그림그리기는 초현실주의에 가깝다. 그러나 예술에 있어서 어떤 사조를 표방하더라도 사조와 시대를 넘어 예술 전체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미적 상상력(imagination)의 작용이다.
상상력은 마음속에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행위'를 말한다. 즉 상상의 어원인 'phantasein'이 '表出'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보아 상상력은 대상을 보고 '이미지를 떠올리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바로 상상력의 거대한 대지다. 이미지를 형성하는 힘은 현실의 삶을 통해 이루어진다. 현실은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영향을 끼치는데 의식은 판단과 상상을 통해서,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 환기된다.
예술가는 대상을 보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각 분야의 다양한 즐거움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의 결과에 힘입은 바 크다. 예술가들의 상상력은 무한한 창조의 모티프로서 시대마다 독창적인 창작물을 생산해 대중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현실의 삶은 무의식으로도 스며든다. 무의식에 숨어든 현실은 꿈(dreams)으로 나타난다. 꿈은 잠을 통해서 이미지로 형성되며, 파편적이고 왜곡된 형상으로 등장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잠은 "자신이 외계(外界)에 대해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고 외계로부터 관심을 끊어버린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꿈은 육체의 자극에 의해서 일어나는 정신현상"으로 "깨어 있을 때의 정신활동의 잔여물이고, 잠을 방해하는 잔여물"이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이런 과정을 '꿈의 작업'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꿈의 작업이란, "꿈은 받은 자극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자극을 가공하고, 채색하고, 거기에 스토리를 엮어 그것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꿈을 꿀 때 시각영상으로 재현된다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융은 꿈을, "무의식 안에 있는 실제 상황을 상징적인 형태로 그려낸 자발적인 자기 초상"이라고 했다. 즉 꿈의 영상들은 여전히 무의식적인 사건들의 가능한 가장 좋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그는 "꿈의 특질은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것이며, 또 꿈은 억측이거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현실에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그려낸다."고 했다. 나아가 융은 꿈을 상징 분석에 활용했다. "진정한 상징은 어떤 다른 방식, 혹은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직관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예술작품들의 의미심장한 언어는 그것들이 말하고 있는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허문희의 미적 상상력

허문희의 작품세계를 한 마디로 말하면 상상의 세계다. 그의 화면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데, 장소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경쾌한 리듬으로 가득 차 있다.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세계를 자연스럽게 엮어내는 허문희의 솜씨는 분명 오랜 상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허문희가 그려내는 문명의 흔적들은 거의가 복고풍이다. 구식 시계, 낡은 의자, 옛 욕조, 우산, 거울, 옷걸이, 종이배, 꼬마전구, 아코디언, 가죽여행가방 등 허문희는 우리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좋은 소재들을 다루고 있다.
건물의 한 벽으로는 초록의 평원이 펼쳐지고, 얼룩말은 문양처럼 한 방향으로 도열해 있다. 의자 뒤 호기심 어린 얼룩말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토끼는 의자에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하얀 개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즐거운 상상>은 실내공간과 평원의 공간이 만나는 장소가 되고 있다.
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허문희의 상상은 더 이상 자연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문명을 꿈꾸는 것이다. 하늘을 나는 대형 고래,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빌딩, 오름에 걸터앉은 나무비행기, 이 모두가 허문희가 만들어낸 즐거운 세계다. 상상의 세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지만 작가 자신에게는 분명히 존재한다.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세계는 그것이 현실과 똑같은 세계가 아닐지라도 그 어딘가에 세워 놓은 그녀만의 세계이자 풍경이다.

<그녀의 작은 섬>은 허문희 상상력의 전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녀는 언젠가 '꿈꾸는 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그 곳은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곳이었다. 섬 안에는 다른 모양의 바람이 불고, 해가 비치고, 비가 내린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간 속에 나는 가상의 섬들을 만들었다........망망한 바다위에 어느 곳에도 닿지 않을 그 섬 안에 <나>는 유랑하는 빈 배가 되었다. 나는 그 끝없는 바다 위에서 <나>와 비슷한 섬들을 만나기도 하고, 얇은 실을 통해 그 특별함을 공유하기도 한다."
현실에서 소외된 것들, 소위 기억마저 떠오르지 않는 것들, 관심 밖의 사소한 것들도 그녀에게는 소중하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것들을 소중하게 저장할 섬을 찾아 떠나 표류하는 그녀는 바로 허문희다. 사실 그녀의 상상의 세계에서는 그녀가 표류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 사소한 것들을 소외시키는 이 현실이 표류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상상은 현실을 뒤엎는 전복적 상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문명만을 예찬할 수도, 자연만을 선택할 수도 없다. 그녀가 추구하는 것은 문명을 닮은 자연이 아니라 자연을 닮은 문명이다.
허문희 자신이 문명과 자연의 공존을 꿈꾸는 작품인 <그녀의 작은 섬>은 표류라기보다도 자연으로의 도피에 가깝다. 비밀스런 장소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소녀, 작은 배 위에 강아지를 안고 생각에 잠긴 어린 소녀는 인간이 자연임을 상징하고 있다. 소녀의 뿔 위에 스스럼없이 앉아있는 까마귀는 그녀의 전령처럼 친근하다. 섬은 우거진 수풀을 드리우고 있고 그 수풀을 가른 배는 정지한 듯 고요하다. 배 속에 물이 들어와 하늘이 서린다. 물에는 금붕어가 떠 있고 다시 물은 거울이 돼 하늘을 나는 기러기 무리를 비친다.
원시적인 자연의 소녀는 인간이지만 정령처럼 동물의 뿔을 하고 있다. 장난감 같은 모형의 겔은 배에 고인 물에 떠 있다. 정적(靜寂)은 때론 공포스럽기도 하지만 편안한 감정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어느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표류지 섬, 자연과 소통하는 누드의 소녀가 찾아간 그 섬에서는, 작은 섬마저 다시 대자연을 찾아 소녀와 함께 떠난다. 그러므로 소녀의 표류는 문명이 주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 고의로 표류한 것이다. 그러나 정녕 그것은 새로운 세계, 풍요로운 초원을 찾아 떠나는 유목민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이중섭미술관 큐레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