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학용 여행작가의 라오스여행학교]⑥ 훼이싸이에서의 하루

▲ 평화로운 저녁, 해가 저무는 메콩 강.
 나는 비가 내리는 아침거리로 나섰다. 길은 메콩 강을 따라 길게 누워 있었고, 마을은 그 길을 따라 한 줄로 걷고 있다. 마을 중심부는 게스트하우스나 식당과 식료품점 같은 건물들이 띄엄띄엄 마주보고 서있는 형국이다.  

 천천히 마을 가게를 뒤지기 시작했다. 중국산 귤이나 사과, 바나나 등 비타민C를 섭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릴 것 없이 조금씩 사 모았다. 아내의 감기 때문이었다. 레몬은 어느 가게에서도 찾을 수 없어 결국 전날 저녁식사를 했던 레스토랑까지 가서 요리용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들을 구해왔다. 설탕에 생 레몬을 듬뿍 짜 넣고 아내에게 따뜻하게 레몬차를 타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과일 봉지를 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열여덟 살 동갑내기 희경이와 윤미가 반대쪽 길 끝에서 바삐 걸어오고 있었다. 꽤나 분주한 얼굴이다.

 "일찍 일어났네. 어디 갔다 와?"
 "아, 삼촌! 케이크 알아보느라고요. 있잖아요, 정호는 반팔 티셔츠 사주고요, 상훈 오빠는 라오비어 두 병 사주려고요. 괜찮겠어요?"

 

▲ 라오비어 두 병을 받아들고 좋아하는 상훈. 라오스 강가 마을 훼이싸이에서의 깜짝 생일 파티.

 오늘은 스무 살 상훈이와 열여섯 살 정호의 생일이다. 그래서 저녁에 깜짝 파티를 열어주기로 한 모양이다. 어제 밤부터 아이들끼리 돈을 걷는다, 어쩐다 해서 조금 보태주기도 했었다. 아마 아이들은 저걸로 오늘 하루 심심치 않게 놀 수 있을 모양이다. 그러고도 희경과 윤미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

 "새벽에 사원에도 올라갔었어요."
 "좋았어?"
 "네! 그런데 비가 와서 강은 안 보였어요. 시장에도 갔고요, 초등학교에도 갔었어요. 아이들이 진짜 귀여워요. 우리가 가니까 맨발로 막 달려와요."

 여행 떠나와 지난 며칠, 윤미와 희경을 보고 있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아주 통통 튀어 다닌다. 녀석들의 발걸음에는 뭔가 터져버린 자유로움이 배여 있다. 누구보다도 현재의 시간을 맘껏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대하는 모든 낯선 것들에게 어찌나 긍정적이면서도 에너지가 넘치는지 저러다 혹 사고라도 나지 않을까 염려가 생길 정도다. 저런 에너지를 하루 종일 학교 책상에 앉아 영어단어와 수학문제들과 씨름하며 소비해야만 한다는 걸 떠올리면, 안타까운 일이다. 이들에겐 고3을 앞두고 내린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이번 여행이 또 다른 의미로 오래 남게 되길 나로선 바랄 뿐이다.

 모든 아이들이 희경과 윤미처럼 부지런히 마을을 탐험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다. 비옷을 입고 그냥 거리를 하릴없이 쏘다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오전 내내 밀린 잠을 자거나 방안에서 뒹굴며 TV를 보며 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비가 좋아서 이층 테라스 의자에 앉아 키 작은 마을에 내리는 비를 가만히 바라보는 아이도 있고, 비가 싫어 침대에 웅크리고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 아이도 있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여행이란 것이 낯선 곳을 향해 떠나는 것이지만 그 낯선 시간 안에 이유 없이 머무는 것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하루의 시간을, 각자의 도시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떠나왔듯이 또 그렇게 제각각의 눈으로 머물고 있었다.   

▲ 라오비어와 라오스의 찐밥. 이곳 사람들은 대나무 밥통에 나오는 찐밥을 손으로 주물러 먹는다
 저녁이 되어 강변 레스토랑에 다 같이 모였다. 깜짝 생일파티가 시작되었다.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어떻게 구했는지 생일케이크가 식탁 가운데 놓였다. 상훈이는 라오비어 두 병을 받아들고 동생들에게 고마운지 입이 한껏 벌어졌고, 정호는 반팔 티셔츠를 그 자리에서 바로 입어보였다. 유진이는 오전 내내 만든 대형 생일카드를 건넸고, 성호와 승현이는 숙소에서 잡은 도롱뇽 한 마리를 정호에게 선물했다.

 그때 언제부터 자리하고 있었던지 두세 테이블 너머에 있던 군청색의 작업복을 입은 중년 남자들이 다가왔다.

 "학생들, 한국에서 왔나봐?"

▲ 정호의 생일 선물은 티셔츠와 도롱뇽 그리고 대형 축하카드
 이곳 라오스에서 6개월째 일하고 있는 한국인 건축 기술자들이었다. 동남아 여러 나라에 건축기술을 전수하고 있는데, 라오스가 여덟 번째 국가라고 했다. 그들은 설비, 전기, 목수 등 자신이 맡은 역할을 소개했다. 강가 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보니, 청소년들끼리 여행 온 줄로 알고 너무 놀랍고 반가워서 말이라도 붙여보려고 온 것이라 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여행이 힘들지 않느냐고 이것저것 물어도 보고, 고국에 있는 아들딸들이 생각나는지 한 참을 눈으로 아이들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대뜸 김치를 한 접시 내 놓았다. 아이들은 경악에 가까운 환호성을 질렀다. 그분들이 땅에다 직접 채소를 심어 담근 거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좋아하자 그 귀한 김치를 한 봉지에 가득 담아준다. 족히 2㎏이 넘는 양이다.

   우리들은 잠시 다녀가는 여행자일 뿐인데…. 김치도 고맙고, 김치라는 음식 하나로 소중함에 대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신 것도 고맙다. 그렇게 우리들은 낯선 도시에서 또 하나의 배움과 이유 없이 하루를 머물며 흘려보낸 또 한 줄기의 추억들을 모아 내고 있다.     

   사람은 자연을 닮고 사람과 사는 동물은 사람을 닮겠지

 산 위에 있는 사원을 갔는데 공사 중이라 법당 안에는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강아지를 만났다. Lao people이나 Lao dog나 Lao cat이나 Lao baby나 다들 순하고 다른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다. 
 나중에 (게스트하우스) 3층 응접실에 가서 메콩 강과 반대편 태국 땅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 이런 환경과 사는 사람들은 두려움이 생길 수 없을 것 같다. 욕심이 많은 것도, 타인을 경계하는 것도, 타인에게 불친절한 것도 결국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메콩 강을 뒤에 두고 스쿠터를 타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두려움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음, 또 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또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내가 보는 여기 사람들은 우리보다, 나보다 두려움이 훨씬 적다. 사원에서 만났던 강아지. 그 강아지도 곧잘 앉아서 눈도 맞추고 손바닥도 핥아주고 하는 게 너무 예뻤다. 
 사람은 자연을 닮고 사람과 사는 동물은 사람을 닮겠지.<김하영·20세>

글·사진 양학용 여행작가/0908yang@hanmail.net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