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 여행학교]④ 치앙마이에서 처음으로 숙소구하기

▲ 거리의 그림 그리고 불빛, 치앙마이 야시장 가는 길.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뚝뚝'을 타고 치앙마이의 '타페 게이트' 광장으로 나섰다. 열대의 열기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안개처럼 부연 아침잠이 남아 있었다. 옛 왕국의 수도답게 성곽은 견고하고 아름다웠으며 광장에는 이른 아침의 몽롱한 기운이 그림자처럼 서성이고 있었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첫 미션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오늘부터는 각자 모둠의 숙소는 스스로가 알아서 직접 구해야 한다. 아내는 아이들에게 1박2일간 치앙마이에 머물 동안 잠자리, 먹을거리, 구경거리에 필요한 비용을 나누어주었다. 사실 이른 아침의 낯선 도시라면 굳이 어린 여행자가 아니라도 충분히 막막할 만하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군소리 하나 없이 재잘재잘 숙소 사냥에 나선다. 배낭을 지고 성문 안으로 들어서는 아이들의 발걸음에는 오히려 설렘이 묻어 있다. 한 모둠은 왼쪽 길로, 또 한 모둠은 오른쪽 길로 각자의 길을 선택했다. 아내와 나는 직진하기로 했다. 가이드북에서 보아둔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 남은 윤미와 희경이네 모둠이 우리부부를 따라오나 싶더니 곧 오른쪽 골목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지도 축척이 잘못되었는지 생각과는 달리 거리가 제법 멀었다. 배낭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할 즈음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냈다. 성수기답게 가격이 훌쩍 올라 있었다. 잠시, 갈등. 결국 다른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방황을 시작한다. 그러기를 30여분. 겨우 마땅한 게스트하우스를 하나 구해 배낭을 내려놓고 보니, 아이들이 걱정된다. 성수기에다 아직 방이 비워지기 전인 이른 아침이어서 숙소 구하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내와 나는 바쁜 마음에 쌀국수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아이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게이트 광장'으로 나갔다. 막 성문을 나서 광장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었다.

 "이모~! 삼촌~!"
 아이들이 앞 다투어 달려왔다. 그리고는 팔짝팔짝 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숨 가쁘게 자기들이 구한 숙소를 자랑하기 시작했다. 
 "우리 숙소 대박이에요. 방이 진짜 크고요, 풀장도 있어요."  
 다른 모둠 아이들도 질세라, 자기들이 구한 숙소들을 연달아 자랑했다. 방이 엄청 깨끗하고 침대도 대박 좋다고 했다. 가격도 싸다고 했다. 그리고 론니플래닛에서 추천한 숙소이며 매니저가 진짜 친절하다고도 했다. 길에서 '샘'이라는 재미있는 아저씨를 만났는데 그가 안내해준 곳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녀석도 있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진짜'와 '엄청'과 '쩔어요'와 '대박'과 같은 절대 만족의 단어들이 '진짜, 엄청, 대박' 날아다녔다. 아이들이 침을 튀기며 '자신들의' 게스트하우스를 자랑하는데, 누가 보면 그곳 게스트하우스에 고용된 '임시 삐끼'로 오인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 아침, 아이들은 하룻밤 묵어갈 잠자리를 마련한 것이 아닌 듯했다. 마치 모래사막에다 새로운 도시 하나를 건설한 이들 같았다. 말하자면, 모든 것을 놀이로 만들어버리는 이른바 '놀이 마법사'인 그들에게 숙소구하기란 사막에 도시 세우기 놀이쯤 되는 것이다. 그 흔적은 아이들의 일기장에도 남아 있다. 
 
 "여행의 재미 중 하나가 숙소 찾기인 것 같다. (중략) 오늘 가장 기대했던 숙소 찾기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350바트에 침대 2개에 냉장고, TV까지 있었다."(박성호·열일곱 살)
 "우리는 무척 좋은 숙소를 찾은 것이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숙소를 잡고 난 후 나중에 다같이 모이자 숙소 자랑을 했는데 다른 조도 숙소를 무척 잘 잡은 것이었다. 유진이 언니랑 나도 질 수 없어서 막 자랑을 해댔다. 재밌었다."(서희·열네 살)
 "우리끼리 잡은 숙소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눈물이 날 뻔했다."(하영·스무 살)
 
 무언가를 스스로 한다는 것. 더군다나 낯선 이국의 도시에서 부모나 교사의 도움 없이 친구들과 함께 무언가를 스스로 해결해냈다는 것.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많이 신기하고 자랑스러운 경험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사원, 왓 체디루앙에서 종 치는 아이들.
 이제 치앙마이 투어를 시작할 시간이다. 오늘 하루는 하영이네 모둠과 함께 다니기로 했다. 우리들은 치앙마이의 여러 사원들을 돌아다녔다. 무엇을 볼 지는 하영, 유진, 나운, 서희 이렇게 네 명의 조원들이 함께 의논했는데, 길을 찾아가는 것은 열다섯 살인 나운이의 몫이었다. 말하자면, '오늘의 길잡이'다. 지도 한 장을 들고 앞장선 그이의 얼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있다. 차라리 비장하기까지 하다. 두 손으로 지도를 꼬깃꼬깃 접어들고 지도와 이정표를 번갈아 살피면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여간 진지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모습이 귀여워 자꾸만 웃음이 핏 새어나오려는 걸 참느라 애먹어야했다. 두 번째 사원에서 나와 걷고 있을 때는 자전거를 탄 윤미네 모둠 친구들도 만났다. 이 모둠은 윤미와 희경 두 고등학교 2학년 단짝과 남학생 성호(고1)와 승현(중2)을 묶어주었더니, 조금도 거칠 것이 없다. 이방의 도시를 붕붕 날아다닌다. 만일 끈이라도 달아놓지 않으면 수소가스를 채운 풍선들처럼 하늘로 휘익 날아가 버릴까 염려가 될 지경이다. 마침내 사원 투어가 끝나고, 나운이는 실수 한 번 없이 오늘의 길잡이 역할을 완수했다. 그런데 세상에, 긴장이 풀리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환하게 밝아지던 그 아이의 얼굴이란…. 이른 봄날 오후, 매일 지나던 길가에 느닷없이 피어있던 꽃송이를 발견한 것만 같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란 그런 것인가 싶다.  

 여행 떠나 처음으로 모두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아이들은 하루 동안 생겨난 이야기들을 내어놓느라 시끌벅적하다. 아이들이 요리를 주문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한 번이라도 먹어보았거나 잘 알고 있는 요리를 고집하는 친구다. 다른 하나는 무턱대고 이름도 낯선 새로운 요리에 도전하는 녀석이고, 마지막으로는 형이나 언니, 친구들의 요리를 무작정 따라 시키는 꼬맹이들이다. 어쨌거나, 이제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요리와 음료수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을 즐기는 폼들이 제법이다. 여행자 티가 조금씩 난다는 뜻이다. 오늘 하루 스스로의 생각대로 숙소를 구하고 관광을 하고 요리를 찾아다닌 그 시간들이 그렇게 어린 여행자들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0908y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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